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60년 숙련 노하우를 AI에 담는다…SK이노 울산CLX '듀얼 브레인' 전환

울산 =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6.09.15 14:00  수정 2026.09.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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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CLX의 AI 전환 현장 가보니

250만평·98개 공정·20만가닥 배관…60년간 확장된 대형 생산기지

숙련인력 세대교체·현장 사각지대 대응…운전 경험의 AI 데이터화

조정실·공정 현장에 AI 적용…드론·로봇까지 현장 투입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울산CLX) 전경. ⓒSK이노베이션

"30년을 운전한 사람과 5년 동안 운전한 사람의 역량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습니다."


지난 10일 울산광역시 남구에 위치한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울산CLX)에서 만난 정창훈 울산CLX 제조AI팀장은 AI 도입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며 숙련자와 신규 운전원의 역량 차이를 언급했다. 수십년간 현장에서 쌓인 운전 노하우는 단기간에 습득하기 어려운 만큼 이를 데이터화해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는 것이 AI 전환의 중요한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 사람이 공장 전체를 24시간 같은 수준으로 살피기 어려운 시간적·물리적 한계도 있다. 울산CLX는 숙련자의 경험을 데이터로 축적하는 동시에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범위까지 공정과 설비를 분석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1964년 국내 최초 정유공장으로 출발한 울산CLX는 지금도 전통 제조업 현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공장과 달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자동화와 데이터 기반 운전을 넘어 AI가 공정과 설비를 분석하고 드론과 로봇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현장까지 살피는 방식으로 공장 운영이 바뀌고 있다.


60년 된 공장, 안으로 들어가니


SK이노베이션 울산콤플렉스(울산CLX) 전경. ⓒSK이노베이션

울산CLX에 들어서자 거대한 배관과 설비가 끝없이 이어졌다. 굵기와 형태가 다른 배관들이 여러 층으로 얽혀 건물과 설비 사이를 가로질렀고 수십m 높이의 구조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공장 안으로 더 깊숙하게 들어가자 1960년대 가동한 설비부터 2020년 구축된 신규 탈황설비까지 서로 다른 시기에 만들어진 시설들이 한 생산기지 안에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60년간 증설을 거듭하면서 서로 다른 세대의 설비가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다.


울산CLX는 250만평 규모의 생산기지로 98개 공정이 연결돼 있다. 공정 사이를 잇는 배관만 20만가닥이 넘는다. 정유와 고도화 설비, 석유화학 생산시설이 하나의 생산체계 안에서 움직이는 복합 생산기지다.


공장 규모가 큰 만큼 관리 영역도 넓다. 울산CLX에서는 하루 약 3000명의 작업자가 움직이고 연간 33만건의 작업이 이뤄진다. 수십m 높이의 배관과 설비를 직접 오르내리며 확인해야 하는 영역도 있다. 사람이 광대한 현장을 같은 밀도로 계속 확인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날 버스가 멈춘 곳은 중질유분해공정(HOU) 조정실이었다.


조정실에 들어가기 전 신발부터 벗었다. 회사 관계자는 "내부의 항온·항습 상태를 유지하고 먼지 등 오염물질이 설비에 영향을 주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조정실 뒤편에는 데이터센터 설비도 자리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수십대의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화면에는 개별 설비 상태부터 제품 흐름, 온도와 물량 등 공장 운전에 필요한 정보가 표시되고 있었다.


공정 대부분이 자동화돼 있었지만 운전원들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공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지 확인하고 변수가 발생하면 대응하는 역할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었다.


회사 관계자는 이를 자동항법을 사용하는 비행기에 비유했다. 비행기가 자동으로 운항하더라도 조종사가 자리를 지키는 것처럼 공정이 자동화돼 있어도 운전원이 공정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날 확인한 HOU 조정실 일부 공정에는 첨단 공정제어(APC) 시스템도 적용돼 있었다. 기존에는 오퍼레이터가 온도와 제품 투입량 등 여러 변수를 직접 조정했다면 APC는 변수 변화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한 최적 설정값을 제시한다.


울산CLX의 AI 전환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이미 구축된 자동화와 데이터 기반 운전 체계에 AI를 접목해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감시와 분석 영역까지 넓히는 것이다.


사람이 못 보는 곳까지 AI가 본다…드론·로봇도 현장으로


정창훈 SK에너지 울산CLX 제조AI팀장이 지난 10일 울산CLX의 역사와 주요 시설을 소개하고 있다.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울산CLX에서 AI가 맡는 역할은 생산·설비·안전 관리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생산최적화 AI는 공정 데이터를 분석해 최적 운전 조건을 찾고 유틸리티 최적화 AI는 스팀·전력·용수 사용량을 조절한다. 설비이상 예측 AI는 펌프 등 주요 회전기기의 진동과 온도를 분석해 이상 징후와 원인을 파악하고 정비 계획 AI가 최적의 정비 시점과 작업계획을 제안한다.


안전관리에서는 '쉴드(SHEILD)'를 통해 CCTV와 가스 측정기, 설비 센서 등 고정형 데이터와 작업허가, 작업자 위치·상태 정보 등을 통합한다. 여기에 드론과 로봇이 수집하는 이동형 데이터를 결합해 AI가 고위험 작업을 식별하고 필요한 순찰과 대응방안을 제안하는 구조다.


드론은 사람이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고소 설비를 검사하고 현장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활용된다. 회사는 단순한 드론 대수 확대보다 그동안 축적한 현장 데이터를 AI로 정밀 분석하고 예지정비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로봇개는 자동 순찰 등에 활용하기 위해 약 10대 수준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상 상황이 발생하면 드론이 초동 출동하거나 CCTV로 확인하기 어려운 사각지대를 관측하는 방식도 추진한다.


정 팀장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시간과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 AI를 집중해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30년 베테랑의 경험까지 AI로…'듀얼 브레인' 가동


지난 10일부터 사흘간 울산시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UECO)에서 열린 울산세계미래산업박람회(WAVE2026) SK 전시관에 마련된 울산콤플렉스 제조 AX 관련 전시물. ⓒ데일리안 정진주 기자

울산CLX가 AI를 필요로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숙련자의 경험을 데이터로 남기는 데 있다.


복잡한 정유·석유화학 공정에서는 오랜 기간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판단이 중요한 자산이다. 특정 상황에서 어떤 변수가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공정을 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단순한 매뉴얼만으로 익히기 어렵다.


울산CLX는 이러한 현장 경험을 데이터화해 AI가 분석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다음 세대의 운전 역량으로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정 팀장은 세대교체에 따른 역량 공백을 AI가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사람이 완전히 빠지는 것은 아니다. AI가 공정과 설비 데이터를 24시간 분석해 이상 징후를 찾아내거나 최적의 대응방안을 제시하면 엔지니어가 현장 상황과 경험을 바탕으로 결과를 검토하고 최종 판단을 내린다. 회사가 이를 '듀얼 브레인'으로 설명하는 이유다.


실제 울산CLX에서는 기존 최적화 모델과 AI 모델을 병행하고 있다. 현재 최적점을 제시하는 머신러닝 모델은 7개가 구축됐으며 전체 공정에 일괄 적용된 상태는 아니다. 기존 최적화 프로그램과 연계해 추가 활용 방법을 찾으면서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AI 도입으로 엔지니어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데이터 정리와 반복적인 계산·분석을 AI가 맡으면 구성원은 현장 판단이나 새로운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다. 회사 역시 AI 도입을 인력 축소보다 조직 운영의 효율화와 업무 전환 관점에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울산CLX에서 그리는 변화는 '사람 대 AI'의 구도가 아니다. AI가 사람이 처리하기 어려운 데이터를 24시간 분석하고 사람은 현장 맥락과 경험을 바탕으로 최종 의사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


울산CLX는 이 같은 AI 전환을 통해 2030년까지 연간 약 100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고 설비 가동정지와 중대재해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 팀장은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경험과 지식을 지속적으로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필요하다"며 "AI가 24시간 분석하고 사람은 최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형태로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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