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주 선배님 없었으면 뒷이야기에 힘 안 실렸을 것”
“걱정 했지만, 재밌게는 만들 수 있을 것이란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 있었다.”
첫 드라마에서 최고 시청률 13.6%를 기록하는 성과를 거뒀다. 고혜진 PD는 ‘영혼 체인지’라는 쉽지 않은 소재를 다룬 ‘신입사원 강회장’을 통해 드라마 도전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예능을 거쳐 영화,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소화한 고 PD의 경험이 제대로 빛을 발했다.
'신입사원 강회장' 고혜진 PDⓒJTBC
예능 ‘크라임씬’ 시리즈부터 드라마 ‘마이 유스’,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 ‘눈이 부시게’에 이르기까지. 고 PD는 JTBC에서 ‘다양한’ 작품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에는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를 연출하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신입사원 강회장’의 결과는 남달랐다. 첫 드라마 연출작에서, 최고 시청률 13.6%를 기록하며 기분 좋게 첫 도전을 마무리했다.
‘신입사원 강회장’은 사업의 신이라 불리는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 사고를 당하면서 원치 않는 2회차 인생을 살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혼 체인지’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바탕으로, 미스터리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가 하면 때로는 로맨스로 설렘을 유발하기도 했다. 유쾌하지만 너무 가볍지 않은 ‘신입사원 강회장’의 톤을 조절하는 것이 어려울 법도 했지만, 고 PD는 “유연한 시청자들 덕분”이라며 시청자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확한 작품이다. 수사물이면, 끝까지 수사에만 집중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우리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어떨 땐 스릴러 같았다가, 어떨 땐 가족 드라마 같기도 하다. ‘정신없다고 생각하실까’ 그런 우려도 있었다. 그런데 너무 잘 봐주신 것 같다. 요즘 특히 다양한 작품을 접하고, 숏폼으로도 콘텐츠를 즐기시지 않나. 유연하게 봐주시는 것 같다.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걸 좋아해 주시는구나’를 느꼈다. 내가 옛날 방식으로 생각했구나 싶더라.”
방송 내내 호평을 받았지만, 결말 부분, 그룹 있지 류진이 이준영과 영혼이 바뀌는 ‘깜짝’ 마무리엔 호불호가 갈렸다. 권선징악으로 극이 마무리된 이후 하나의 재미 요소로 담긴 것이지만 ‘신입사원 강회장’에 깊게 몰입하던 시청자들은 아쉬움을 느꼈다. 고 PD는 이 같은 쓴소리 또한 감사하다며 “많이 배웠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톤 앤 매너는 코믹이었다. 중반부를 지나며 조금 무거워지기는 하지만, 무조건 행복하게 끝나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던 중 시작과 끝을 박치기로 마무리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주인공의 미래에 많이 몰입해주셨더라. 우리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싶었다. 우리는 한 덩어리로 보는데, 시청자는 일직선을 따라가다 보니 우리와 다를 수 있겠더라. 하룻밤 지나고 나니 괜찮다는 반응도 있으시더라. 예쁘게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했다. 좋은 양분이 됐다.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고 PD의 말처럼, 이 드라마는 코믹과 진지함을 오가며 판타지적인 설정을 자연스럽게 납득시킨다. 주인공들의 영혼이 뒤바뀌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작품은 많았지만, ‘신입사원 강회장’은 이를 통해 인생의 의미를 되짚는 한편 권력 암투를 통해 긴장감도 탄탄하게 조성했다. 재미에 ‘신입사원 강회장’만의 메시지까지 놓치지 않은 것이 이 작품만의 매력이 됐다.
“70대 회장의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청년이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이 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놓치지 않고 가지고 가야 했던 건, 회장의 성장기다. 그가 영혼체인지를 겪지 않았으면, 딸에게 사과할 수 있었을까. 70대 할아버지의 성장이 핵심인 작품은 드물었던 것 같다. 노년에 접어든 인물이 자식의 입장이 돼 인생을 돌아볼 기회는 많지 않다. 그게 이 드라마의 차별점이었던 것 같다.”
이를 묵직한 연기로 소화해 준 손현주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20대 청년의 몸에 빙의한 70대 손현주를 연기한 이준영을 향한 극찬도 이어졌다. “베테랑들 덕분에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며 거듭 동료들에게 공을 돌린 고 PD였다.
'신입사원 강회장' 손현주·고혜진 PD·이준영ⓒJTBC
“손현주 선배님이 첫 회에 톤을 안 잡아주셨으면 뒷이야기에 힘이 안 실렸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준영을 보며 강 회장이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손현주의 임팩트가 컸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준영도 톤을 너무 잘 잡아줬다. 내가 잡아준 건 없다. 웃는 것도 현장에서 봤다. 처음엔 그 웃음은 뭐지 했는데, 너무 재밌더라. 그 웃음을 이준영이 이어받으며 일관성이 생겼다. 설정이 통한 건 다 회장님 덕분이라고 여겼다.”
예능, 영화를 거쳐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섭렵한 경험도 큰 도움이 됐다. 첫 드라마 연출작에서 판타지와 코미디, 미스터리를 모두 보여줘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받아 부담감도 느꼈다. 그러나 가리지 않고 쌓은 그간의 경험이 단단한 바탕이 됐다.
“스스로에 대한 걱정은 있었다. ‘첫 작품을 이걸로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컸다. 드라마국 오기 전에 예능국을 거쳤는데, ‘내가 그런 커리어를 쌓은 이유가 이것 때문일거야’라고 생각했다. 예능국에서 선배님들께 많이 배운 코믹한 호흡이라던가. 그런 걸 적용해 보자 싶었다. 재밌게는 만들 수 있겠다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가진 장점, 스킬을 마음껏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간 쌓은 다양한 경력이 득이 됐다.”
앞으로도 장르를 가리지 않고 도전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지금은 ‘좋아하는 것’보다 ‘맡겨주는 것’을 최선 다해 해내겠다는 고 PD가 다음에는 또 어떤 새로운 작품으로 시청자들을 찾을지 기대가 된다.
“ 영화 ‘하얀 차를 탄 여자’는 내가 좋아하는 결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입봉작이었던 이번 작품은 ‘해볼래?’라고 맡겨주셔서 해본 작품이다. 두, 세 번째까지는 그래도 될 것 같다. 보는 분들이 ‘이 연출에게 이런 장점이 있구나’라고 생각해 주실 수도 있고, 아니면 ‘이걸 해볼래’라고 맡겨 주실 수도 있을 것 같다. 동료들이 보는 눈을 따라가 보고 싶다. 내게 주어지는 대본을 해보고 싶다. 잘할 것 같다고 여겨주시는 걸 믿어보고 싶다. 처음부터 좁혀서 갈 이유는 없을 것 같다. 다양하게 해볼수록 많이 배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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