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생실습'으로 돌아온 김민하 감독 "소녀들은 죽지 않는다"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5.11 08:26  수정 2026.05.11 08:27

교권·사교육·호러 코미디…김민하 감독이 ‘교생실습’에 담은 시대의 슬픔

영화 ‘교생실습’은 수능 귀신에 맞서 죽음의 모의고사를 치르게 된 열혈 MZ 교생과 흑마술 동아리 소녀들의 사투를 그린 공포 코미디다. 전작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이하 ‘아메바 소녀들’)을 통해 호러의 문법을 유쾌하게 비틀었던 김민하 감독이 다시 메가폰을 잡았고, 배우 한선화, 홍예지, 이여름, 이화원, 유선호가 합류해 한층 개성 강한 세계관을 완성했다.



사실 이 시리즈의 두 번째 항해는 한 편의 ‘역주행’ 서사에 가깝다. ‘아메바 소녀들’이 개봉 당시 ‘베놈 2’, ‘글래디에이터 2’, ‘위키드’ 등 거대 자본이 투입된 대작들 사이에서 고전했지만, 이후 OTT와 SNS를 통해 ‘걸스 나잇 무비’로 재조명되며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다. 하지만 관객의 환호와 별개로, 메가폰을 든 감독이 마주한 현실은 여전히 차가운 얼음판이었다.


“사실 전작이 어느 정도 흥행할 거라 전제하고 후속편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원래 제목도 ‘아메바 소녀들 학교괴담2: 교생실습’이었죠. 그런데 시장의 잣대는 냉정하더라고요. 3만 관객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니 결국 ‘안 된 영화’가 된 거예요. 아무리 새로운 이야기와 캐스팅이라고 설명해도 그 꼬리표가 계속 따라붙었고, 결국 눈물을 머금고 메인 타이틀을 떼어낸 채 ‘교생실습’으로 가야 했어요. 예산도 원래 계획의 절반 이하로 줄었죠. 당시 스태프들을 모아놓고 사정을 설명하며 ‘떠나도 원망 안 한다’고 했는데, 아무도 안 나갔어요. 그렇게 모두가 마지막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으로 찍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영화는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작품상과 배우상(한선화)을 받으며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러나 ‘수상’이 곧 ‘개봉’을 의미하진 않았다. 침몰 직전의 해적선을 다시 바다로 끌어올린 건 결국 전작이 증명해낸 ‘관객의 힘’이었다.


“상까지 받았는데도 개봉은 여전히 불투명했어요. 그러다 작년 9월, 전작이 OTT에서 갑자기 붐업이 된 거예요. 트위터 조회수가 수백만을 찍고 왓챠 1위에 오르는 걸 보면서 ‘아, 우리를 지지해주는 관객들이 있구나’를 처음 체감했죠. 때마침 김도연 배우가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을 받으면서 꺼져가던 불씨에 다시 불이 붙었고요. 영화는 소녀들의 우정을 다루고 있는데, 관객들이 나누는 우정과 웃음이 죽어가던 이 영화를 다시 살려준 셈이에요.”


김민하 감독은 ‘교생실습’을 단순한 후속편이 아닌, 자신만의 방식으로 확장해가는 ‘뉴 제너레이션 여고괴담’ 시리즈라고 설명했다.


“선배 감독님들이 만들어온 ‘여고괴담’을 제 세대 방식으로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됐어요. 다만 기존 시리즈처럼 감독이 계속 바뀌는 구조가 아니라, 제가 직접 하나의 세계관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죠. 그래서 가장 경계했던 것도 자기 복제였습니다. 전작과 닮았지만 다르게, 또 다르지만 같은 결을 유지하려고 고민했죠. 기존 ‘여고괴담’이 여고생들이 귀신을 만나 희생되는 이야기였다면, ‘아메바 소녀들’은 반대로 여고생들이 귀신을 만나 이겨내는 이야기예요. 그 공식을 중심에 두고, 다른 캐릭터와 다른 사건들로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확장해가고 싶었습니다.”


전편이 경쟁 사회의 압박과 청춘의 불안을 담아냈다면, ‘교생실습’은 무너진 교권과 사라진 서당,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 등 지금 시대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슬픔으로 시선을 넓혔다. 김 감독이 ‘교생실습’에서 교권과 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꺼내든 데에는, 단편 ‘버거송챌린지’가 교육영화제에 폐막작으로 초청되면서 마주한 경험이 계기가 됐다.


“교육영화제 초청돼 참석했는데 당시 서이초 교사 사건 추모 주간이자 공교육 멈춤의 날과 겹쳤어요.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죠. 그때 선생님들께서 영화 속 담임교사가 학생을 끝까지 지켜주는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교권 문제를 더 깊게 바라보게 됐죠. 이후 자료를 찾아보다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조선 우민화 정책을 위해 서당을 탄압했고, 실제로 ‘서당 사냥’이라는 이름의 토벌 작전까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우리 교육 기관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영화 안에 꼭 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학원가를 걷다가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봤는데, 문득 ‘이 시간에 학원에 오지 못하는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사교육 시장 규모는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는 현실도 충격이었고요. 결국 ‘교생실습’에는 무너진 교권, 사라진 서당,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이라는 세 가지 시대의 슬픔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김민하 감독이 전작과의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어낸 것은 아니다. 보다 무거운 현실을 담아내면서도, 기존 팬들이 반가워할 만한 시리즈 특유의 결은 곳곳에 남겨뒀다.


“코미디 안에는 결국 시대의 슬픔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교생실습’에서는 교권의 붕괴나 사라져가는 서당 문화,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 같은 현실의 슬픔을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애초에 전작과 완전히 같은 결로 갈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전작 팬분들을 위한 연결고리들은 남겨뒀어요. ‘신파는 안 돼’ 같은 대사나 메타적인 개그들, 그리고 팬들이 발견할 수 있는 이스터에그들을 곳곳에 심어놨죠.”


극 중 한선화가 연기한 은경은 이른바 ‘MZ 교생’이다. 신조어를 거리낌 없이 쓰며 교장까지 당황하게 만들지만, 누구보다 진심으로 교사가 되고 싶어 하고 학생들을 아끼는 인물이기도 하다. 결국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흑마술 동아리 소녀들을 지키기 위해 직접 뛰어드는 인물인 만큼, 김민하 감독 역시 평면적인 코미디 캐릭터로 소비되지 않길 바랐다.


“한선화 씨와는 ‘가볍게 웃기지만 결코 우습지는 않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코미디 자체보다도 영화 안에 담긴 교권의 슬픔과 시대적인 감정을 어떻게 중심에 둘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더 컸죠. 한선화 씨도 관련 단편이나 자료들을 직접 찾아보며 적극적으로 공감해주셨어요. 덕분에 영화 안에서 중심을 굉장히 단단하게 잡아주셨고, 기존에 보여주셨던 밝은 이미지와는 또 다른 결의 힘과 지구력을 보여주신 것 같아요. 관객분들도 한선화 씨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극 중 흑마술 동아리 소녀들을 연기한 홍예지, 이여름, 이화원은 각기 다른 개성과 분위기로 ‘교생실습’의 세계관을 채운다. 김 감독은 세 배우 모두 처음부터 캐릭터와 맞닿아 있던 얼굴들이었다고 돌아봤다.


“홍예지 씨는 영화 ‘보통의 가족’을 보고 처음 눈에 들어왔어요.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도 자기 몫을 굉장히 성실하게 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이후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작품마다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더라고요. ‘보통의 가족’에서는 칼바람 같은 느낌이었다면 사극에서는 봄바람 같더라고요. 그래서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여름 씨는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에서 손주연 씨와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이후 우주소녀 콘텐츠들을 보다 계속 눈에 들어왔죠. 직접 만나보니 ‘개교기념일’을 극장에서 여러 번 봤을 정도로 장르에 대한 애정이 컸고, 당시 사비로 연기 레슨도 받고 있더라고요. 캐릭터를 위해 몇 년 기른 머리를 단발로 자를 정도로 의지도 강했고요. 이화원 씨는 전작에 짧게 출연했지만 그 짧은 분량도 굉장히 성실하게 준비해주셨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더 긴 호흡으로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 하루카 역할도 처음부터 이화원 씨를 떠올리며 썼죠. ‘여고괴담’ 시리즈가 늘 신인 배우들의 등용문이었던 것처럼, 저 역시 이 시리즈 안에 새로운 얼굴들을 계속 넣고 싶었어요.”


핵심 빌런인 이다이나시는 정형화된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 서늘함과 기묘한 사랑스러움이 공존해야 하는 복합적인 캐릭터였다. 여러 방향성을 고민하던 끝에 김민하 감독은 유선호와 함께 지금의 이다이나시를 완성했고, 결과적으로 캐릭터의 방향성과 가장 잘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이다이나시라는 캐릭터는 처음부터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어요. 일본 전통 요괴 같은 여성 버전도 있었고, 사무라이나 갑옷 입은 장군 같은 이미지도 생각했죠. 그러다 유선호 씨가 시나리오를 보고 먼저 적극적으로 의지를 보여주셨고, 저도 너무 좋았어요. 유선호 씨와 함께 만들고 싶었던 건 일본 대저택 도련님 같은 이미지였어요. 겉으로는 여유롭고 선해 보이지만, 안에는 서늘함과 쎄한 기운이 있는 인물이요. 그러면서도 최종 빌런의 약점이 결국 감동이기 때문에 그런 러블리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유선호 씨가 그 균형을 굉장히 잘 표현해주셨어요. 일본어도 거의 통째로 암기하다시피 준비했고, 억양까지 굉장히 공들여 연습했어요.”


개봉을 앞둔 김민하 감독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건 전작과의 비교에 대한 부담 아닐까. 다만 그는 호평이든 혹평이든, 시리즈를 향한 모든 반응 역시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관객분들이 ‘개교기념일’과 ‘교생실습’을 비교해주시는 것 자체가 감독으로서는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어떤 분은 전작을 더 좋아하시고, 어떤 분은 이번 작품을 더 좋아하시고, 또 애정을 갖고 아쉬움을 이야기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제가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무게감인 것 같아요. 이보다 더 가벼워지면 오히려 그 슬픔들을 희화화하게 될 것 같았거든요. 다음 편에서는 지금보다 조금 더 균형을 고민해보려고 해요. 메시지와 슬픔은 유지하면서도 장르적인 재미를 더 확실하게 드릴 수 있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감독은 앞으로도 ‘아메바 소녀들’ 시리즈만의 엇나가는 감각과 예상 밖의 선택들을 잃지 않고 이어갈 예정이다.


“‘개교기념일’ 때 가장 인상 깊었던 리뷰가 ‘정답을 알기에 오답을 택한다’는 말이었어요. 장르 영화에는 보통 익숙한 공식과 정답이 있는데, ‘아메바 소녀들’ 시리즈는 계속 그 길에서 비껴가거든요. 예상되는 방향 대신 조금씩 엇나가고, 튀어나가는 선택들을 하려고 해요. 그 리뷰를 보면서 앞으로도 이 시리즈를 만들 때 그 감각은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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