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체’, 단절된 세상 속에서 피어난 ‘개별성’의 공조 [D:볼 만해?]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5.21 08:40  수정 2026.05.21 08:45

장르적 긴장감 뒤에 가려진 작위적 전개, 전지현·신현빈이 당긴 후반부 몰입감

‘부산행’, ‘반도’를 통해 K-좀비의 새 장을 열었던 연상호 감독이 이번엔 좀비를 통해 초고속 교류의 시대 속에서 생겨나는 집단적 사고의 위험성을 이야기한다.


‘군체’ 스틸컷 ⓒ쇼박스

영화 ‘군체’가 기존 좀비물과 궤를 달리하는 지점은 감염자들이 실시간으로 진화하며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처럼 움직인다는 점이다. 통제 불능의 개체들이 아닌, 점균류나 개미의 페로몬 소통을 연상시키는 점액질 설정을 통해 이들은 철저한 '집단지성'으로 구동된다. 좀비들의 아방가르드한 움직임은 시각적으로 기괴하고 압도적인 압박감을 선사한다.


배우들의 열연 역시 볼거리를 더한다. 서영철 역을 맡은 구교환은 얼굴 근육과 온몸을 거칠게 쓰는 일명 ‘마그네슘 부족 액션’으로 통제되지 않는 네트워크 상태를 소름 끼치게 묘사한다. 반면, 극적인 변화를 겪는 최현석 역의 지창욱은 짧은 식칼을 쥐고 정교한 합이 돋보이는 액션을 선보인다.


‘군체’ 스틸컷 ⓒ쇼박스

하지만 거대한 자본이 투입된 대작답게 시각적인 스케일은 키웠으나, 그만큼의 장르적 재미를 담보하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영화는 초고속 소통 시대의 명암과 인간관계의 단절을 꼬집는 좋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이를 풀어내는 초반 스토리 전개는 다소 평면적이다. 인물들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방식이 작위적으로 흘러가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극의 긴장감에 온전히 몰입하기보다 인물들의 불통에서 오는 답답함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


특히 주변 인물들의 활용 방식이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각기 다른 개성과 취약성을 지닌 생존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유성을 지켜내는 과정이 흥미롭게 출발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서사의 깊이를 더하기보다 메인 캐릭터의 부각을 위해 소모되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럼에도 영화의 서두에서 소개되는 생명공학 박사 권세정(전지현 분)의 존재감은 묵직하다. 모두가 하나의 거대한 의견에 동화되어 야만으로 퇴화해 갈 때, 홀로 다른 의견을 낼 줄 아는 세정의 서사는 작품의 핵심 주제를 관통한다. 따로, 또 같이 힘을 모으는 세정과 공설희(신현빈 분)의 시퀀스 역시 영화에서 가장 집중하게 만드는 백미다.


현대 사회의 이면을 날카롭게 비틀어낸 ‘군체’. 아쉬운 스토리 전개와 주변부 캐릭터의 소모를 견뎌내야 하는 숙제가 있지만, 거대한 집단성에 맞서 소수의 의견을 보호하려는 생명체의 본능과 연대의 메시지 속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은 관객이라면 즐길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21일 개봉, 러닝타임 122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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