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백' '나는 나의 아내다' 등 잇따라 공연
최근 국내 공연계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에서 벗어나, 지독한 결함과 모순을 지닌 이른바 ‘문제적 안티히어로’들에 주목하고 있다. 무대 위 인물들은 이기심, 외로움, 찌질함, 자기혐오 등 인간이 가진 적나라한 바닥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이는 도덕적 올바름과 완벽함을 강요받는 현실에 피로감을 느낀 현대인들에게 역설적인 해방감과 위안을 안긴다.
'플리백' '나는 나의 아내다' 공연 포스터 ⓒ브러쉬씨어터, 두산아트센터
이러한 경향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오는 19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개막하는 연극 ‘플리백’(Fleabag)이다. 2013년 에든버러 프린지 신작상 등을 수상한 동명의 여성 1인극이 원작이다. 영어권에서 ‘지저분한 사람’이나 ‘문제투성이’를 뜻하는 제목처럼, 작품은 런던에서 기니피그 카페를 운영하며 충동과 실수를 반복하는 주인공의 일상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김히어라, 김주연, 김규남이 번갈아 연기하게 될 주인공 플리백은 자유롭고 무심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그 이면에는 친구의 죽음, 가족과의 단절, 관계 속의 공허함이 켜켜이 쌓여있는 인물이다. 작품은 외로움과 죄책감, 상실, 자기혐오가 어떻게 한 사람의 자기 인식을 무너뜨리고 삶의 균형을 흔드는지 포착한다. 관객은 엉망인 삶 속에서도 끝내 사랑과 이해를 갈구하는 한 인간의 처절한 생명력을 마주하게 된다.
동시기에 막을 올리는 또 다른 작품에서도 이 같은 인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는 24일 같은 극장의 소극장인 스페이스111에서 개막하는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는 나치와 공산정권 치하를 모두 버텨낸 실존 트랜스젠더 샤를로테의 삶을 그린다. 극중 주인공은 역사적 풍파를 견뎌낸 숭고한 투사나 무결한 피해자로 미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생존과 박물관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밀고하기도 했던 오점과 모순을 지닌 인간으로 묘사된다.
두 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하나의 극장 안에서 교차 상연되며, 결함 있는 인간들이 가진 날것의 생명력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안톤 체호프 고전 재해석한 연극 '반야 아재'(위)와 '바냐 삼촌' ⓒ국립극단, LG아트센터
인간의 유약함과 이기심을 집요하게 응시하는 시도는 고전 재해석 무대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난다. 최근 막을 내린 LG아트센터의 ‘바냐 삼촌’과 국립극단의 ‘반야 아재’ 역시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안톤 체호프의 고전을 재해석한 두 작품은 인간의 숭고함 대신 무기력, 질투, 집착으로 얼룩진 평범한 인간들의 바닥을 적나라하게 대면시키며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 신작들은 시대와 소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인물의 오점과 실패를 도덕적으로 단죄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정면으로 드러낸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한 공연 관계자는 “최근 무대에 올려지는 신작들의 경우, 관객에게 당위적인 교훈을 주거나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하는 대신 거칠고 매끄럽지 않은 진짜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경향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관객들은 극 중 인물들이 겪는 결핍과 모순을 바라보며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타인과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시선의 폭을 확장하게 된다”며 “바로 이 점이 지금의 관객들이 무대 위 ‘문제적 인간들’이 던지는 질문에 공감하는 이유일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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