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연. ⓒ KLPGA
"이번에는 내 대회가 아닌 줄 알았다.“
우승자 이다연(29·메디힐)은 경기 도중 이미 우승을 내려놓았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그럴 만했다. 5번홀 트리플 보기로 무너졌고, 경쟁자 김수지는 흔들림 없이 선두를 질주했다.
하지만 골프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작은 거인' 이다연이 마지막 네 홀에서 기적 같은 뒤집기를 완성하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통산 10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다연은 2일 강원 원주시 오로라 골프&리조트(파72)에서 열린 KLPGA투어 오로라월드 챔피언십(총상금 10억원)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4개와 이글 1개, 트리플 보기 1개를 묶어 3언더파 69타를 기록했다.
최종합계 12언더파 276타를 적어낸 이다연은 마지막 홀에서 김수지(30·동부건설·11언더파 277타)를 1타 차로 제치며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1억8000만원이다.
지난해 9월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이후 11개월 만에 다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이다연은 KLPGA투어 역대 17번째 통산 10승 고지에도 올랐다. 올 시즌 DB 위민스 챔피언십과 롯데 오픈에서 준우승에 머물렀던 아쉬움도 말끔히 씻어냈다.
이다연. ⓒ KLPGA
우승까지의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공동 3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이다연은 3번홀 버디로 기분 좋게 출발했다. 그러나 5번홀에서 예상치 못한 악재를 맞았다. 티샷이 러프 깊숙이 잠겼고, 안전하게 꺼내려던 샷이 예상과 달리 감기면서 패널티 구역으로 향했다. 이후에도 위기를 수습하지 못하면서 한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적어냈다.
경기 후 이다연은 "티샷이 오른쪽 러프로 들어갔는데 볼이 깊게 잠겨 있었다. 안전하게 공략하려 했지만 생각과 다르게 흘렀고, 결국 트리플 보기가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그 이후에는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우승은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며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자는 생각으로 플레이했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면서 마지막까지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절망 속에서도 반전의 불씨는 살아 있었다. 전반 마지막 9번홀(파4)에서 123m 거리의 두 번째 샷이 그대로 홀컵으로 빨려 들어가는 샷 이글이 터졌다. 이 한 방이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꿨다.
이다연도 "바람이 모호해 피칭 웨지와 9번 아이언 사이에서 고민했다. 무리하지 말고 안전하게 치자는 생각이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공이 들어가는 장면은 보지 못했고 앞에서 환호성이 들려 들어간 것을 알았다"고 웃었다.
무엇보다 그는 이 홀을 이날 최대 승부처로 꼽았다. 이다연은 "그 전까지는 타수 차이가 있어서 '이번에는 내 대회가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했다"며 "샷 이글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때부터 조금 더 최선을 다하면 우승도 바라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다연. ⓒ KLPGA
후반에도 쉽지 않은 승부가 이어졌다. 특히 11번홀부터는 복통까지 찾아왔다. 그는 "11번홀부터 배가 많이 아파 집중하기 어려웠다. 15번홀부터 괜찮아졌고 다시 집중하자는 생각으로 조금 더 공격적으로 플레이했다"고 밝혔다.
이어 "15번홀부터는 공격적으로 하자는 생각이었다. 18번홀 두 번째 샷도 러프였지만 이전 라운드에서 비슷한 라이를 경험해 자신감이 있었다. 그 경험 덕분에 공격적으로 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다연은 올 시즌 두 차례 준우승과 한 차례 3위에 머물렀던 만큼 통산 10승을 앞둔 부담도 적지 않았지만, 정작 본인은 이를 의식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다연은 "아홉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회는 계속 올 것이라고 믿었고, 그 기회를 어떻게 잡을지만 생각했다"며 "휴식기를 보내면서 오히려 나 자신을 너무 몰아붙였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을 편하게 먹은 것이 이번 우승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통산 10승이라는 상징적인 기록을 세웠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다음 목표를 향하고 있다. 이다연은 "10승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이 더 크다"며 "올 시즌 목표였던 통산 10승을 이뤘으니 이제는 메이저 대회 우승을 향해 다시 시작하겠다. 하반기에는 메이저 대회가 세 번 남아 있는 만큼 더욱 철저히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다연. ⓒ K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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