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적 가짜뉴스에 5배 손해배상, 10억 과징금까지
가짜뉴스 판단, 정부 지원받는 단체가 담당
언론 입틀막 당했던 반세기 전 군부독재 시절 데자뷔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인터넷 언론 등 온라인상에서 ‘허위·조작 정보’를 유통해 이익을 취하는 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하게 하고, 악의적·반복적으로 유포하면 최대 1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개정 정보통신망법, 이른바 ‘입틀막법’이 약 10시간 뒤부터 시행됩니다.
10억원.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도 여전히 바라보기 힘든 금액입니다. 제가 몸담은 언론사 입장에서도 만만히 볼 금액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 법을 ‘디스’하다가 저 법의 시범케이스가 되는 건 아닌지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는 손이 다 떨립니다.
법의 취지는 흠잡을 데 없습니다. 악의적인 가짜뉴스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에 더해 막대한 과징금까지 부과해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안 쓰면 되지 왜 겁을 내냐고요? 물론 악의적인 가짜뉴스를 써본 적도 없고 쓸 생각도 없습니다. 그래도 저 법은 무섭습니다.
세상에 등장하는 모든 법은 좋은 취지를 담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이 법안을 발의하면서 대놓고 ‘이 법은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의 사적 이익을 위해 국민을 괴롭히려는 악법이다’라고 명시해 놓진 않으니 당연히 그렇죠. 문제가 되는 건 그 법 뒤에 숨겨진 속셈, 혹은 그 법이 악용될 가능성입니다.
좋은 취지의 법이라도 맹점을 파고들어 본인의 이익을 극대화하거나 앙심을 품은 대상을 괴롭히는 용도로 악용할 여지가 있게 마련입니다. 법을 집행할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자의적 해석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자는 아무래도 법안의 설계자겠죠. 입틀막법은 지난해 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발의되고 통과됐습니다.
손해액의 5배를 배상하는 징벌을 당하든, 10억의 과징금을 두들겨 맞든 처벌 대상이 되려면 유통시킨 정보가 ‘악의적인 가짜뉴스’라는 판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 판단은 ‘사실확인 단체’가 맡는다고 합니다. 이 단체는 민간단체라고는 하지만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산하 투명성센터의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받습니다.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힘든 구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대통령, 혹은 정부, 혹은 여당이 매우 불쾌해 할 만한 기사를 쓰거나 정보를 유통시켰다고 칩시다. 그게 ‘가짜뉴스’인지, 그걸 ‘악의를 가지고’ 유통시켰는지 여부를 여당이 설계한 법을 가지고 정부 지원을 받는 단체에서 판단한다면, 공정한 판단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진보와 보수 양극단에 위치한 두 명의 유튜버 김어준씨와 전한길씨를 예로 들어 봅시다. 이들은 정보의 진위여부는 둘째 치고 본인이 속한 진영으로부터의 지지(=수익)를 이끌어 내기 위해 극단적인 의도성을 가지고 정보를 유통합니다. 정치 성향으로는 대척점에 있지만 사업 모델은 상당히 비슷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 둘이 비슷한 강도의 파장을 불러올 거짓 정보를 동시에 유통시켰을 때 동일한 처벌을 받게 될까요? 정부와 여당은 그렇다고 하겠지만, 그 울타리를 벗어난 사람들의 시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두 사람 각각의 의도가 선의였는지 악의였는지에 대한 판단, 유통시킨 정보가 거짓이었음을 인지했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 그 행위가 이익과 직결됐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모두 자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높으신 분의 격노를 불러올 기사를 썼다가 언론인과 언론사가 치도곤을 당하고, 그런 사례가 쌓이면서 공포에 질려 스스로를 검열했던 시대가 불과 반세기 전에 있었습니다. ‘입틀막법’을 통해 그 상황이 재현되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됩니다. 이미 국민들은 공포에 떨며 온라인 기사에 다는 댓글을 자기 검열하고 있습니다. 유튜버, 기자들도 ‘시범 케이스’가 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려야 할 시절입니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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