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4일 하반기 경제전략 발표
반도체 기반 실질성장률 3.0% 목표
중동전쟁·고환율 속 반도체만 의지
KDI “중동전쟁 불확실성 남아”
경제성장률 이미지. ⓒ제미나이
정부가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를 3.0%로 제시했다.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수출 호조를 발판으로 5년 만에 3% 성장 시대를 열겠다는 구상이다.
기대를 키우는 정부와 달리 현실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중동전쟁 장기화 가능성과 고유가, 고환율, 고물가가 여전히 우리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역대급 기록을 세운 수출도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반도체’ 뿐이다.
재정경제부는 14일 발표한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에서 올해 실질성장률을 3.0%로 전망했다. 중동전쟁이라는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반도체 수출이 예상보다 크게 증가하고, 적극적인 재정 운용이 뒷받침되면서 성장세가 확대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정부는 올해 경상성장률도 12.3%로 30년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가 애초 목표였던 2.0% 성장에서 3.0%로 상향한 데는 국제통화기금(IMF) 전망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최근 IMF는 지난 8일 발표한 ‘세계경제수정전망(World Economic Outlook Update)’에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이는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1.9%) 때보다 0.7%p 높인 수치다.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3.1%에서 3.0%로 낮추고 선진국(1.8→1.7%)과 신흥개도국(3.9→3.8%) 모두 하향 조정한 것과 비교된다.
반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시각은 다소 신중하다. KDI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IMF와 유사한 2.5%로 전망했다. 반도체 수출 호조와 내수 회복이 이어지더라도 중동전쟁으로 인한 유가 상승과 세계경제 둔화, 건설경기 부진 등이 성장률을 끌어내릴 것으로 분석했다.
KDI는 최근 ‘KDI 경제전망-2026 상반기’ 보고서를 통해 “내수는 소득 여건이 개선되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중동전쟁으로 하방 위험이 확대됐다”며 “대외 여건을 보면 중동전쟁 불확실성이 높게 유지되고 글로벌 성장세도 다소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최근 수출 호조를 이끄는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높은 수요는 향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할 것”이라며 악재와 호재를 동시 예측했다.
KDI는 올해 2.5%에 이어 내년에는 1.7% 성장률을 예측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공급 능력이 빠르게 확충되는 경우 경제성장세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중동전쟁이 격화하거나 장기화하는 경우 원자재 수급 차질과 생산 비용 상승에 따라 성장세가 악화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정리했다.
반도체 부실하면 경기 반등 요인 사라져
정부가 3% 성장을 자신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반도체다. 세계적인 AI 투자 확대와 데이터센터 증설이 이어지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 수출은 이에 힘입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KDI 역시 올해 수출이 4.6%, 설비투자가 3.3%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며 성장의 핵심 동력이 반도체라는 사실에 동의했다. 상품수지와 경상수지 역시 반도체 수출 증가에 힘입어 사상 최대 수준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3.0% 성장률에 고개를 갸웃하는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은 역설적으로 반도체다. 지나치게 반도체만 의존한 성장인 터라 반도체 경기가 자칫 경직되면 경제성장률을 반등시킬 요인이 사실상 전무하다.
반도체 경기와 달리 건설투자 등은 하락 또는 보합세가 예상된다. KDI는 건설투자가 올해 0.1% 증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소비 역시 물가 부담 속에서 2.2%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26년 하반기 경제성장전략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물가도 지켜봐야 한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는 더 위축된다. 금리 인상 압력도 커진다. 금리가 높아지면 기업 투자는 둔화한다.
물가가 오르면 같은 생산량이라도 가격이 커져 명목 GDP가 늘 수 있다. 명목 성장률이 물가상승에 의해 ‘부풀려’ 보일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실질성장률은 물가 영향을 제외한 지표라서 물가상승률이 높을수록 체감·실질 효과는 줄어든다.
가장 큰 변수는 중동전쟁이다. 정부는 전쟁 속에서도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KDI는 중동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성장률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지면 원자재 공급 차질과 생산비 상승이 제조업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을 경고했다.
중동전쟁 상황은 유가가 직접 영향을 미친다. 과거에는 국제유가 상승이 석유류 가격을 중심으로 영향을 미쳤다면, 중동전쟁 이후 공급망 불안이 겹치면서 소비자물가와 근원물가까지 동시에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운송 불확실성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은 일반적인 유가 상승보다 소비자물가에 약 두 배 가까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유가가 장기화하면 올해 소비자물가를 최대 1.6%p 끌어올릴 수 있다.
단일 분야 아닌 전체 경제 함께 커져야
전문가들은 경제성장률 예측 오류를 낮추기 위해서는 반도체 의존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확히는 성장 동력 저변을 넓혀야 한다.
정부는 AI 데이터센터와 피지컬 AI, 미래형 에너지, 바이오 등 신산업을 육성하고 투자형 연구개발(R&D), 전략투자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정책은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 의미가 있지만, 성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기적으로는 내수 회복이 관건이다.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면 수출이 아무리 호조를 보여도 경제 전반의 성장세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취약계층 금융지원과 주택 공급 확대, 물가 안정 대책을 병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급망 안정도 빼놓을 수 없다. 중동전쟁은 특정 지역에 대한 에너지 의존이 얼마나 큰 위험인지 다시 한번 보여줬다. 정부는 국내 생산 세액공제와 해외 공급망 투자, 원유 수입선 다변화 등을 추진 중인데, 이러한 정책이 실제 산업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거시경제 운용은 ‘유연성’이 중요하다. KDI는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정해지지 않도록 통화정책을 유연하게 운용하는 한편, 재정은 잠재성장률 제고와 취약계층 지원에 집중하면서 지출 효율화를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결국 올해 3% 성장은 불가능한 목표라기보다 달성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목표에 가깝다. 반도체 호황이라는 강력한 순풍이 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 바깥에는 중동전쟁과 고유가, 고환율, 내수 부진이라는 역풍이 여전히 거세다.
정부가 제시한 3% 성장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반도체 수출 호조를 넘어 소비와 투자, 지역 경제와 비(非) IT 산업까지 성장의 온기가 확산해야 한다. 향후 한국경제 성패는 결국 ‘반도체가 잘되는 경제’를 ‘경제 전체가 함께 성장하는 경제’로 얼마나 빠르게 전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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