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무장 속 장거리 화력 확보 경쟁
천무, 하이마스·유로-펄스와 경쟁해 노르웨이 수주
K9 신뢰가 천무·현지 생산·MRO로 확장
천무 다연장로켓.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유럽 방산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러시아 위협이 커지면서 유럽 국가들이 포병과 장거리 타격 무기를 서둘러 확보하는 가운데 K9 자주포와 천무 다연장로켓 체계가 잇달아 선택받고 있다. 한 번 도입한 국가들이 다시 물량을 늘리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에스토니아와 핀란드에서 각각 천무와 K9 추가 수출 성과를 냈다. 에스토니아는 지난해 12월 천무 6문을 도입한 지 5개월 만에 3문을 추가로 들여오기로 했다. 핀란드는 K9 자주포 112문을 추가 계약하며 터키, 폴란드에 이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내 세 번째 200문 이상 K9 운용국이 됐다.
노르웨이에서는 천무 신규 수주를 따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노르웨이와 천무 16문, 유도미사일, 종합군수지원 등을 포함한 9억2200만 달러 규모의 '천무 풀패키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 사업은 세계 최대 방위산업체인 미국 록히드마틴의 하이마스(HIMARS), 유럽 KNDS의 유로-펄스(EURO-PULS)와 경쟁한 끝에 따낸 계약이다.
노르웨이 수주는 천무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하이마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의 대표 격으로 꼽히고 유로-펄스는 유럽산 대안으로 거론되는 체계다. 천무가 이들과 경쟁해 NATO 국가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가격뿐 아니라 사거리, 납기, 탑재 탄종, 현지 운용 조건을 함께 충족했다는 의미가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노르웨이 당국은 천무가 최대 500㎞ 사거리 등 지상 기반 포병 체계에 요구한 조건을 충족했고 가장 빠른 인도 일정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노르웨이 의회 일부에서는 유럽산 미사일 대안 개발론도 제기됐지만 정부는 시간과 비용 부담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천무가 하이마스와 유로-펄스 사이에서 선택된 배경에는 단순 가격보다 성능, 납기, 현지 운용 기반을 함께 제공할 수 있는 패키지 경쟁력이 작용한 셈이다.
이처럼 유럽 국가들이 한화 무기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속도'다. 하이마스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실전 검증 이미지를 확보했지만 수요가 폭증하면서 납기 부담이 커졌다. 일부 시장에서는 하이마스 등 기존 서방 장거리 화력체계 인도까지 2~4년 이상 걸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폴란드에 호마르(천무의 수출명)-K 126대를 첫 계약 이후 2년7개월 만에 인도한 사례를 갖고 있다. 성능뿐 아니라 실제 전력화 시점이 중요해진 유럽 재무장 국면에서 천무의 납기 경쟁력이 부각되는 이유다.
K9과 천무는 이런 수요에 맞는 대표 장비다. K9은 기동성과 연속 사격 능력을 갖춘 자주포다. 천무는 여러 발의 로켓을 발사해 먼 거리의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화력체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에서는 포병 화력과 로켓 전력, 탄약 공급 능력이 전쟁 지속력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커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강점은 장비만 파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 천무 발사대와 유도미사일, 예비부품, 교육·훈련, 정비, 현지 생산까지 묶어서 공급할 수 있다. 무기를 산 뒤에도 탄약과 부품, 정비, 운용 교육이 계속 필요하기 때문에 후속 지원 능력은 추가 발주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방산 시장에서 후속 발주는 일반 소비재의 재구매와 다르다. 이미 정비망과 훈련 체계, 탄약 공급망을 갖춘 상태에서 같은 무기를 더 들여오는 구조다. 새 장비를 처음부터 도입하는 것보다 훈련 기간을 줄일 수 있고 운용 위험도 낮출 수 있다. 그래서 전력을 빨리 늘려야 하는 국가는 이미 써본 무기를 다시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유럽 시장에서 계속 수주를 이어가려면 단순 수출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럽연합(EU)은 역내 방산 생산과 조달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당장은 빠른 전력 확보를 위해 한국산 무기를 선택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현지 생산, 기술 협력, 정비·부품 공급 체계를 갖췄는지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 현지 생산 기반을 넓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폴란드에서는 천무 유도미사일 CGR-080 현지 생산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 루마니아에서는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장갑차 생산·유지·보수(MRO) 거점인 'H-ACE 유럽'을 착공했다. 현지에서 만들고 고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장기 수주가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방향은 회사의 중장기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서 '현지 생산기지 확보 및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실행 과제로 제시했다. 유럽 방산 시장에서 현지 생산과 전략적 파트너십은 단순 수출을 넘어 장기 운용 생태계를 만드는 조건이 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방산 사업이 수주 확보 단계를 넘어 인도와 실적 반영, 추가 수주 확대로 이어지는 구간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반기에는 폴란드 K9·천무 등 수출 물량 인도가 본격화되며 실적 개선 흐름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6월 스페인 K9 프레임워크 계약, 7월 미국 자주포 현대화 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도 주요 수주 이벤트로 꼽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K9이나 천무는 지정학적 전쟁 상황이 이어지면서 국경을 맞댄 동유럽 국가들의 수요가 창출되고 있다"며 "폴란드와 에스토니아, 루마니아 등은 국경 수비와 전력 보강 필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이런 흐름은 몇 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번 써본 무기체계의 품질이 우수하고 운용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되면 추가 계약이나 주문으로 이어진다"며 "이웃 국가의 구매 사례도 이미 해당 제품을 운용하는 국가들의 재구매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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