같은 부실차주 심의 착수까지 수은 1383일·산은 98일
상각 직전 심의 요청 관행…퇴직 뒤 심의한 사례도
수은 “업무처리 규정 차이…착수시점 앞당기도록 개정 중”
한국수출입은행이 부실여신의 책임 소재를 따지는 부책심의를 내부 규정상 가능한 시점까지 늦추는 관행을 이어오면서 책임 규명이 어려워지는 상황까지 초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수출입은행
부실여신의 책임 소재를 따지는 부책심의에 착수하기까지 한국산업은행은 100일이 채 안 걸렸지만, 한국수출입은행은 4년 가까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내부 규정상 가능한 시점까지 심의를 늦추는 관행이 이어지면서 관련자가 퇴직한 뒤에야 심의가 이뤄진 사례도 발생하는 등 책임 규명이 어려워졌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내부 규정이 사실상 '늑장 심의'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감사원의 한국수출입은행 정기감사 결과에 따르면 감사원은 산은과 수은이 중복해 여신을 제공한 부실차주 39곳의 부책심의 처리 기간을 비교했다.
부책심의는 부실여신이 발생했을 때 여신 취급과 심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보고 임직원의 책임 여부를 판단하는 자체 감사 절차다.
조사 결과 부도 발생일부터 부책심의에 착수하기까지 수은은 평균 1383일이 걸렸다. 약 3년9개월이다. 반면 산은은 평균 98일에 그쳤다.
결과보고까지도 수은은 평균 1457일이 소요돼 산은의 189일보다 1268일 길었다.
감사원은 수은의 내부 규정과 이에 따른 업무 관행을 장기 지연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산은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직전 반기에 부실여신이 발생한 차주를 다음 반기에 심의했다.
반면 수은은 여신 소관 부점장이 부실채권을 장부에서 손실 처리하는 대손상각 승인일 전까지만 감사부서에 부책심의를 요청하면 되도록 규정했다.
이에 따라 여신부서가 상각 시점에 임박해서야 심의를 요청하는 관행이 이어졌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심의를 요청한 이후에도 처리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수은은 부책 시효를 대손상각 처리일부터 3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감사원은 이 같은 규정 등의 영향으로 통상 부책심의 요청 이후 약 2년이 지나서야 심의에 착수하는 관행이 자리 잡았다고 판단했다.
실제 2015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발생한 부실여신 334건 가운데 부책심의를 완료한 132건은 부도 발생부터 결과보고까지 평균 1403일이 걸렸다.
심의가 늦어지는 사이 책임을 물어야 할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발생했다.
부책심의를 완료한 132건 가운데 60건은 관련자가 이미 퇴직한 뒤 심의가 진행됐다. 퇴직자는 부서장 29명을 포함해 36명에 달했다.
그럼에도 징계나 변상 조치는 없었고 5건에 대해서만 담당 심사역에게 경고 또는 주의 조치가 내려졌다.
감사원은 이로 인해 부책심의의 내부통제 기능이 현저히 저하됐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부실여신이 발생하면 가능한 한 신속하게 심의에 착수해 부실 원인과 관련자의 책임 여부를 규명해야 실효적인 내부통제가 가능하다고 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담당자가 퇴직하거나 관련 자료와 증거가 사라져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부실여신 발생 이후 신속하게 책임을 따져야 하는데도 수은 내부에서 심의를 가능한 늦게 처리하는 관행이 이어진 점을 문제로 봤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수은에 부책심의를 지연하거나 누락해 관련자에게 책임을 묻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요구했다.
부책심의 개시 시점과 시효 등 관련 규정도 합리적으로 정비하도록 통보했다.
수은 관계자는 "감사원 지적을 수용해 부책심의 착수 시점을 앞당기도록 내부 규정 개정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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