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세계관 확장부터 리얼리티 라방까지…‘주객전도’ 된 미디어 생태계
TV 속 이야기가 끝난 시점, 그러나 ‘진짜 방송’은 그때부터다. 드라마 종영 이후 이야기가 온라인 특별판으로 이어지고,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완성된다. TV 속 콘텐츠가 플랫폼을 넘나들며 확장하고 있다. 이런 류의 콘텐츠가 기존에는 NG 모음이나 촬영장 뒷이야기, 출연자의 인사를 담은 팬서비스 영상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세계관을 넓히거나 인물의 깊은 속내를 담아내는 ‘본편 밖 서사’로 자리 잡았다.
ⓒMBC
시작은 16년 전인 2010년 MBC 드라마 ‘장난스런 키스’ 유튜브 특별판이다. 드라마는 백승조(김현중 분)와 오하니(정소민 분)가 결혼하며 끝났지만, 온라인에서는 그 후를 살아가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스핀오프 콘텐츠라 하면 메이킹이나 NG 영상 정도였던 2000년대 초에 드라마 결말 이후의 이야기를 별도 에피소드로 풀어낸 콘텐츠는 획기적이었다.
당시 드라마 제작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그때는 유튜브가 막 몸집을 키워가던 시점이었다. 요즘처럼 온라인 콘텐츠를 당연하게 붙이던 때는 아니었지만, 김현중의 해외 팬덤도 있었고 제작사 차원에서 새로운 방식의 시도를 해보고 싶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튜브에 공개된 ‘장난스런 키스’ 특별판 1화는 현재 조회수 1673만회를 넘겼고, 16년이 지난 지금도 해외 시청자들의 댓글이 이어진다. 당시에는 팬서비스와 온라인 프로모션 성격의 시도였지만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검색과 알고리즘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되고 있다.
이후 드라마 영역에서의 ‘본편 밖 서사’는 플랫폼 다변화와 함께 디지털 독점 콘텐츠 형태로 정교해졌다. SBS ‘그 해 우리는’은 본방송을 마치고 SBS 유튜브 공식 채널을 통해 본편 내에서 짧게 조명된 국연수(김다미 분)와 최웅(최우식 분)의 다큐멘터리 풀버전 영상을 공개하며 시청자들을 드라마 세계관 속에 빠져들게 했다.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는 제작사 에그이즈커밍과 방송사의 공식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를 통해 ‘슬기로운 캠핑생활’ 등 독점 스핀오프 콘텐츠를 선보였다. 주인공 5인방 일명 ‘99즈’가 대학 시절부터 밴드를 한다는 설정을 실제 배우들에게도 그대로 적용해, 밴드 라이브 무대를 공개했다. 방송 후에도 시청자들과 작품 팬들이 이들의 관계성과 캐릭터 소재로 2차 창작할 수 있도록, 제작진이 또 다른 소스를 제공해 세계관을 연장하는 계기가 됐다.
이 밖에도 본편에서 빠진 미방송분을 공개하거나, 첫 방송 전 배우들이 작품 관련 내용을 직접 코멘터리 하는 콘텐츠는 이제 보편화됐다. 여기에 극 중 역할에 맞춘 영상도 제작했다. 예를 들어 아이돌을 소재로 한 ‘선재 업고 튀어’ 제작진은 실제 직캠처럼 보이는 무대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해 시청자가 몰입을 극대화할 수 있게 도왔다.
이러한 TV 콘텐츠와 온라인 영상 플랫폼 연계 흐름은 본방송보다 스핀오프 영상을 더 기다리게 하는 ‘주객전도’ 현상도 낳았다. 특히 플랫폼 다변화 속에서도 압도적인 이용자 수와 체류 시간을 보유한 유튜브가 긴 호흡의 비하인드나 라이브를 담아내는 중심 거점 역할을 하고, 이를 쪼갠 하이라이트 클립이 틱톡이나 인스타그램 릴스 등 SNS로 파생·확산되는 구조가 정착됐다.
ⓒSBS
콘텐츠의 구조적 확장이 가장 돋보이는 영역이 연애 리얼리티 장르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ENA·SBS Plus ‘나는 솔로’로, 솔로 남녀들이 모여 사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극사실주의로 풀어낸 이 프로그램은 한 기수가 끝나면 제작사 유튜브 채널 ‘촌장엔터테인먼트TV’를 통해 최종회 직후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다. 이 유튜브 방송은 촬영 에피소드와 최종 결정 이유 등의 이야기가 편집 없이 방송돼 본 방송보다 더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나는 SOLO’ 유튜브 라이브 콘텐츠를 기획한 남규홍 촌장엔터테인먼트 대표도 “방송 후 못다 한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는 기회를 드리려 기획했다”며 “출연자와 방송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고자, 녹화가 아닌 라이브 위주로 진행한다. 그래서 많은 분이 최종 선택 이후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기다려 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갈등, 오해, 일방적 구애 등 편집된 본방보다, 출연진들의 솔직한 라이브 모습을 선호하는 시청자들의 성향을 제대로 포착한 셈이다.
ⓒSBS PLUS 유튜브 채널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제작진 입장에서 이처럼 온라인 채널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은 매우 효율적인 전략이다. 최근 ‘나는 솔로’가 선보인 ‘선배의 참견’처럼 이전 기수 커플이 현재 방송을 분석하는 리액션 토크를 얹거나, 채널A ‘하트시그널’, 티빙 ‘환승연애’처럼 비공개 대화가 담긴 미방분 풀버전을 공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시청자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파생 콘텐츠까지 소비한다는 점을 이용하면, 본방송은 한 편의 정교한 스토리 라인으로 편집해 연출 부담을 덜고, 진짜 속내와 완결판은 온라인으로 넘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TV콘텐츠와 영상 플랫폼의 연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본편 밖 서사’가 비대해지면서 문제점도 드러났다. 드라마의 경우, 본방 외 플랫폼에서 배우들의 사생활이나 예능적 이미지가 과도하게 노출되면서 자칫 본편 캐릭터를 향한 시청자의 몰입도가 깨지는 리스크를 안게 됐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그 부작용이 더 즉각적이다. 자극적인 갈등이 부각되다 보니 방송 중 쌓인 예민한 감정들이 온라인이라는 날것의 공간에서 폭발하곤 한다. 실제로 방영된 리얼리티 프로그램 일부 기수 출연진들의 경우, 여성 출연자들 사이에 파벌이 형성돼 특정인을 소외시키는 모습이 온라인 폭로전으로 번지며 갑론을박이 일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유튜버와 시청자의 악의적인 2차 콘텐츠 창작이다. 공식 제작사는 전체 흐름과 가이드를 준수하며 서사를 빌드업하지만, 오직 트래픽과 논란 유발을 목적으로 하는 일부 유튜버들은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 앞뒤 장면을 악의적으로 잘라내고 특정 장면만 부각한 자막을 달아 부정적인 여론을 선동한다. 이러한 무분별한 짜깁기는 출연자를 향한 무차별적인 비난과 사이버 불링으로 이어진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댓글창의 문제도 있지만, 이제는 시청자와 유튜버들의 ‘출연자 리터러시’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방송을 소비하는 방식이 온라인 등 2차 콘텐츠 창작으로 광범위하게 확산해 있다. 사이버 불링처럼 험담과 저격 콘텐츠가 2차 콘텐츠의 탈을 쓰고 늘어나는 만큼, 플랫폼 차원에서도 이러한 부작용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