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7300억 투자…글로벌 독립 전략, 어디까지 왔나 [넷플릭스 없이, 통할까③]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5.01 01:50  수정 2026.05.01 01:50

내수는 좁고 해외는 치열…토종 OTT의 이중 과제

글로벌 확장·내수 기반·정책 설계…세 축의 균형이 관건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집중도에 있다. 전 세계 190여 개국 시청자가 단 하나의 앱에서 같은 시점에 콘텐츠를 소비하고, 그 화력이 넷플릭스 자체 순위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 곳으로 집결된다. 이 응집된 에너지가 '글로벌 1위'라는 상징성을 만들고, 이는 다시 새로운 시청자를 유인하는 낙수 효과로 이어진다. 토종 OTT는 이제 그 단일 경로 바깥에 독자 노선을 만들었다. '친애하는 X'는 그 길 위에서 첫 성과를 냈다. 그러나 경로를 만드는 것과 그 경로로 흥행을 만드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여러 플랫폼에 동시 공개하더라도 플랫폼마다 순위는 따로 집계되고 마케팅 화력도 나뉜다. 화제가 한곳으로 모이지 않는 구조인 만큼, 파급력의 밀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마케팅 자원의 격차는 숫자로 드러난다. 넷플릭스의 연간 마케팅·광고 지출액은 약 29억 달러(4조 원)로 추정된다. 단일 플랫폼이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동시에 특정 작품을 밀어올리는 화력이다. 콘텐츠 투자도 2024년 약 160억 달러(약 21조 원), 2025년에는 180억 달러(약 24조 원)로 해마다 늘고 있다. 넷플릭스 기준으로 다른 미국의 오리지널에 비해 예산이 적었던 '오징어 게임' 시즌1(제작비 약 214억 원)이 전 세계 동시 마케팅 효과로 1억 1100만 가구가 시청하는 히트를 만들어낸 것은, 집중된 유통 구조가 얼마나 강력한 레버리지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티빙의 2024년 매출은 4355억 원, 웨이브의 2024년 매출은 3313억 원으로 양사 합산 약 7668억 원에 불과하다. 넷플릭스 한국 법인의 2024년 매출 약 9500억 원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마케팅에 쏟아부을 수 있는 여력이 구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친애하는 X'가 라쿠텐 비키에서 108개국 1위를 기록했지만, 그것이 넷플릭스 오리지널급 전 세계적 화제성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 이 한계를 보여준다.


해외에서 로컬 OTT가 글로벌 플랫폼에 맞서 버텨온 사례로 일본이 자주 거론된다. 2024년 기준 일본 OTT 시장 점유율은 넷플릭스 21.5%, 유넥스트(U-NEXT) 17.9%,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12.9%, 디즈니플러스 8.9% 순이다(일본 시장조사업체 GEM파트너스 조사). 넷플릭스와 로컬 1위 유넥스트와의 격차는 불과 3.6%포인트다. 유넥스트의 연간 매출은 약 800억 엔(약 7600억 원)으로 티빙과 웨이브 합산을 웃돌며, 2024 회계연도 순이익 150억 엔(약 1400억 원) 이상의 흑자까지 냈다. 반면 한국은 문체부·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년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 기준 넷플릭스 이용률 47.6%, 티빙 13.1%로 격차가 34.5%포인트에 달하고, 토종 OTT는 흑자를 낸 적이 없다. 일본 로컬 OTT와의 간극이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 이유다.


유넥스트의 경쟁력은 전략의 단순함에서 나왔다. 해외 진출 없이 일본 내수 시장에만 집중하면서, 넷플릭스가 채울 수 없는 로컬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깊게 쌓았다. 글로벌 플랫폼과 정면 승부를 피하는 대신 일본에서 많은 콘텐츠를 보유한 플랫폼이라는 지위를 구축한 것이다. 토종 OTT가 글로벌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일본 로컬 OTT는 내수를 다지는 것만으로 흑자를 냈다.


그러나 이 전략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내수 시장의 ‘절대 규모’에 있다. 일본은 1억 20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바탕으로 내수 시장만으로도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탄탄한 체급을 갖췄다. 유넥스트가 1400억 원대의 순이익을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인구 기반이 자리 잡고 있다. 반면, 5000만 인구의 한국은 치솟은 제작비를 회수하기엔 시장의 천장이 지나치게 낮다.


가입자당 평균 단가(ARPU)와 유료 구독 문화의 차이도 결정적이다. 유넥스트의 월 구독료는 약 2400엔(약 2만 2000원) 수준으로, 국내 OTT 서비스들보다 월등히 높다. 높은 ARPU에도 불구하고 '콘텐츠는 돈을 내고 본다'는 정서가 강한 일본의 유료 구독 문화 덕분에 로컬 플랫폼이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은 가격 민감도가 높고 플랫폼 간 이동이 잦아, 내수만으로는 콘텐츠 재투자를 위한 수익 구조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동남아 시장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은 사례도 존재한다. 홍콩 PCCW가 운영하는 OTT 플랫폼 Viu는 한국 콘텐츠와 현지 오리지널을 결합해 지역별 맞춤형 서비스로 확장해왔다. 글로벌 단일 플랫폼이 아닌, 국가별 이용자 취향에 맞춘 콘텐츠 구성으로 동남아·중동 등에서 이용자 기반을 확보한 모델이다. 이는 특정 작품의 글로벌 동시 흥행보다 지역 단위에서 점유율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다수 플랫폼과 협업해 콘텐츠를 분산 공급하는 티빙의 전략과 결이 맞닿아 있다.


이처럼 글로벌 확장, 내수 집중, 지역 맞춤형 모델까지 각기 다른 생존 전략이 병존하는 가운데, 유럽은 아예 제도적으로 로컬 콘텐츠를 보호하는 방식을 택했다. EU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 지침에 따라 유럽 내에서 서비스하는 스트리밍 플랫폼은 유럽 제작 콘텐츠를 최소 30% 편성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로컬 콘텐츠 편성 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자국 콘텐츠 생태계를 보호하는 규제 모델이다. 한국에는 아직 이에 준하는 의무 규정이 없다.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현재 월간 3200만 명 수준인 K-OTT 글로벌 이용자 수를 2027년 1억 명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영상콘텐츠 제작비 세액공제율은 2024년 1월부터 중소기업 기준 최대 30%까지 확대 시행 중이며, 문화체육관광부는 2025년 약 6000억 원 규모의 K-콘텐츠 정책펀드를 조성했고, 2026년에는 역대 최대인 7300억 원으로 규모를 늘렸다.


다만 이 같은 지원이 실질적인 글로벌 경쟁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현재 정책 지원이 제작비 보조에 집중돼 있는 반면, 글로벌 유통·마케팅·IP 확보를 지원하는 구조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제작비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고, 완성된 콘텐츠를 어떻게 유통하고 브랜드화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은 내수 시장에 집중했고, 동남아는 지역 단위 확장을 통해 이용자 기반을 쌓았으며, 유럽은 규제를 통해 자국 콘텐츠를 보호하는 방식을 택했다. 각 시장은 저마다의 조건 속에서 생존 전략을 구축해왔다. 한국 역시 넷플릭스 중심 구조를 벗어나기 위한 실험을 시작한 단계다. ‘친애하는 X’와 같은 사례는 그 가능성을 확인한 출발점에 가깝다. 이제 관건은 어느 모델을 따르느냐가 아니라, 한국 시장에 맞는 구조를 어떻게 조합하느냐다.


관건은 전략의 우선순위 설정이다.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브랜드를 확장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내수 시장에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해 재투자 여력을 만드는 이중 구조가 요구된다. 동시에 제작비 중심 지원에 머무른 정책을 넘어, 유통·마케팅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략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확장, 내수 기반, 제도적 환경이라는 세 축을 어떻게 균형 있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토종 OTT의 경쟁력은 달라질 전망이다. 단일 해법보다는 각 요소를 단계적으로 결합하는 접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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