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1년] "GPU보다 전기부터"…AI 강국 막아선 전력망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입력 2026.05.27 08:00  수정 2026.05.27 08:00

AI 컴퓨팅센터·데이터센터·반도체 클러스터 앞세웠지만 전력 인프라 병목

HBM·파운드리·AI 데이터센터 수요 급증…송전망 구축 속도는 더뎌

산업계 "AI 경쟁력은 모델보다 인프라"…전력 확보가 투자 핵심 변수로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정부 1년 동안 산업 정책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이 있었다. 정부는 국가 AI 컴퓨팅센터와 첨단 GPU 확보, 데이터센터 확대, 반도체 클러스터 지원을 앞세우며 'AI 강국'을 핵심 성장 전략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실제 산업 현장에서 기업들이 부딪힌 병목은 AI 모델 경쟁이나 GPU 부족만이 아니었다. AI 데이터센터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라인이 늘어날수록 전력 수요는 급증하는데, 이를 뒷받침할 송전망과 계통 인프라 구축 속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GPU 확보·데이터센터 등 구상 논의됐지만...

정부의 AI 드라이브는 공격적이었다. 정부는 2027년 개소를 목표로 국가 AI 컴퓨팅센터를 추진하고,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AI 컴퓨팅 자원을 확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단기적으로는 재정을 투입해 첨단 GPU를 확보하고, 민간 클라우드 기업의 데이터센터에 GPU를 순차 구축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AI 컴퓨팅 자원과 데이터센터를 국가 산업 인프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AI 인프라 경쟁이 곧 전력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센터는 서버를 돌리는 전력뿐 아니라 냉각, 전원 안정화, 백업 설비까지 대규모 전력을 필요로 한다. 특히 생성형 AI와 초거대 모델 확산으로 고성능 GPU 서버가 늘면서 전력 밀도는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비가 2030년 945TWh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2024년 대비 두 배 수준이다.


국내에서도 같은 압박이 현실화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수도권과 주요 산업 거점에 집중되고, 반도체 생산라인은 용인·평택 등 특정 지역에 몰리고 있다. 필요한 것은 단순한 발전량 확대가 아니라, 전기를 필요한 곳까지 제때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는 송전망과 계통 인프라다. AI 산업은 디지털 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기를 먹고 땅 위에 지어지는 물리 인프라 산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와 HBM 수요 확대에 맞춰 용인 일대에 대규모 생산 거점을 조성하고 있다. 이곳은 향후 한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 기지가 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대규모 전력 공급과 송전망 확보가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가 15GW에 달할 수 있다고 보고, 용인 내 발전소와 전력설비 부족, 송전망 확충 필요성을 지적했다.


AI 반도체 경쟁의 핵심인 HBM 생산도 전력 문제와 맞물려 있다. HBM은 AI 가속기에 필수적인 메모리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증설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다. HBM 생산라인과 첨단 패키징, 파운드리 공정 등은 모두 고품질 전력과 안정적인 설비 운영이 필수다. 전력 공급이 지연되면 설비 투자가 끝나도 생산능력 확대가 계획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AI 반도체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반도체 장비와 클린룸뿐 아니라 전력망도 함께 깔려야 하는 셈이다.


최태원SK그룹 회장이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SK
최태원 "칩, 에너지(전기) 모두 병목 현상" 눈길

기업에서도 AI 인프라 병목에 대한 경고는 공개적으로 나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 CEO 서밋 부대행사 '퓨처테크포럼: AI'에서 "AI 데이터센터를 많이 지어야 하는 현재, 그 안에 들어가는 칩부터 에너지까지 모두 병목현상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이런 병목을 풀어내는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고 봤지만, 이는 동시에 AI 경쟁력이 GPU와 모델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낸 발언이기도 하다.


최 회장은 이후 올해 국회 세미나 특강에서도 AI 시대 성장의 병목으로 자금, 전기, GPU, HBM 메모리 부족을 꼽고 10~30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업계 최전선에서는 AI 경쟁력을 단순 모델 개발이나 GPU 조달이 아니라, 대규모 전력과 메모리 공급, 데이터센터 입지까지 묶은 인프라 경쟁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해외 주요국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IEA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로 전력망 부담과 지역별 병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는 전력망 제약으로 신규 데이터센터 전력 접속이 사실상 보류됐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도 전력망과 공간 제약 등을 이유로 신규 데이터센터 개발과 증설을 제한한 바 있다


이 때문에 AI 산업 정책은 더 이상 GPU 확보나 데이터센터 부지 조성만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가 AI 컴퓨팅센터를 짓고, 데이터센터 투자를 유치하고,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더라도 전력망이 뒤따르지 않으면 설비는 있어도 제대로 돌릴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탓이다. AI 강국 전략의 병목은 컴퓨팅 자원을 확보하는 단계에서, 그 자원을 실제로 가동할 전력 인프라를 확보하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


전력 인프라 병목은 이재명 정부만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려운 누적 과제다. 송전망 확충과 계통 보강은 오랜 기간 미뤄진 구조적 문제이고, 지역 갈등과 인허가 지연도 쉽게 풀리지 않는 문제기 때문이다. 다만 AI를 국가 전략으로 내건 정부라면 전력망 문제를 후순위로 둘 수 없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를 산업정책의 전면에 세운 만큼, 전력 수요 예측과 송전망 확충, 입지 전략, 저탄소 전원 확보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계에서는 향후 투자 판단의 핵심 변수가 세제나 보조금만은 아니라고 본다. 언제, 어느 지역에, 얼마나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지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팹의 입지를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전력 공급 일정이 불확실하면 기업은 투자를 늦추거나 해외 입지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AI와 반도체를 미래 성장축으로 삼겠다는 정부 전략이 실제 투자로 이어지려면 전력망 실행력은 필수 전제"라고 말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임채현 기자 (hyun0796@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