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노 전대통령을 떠밀었는가

입력 2009.05.24 08:08  수정

<칼럼>고인 망친 주범들 스스로 ‘자인-자책-자숙’ 보여야

죽음의 메시지로 남긴 참회의 참뜻은 국정을 잘 보듬는 것

"고(故) 노무현 대한민국 제16대 참여정부 대통령 각하! 이제 평안히 잠드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

63세 ‘이순(耳順)’의 나이,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했다. 유서의 진정성으로 봐서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전부터 심한 우울증에 상당히 오래 시달린 것 같다. 속에서 마음의 시큰함이 번진다.

죽음은 사람과 권력에게 사색의 공간을 던진다. 공자(孔子)의 말씀에 따르면 이순(耳順)은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무슨 이야기를 들어도 흔들리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남의 말을 들기만 해도 그 이치를 바로 깨닫게 되는 것이 이순(耳順)의 경지다.

“로마 사람들이 나를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다. 내가 그들의 공포와 근심에서 해방시켜 주지!”

이것은 한 시대 역사를 풍미했던 위대한 정치가이자 장군, 전략가이자 영웅이었던 카르타고 한니발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영욕을 거듭한 그는 최후 막판에 타국의 망명지에서 평소 품고 다니던 독약을 마시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세계 3대 정복자 유럽의 알렉산더 대왕, 아시아의 칭기스칸, 아프리카 샤카 줄루에 버금가는 한니발은 역사상 유명한 포에니 전쟁의 승리와 패배를 동시에 경험한다. 그는 로마의 승리자 스키피오에게 알렉산더(Alexander)와 피로스(Pyrrhos), 그리고 자신을 역사상 최고의 장군이라고 자찬하는 오만을 보였다.

혁신적인 도전, 상상을 뛰어 넘는 전술, 지칠 줄 모르는 용기로 제국의 영웅이 된 한니발은 권력과 투쟁의 창조자였다. 그러나 한니발은 “승리 할 줄은 알고 있었으나, 승리를 이용할 줄은 모르는 절름발이” 기형적 영웅이었다.

기득권의 시기와 견제, 부하의 배신, 스스로 눈을 뽑는 잔인함, 조급함과 경직성, 부족한 포용, 오만과 배타적 적개심, 권력을 쫓는 방황, 국제관계의 이해에 농락당한 어리석음 등으로 한니발은 용병전쟁의 패배로 도망 중에 체포되었다. 그리고 자살로 영욕의 생을 마쳤다.

죽음은 사람에게 사색의 공간을 던지고

이같이 기원전 183년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은 63세에 절망상태에서 독배를 마시고 스스로 자살했다. 역사의 아이러니인지는 몰라도 1946년생인 노무현 전 대통령도 63세로 세상을 향해 몸을 던졌다.

자존심 회복의 마지막 방안이었을까? 집나간 면목을 찾기 위한 투신(投身) 사망, 유서 발견, 죽음의 가쁜 소식을 접한 순간 불현듯 마옥당(磨玉堂)이 생각났다.

상고를 졸업한 백수 가장(家長) 노무현은 마을 건너편 산기슭 과수원에 허름한 토담집 마옥당(磨玉堂)이란 움막을 짓고 사시공부를 시작했다. 마(磨)는 ‘고생’이라는 뜻이 있고 옥(玉)은 임금의 뜻이 있다. 거친돌을 갈아 옥으로 만든다는, 보배를 닦는다는 뜻이다. 고생하더라도 위대한 인물이 되겠다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신념을 집약한 것이다.

《시경(詩經)》에 나오는 절차탁마(切磋琢磨)라는 말은 자르고 깎고 쪼고 가는 것을 언급한다.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며 숫돌에 간다는 뜻으로 처절한 자기완성의 길을 대변한다.

인간이야말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체의 척도다. 이런 관점에서 변화와 혁신을 가동시킨 원천, 열의와 도전은 한편으로 보면 인간의 허약함과 약점, 나약함을 스스로 드러내는 단초인지도 모른다.

왜 권력해체의 자기혁신을 단행하지 않았을까?

“이상(理想)의 선전(宣傳)은 설혹 그것이 아무리 선량한 의도였다고 해도 필연적으로 편향된 세계관을 형성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있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게 한다.”

엄청난 권력을 쥐고 있는 가운데 자신의 정치생명에 위험을 초래할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라는 불구덩이 속으로 처연하게 뛰어 들어 세계사의 방향을 바꾼 ‘미래형 인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실각 후의 처절한 양심의 고백이다.

소박하다면 소박하다고 할 수 있는 상식을 인간사회의 황금률로 고양해 가는 노력이야말로 모든 지도자들이 걸어 가야할 숙명적 과제다. 그래서 정치라는 배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신뢰증진이라는 목적을 깔고 인간과 인간, 민중과 민중의 ‘참된 참여의 길’을 개척해야 한다.

이상(理想)의 선전(宣傳)은 현실적 눈을 멀게 하고

최근 김영삼 전 대통령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사법적 사태와 관련, 안타깝고 세계에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머지않은 장래에 형무소에 가게 될 것이라고 착잡한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까지 감옥 가는 역사를 이어간다면 대한민국 역사는 얼마나 불행한 것이냐고 미래와 외국의 시선을 걱정했다.

“괜히 대통령 해가지고 패가망신 했다. 이미 대다수 국민의 마음속에는 그의 자취가 감춘 지 오래다”는 이 말은 노무현을 정치에 입문시킨 김광일 전 고충처리위원회 위원장이 자신을 ‘역사의 죄인’으로 자책하면서 던진 소회의 말이다.

“지금 막가자는 거지요”, “대통령 짓 해먹기 어렵다” 이런 돌출적인 행동과 무분별한 발언, 가난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근성, 김대중과 김정일에 놀아 난 대북정책의 아마추어, 전직 대통령 국회 증인에게 명패를 던진 깽판, 감정의 기복에 따른 조급함과 경박함 등 그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소수였다고 김광일 전 의원은 자책하듯이 고백했다.

쟁쟁한 역사적 성과를 권력부패로 한 방에 까먹어

그동안 지난 모든 대통령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믿음을 잃게 만들었다. 밖으로는 지난 30년 동안 국민들이 피땀으로 일군 대한민국의 웅비하는 국가이미지를 대통령들이 앞장 서 업신여김을 초래했다.

식민지에서 급조된 해방공간의 아둔함, 이념과 무지, 가난과 군정의 혼란으로부터 겨우 자유민주주의 반쪽나라를 일으킨 건국 대통령은 부정부패와 권력남용으로 쫓겨나 타국의 망명지에서 쓸쓸히 죽었다.

조국을 반만년 이어져 온 고질적인 가난으로부터 해방시킨 경제발전의 신화를 이룬 대통령은 부하의 총에 저격당하고, 군정 대통령 두 사람은 모두 부정부패로 영창에 들어갔다.

그리고 최초 문민대통령은 IMF로 국가를 도산시켰다. 좌파정부 10년은 오락가락 국론분열과 김정일 독재의 배만 채워주다가 대다수 자유민주국가의 비웃음을 샀다. 여기에 바로 직전의 전직 대통령은 부패 사슬에 걸려 검찰조사 중 스스로 몸을 세상 밖으로 던지고 말았다.

독립투쟁과 건국의 큰 정치, 반공포로 석방, 평화선 설정, 대마도 반환 성명, 풀뿌리 민주주의 시도, 한민족 역사 이래 세계가 놀란 경제성장 달성, 물가안정과 무역수지 흑자 전환, 체계적 행정쇄신, 세계화 차원의 신한국 창조, 최초 정권교체, 신선한 서민 이미지의 주류교체와 주변으로의 권력이동 등의 역대 대통령들이 이룩한 쟁쟁한 역사적 성과도 있다.

그러나 권력과 부에 대한 탐욕과 부정부패,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무능과 권력 불화, 유신독재의 가치분란, 우유부단한 주사통치, 땡전 독재와 폭압통치, 물통 권력, 문민의 승리이데올로기 만취, 노벨상 거래 의혹으로 불거진 북한 정권에의 퍼주기 아마추어, 벤처거품과 카드부실 대란, 그놈의 헌법 등의 오만과 탄핵 파동 등에 편승해 지난 모든 대통령들은 그 다음 대통령에게 막대한 부담을 지웠다.

서민을 위한 정책다운 정책도 펼치지 못하고, 국민을 부끄럽게 만들며, 나라 얼굴에 먹칠을 한 ‘독재-무능-부패-부실’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만방에 떨치고 물러난 것이다.

외신 메시지…패망의 가장 확실한 지름길은 부패

영국의 명재상 글래드스톤은 “개인이나 국가를 몰락으로 이끄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은 부패”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국가나 민족은 부패로 망했으며, 그들 스스로 인간의 역사에서 처참하게 지워졌다.

외신(外信)들은 당혹감, 침통함, 허망함, 충격과 안타까움을 믿을 수 없는 긴급 보도로 타전했다. 세계 각 국의 주요 외신과 방송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逝去) 소식을 급하게 보도했다. 그런데 전부가 한국의 낡은 정치현실과 국가이미지와 연계된 내용이었다. 뇌물의혹과 검찰 조사, 부인과 아들 딸, 가까운 지인들까지 구속과 검찰 조사를 당하면서 심리적 고통이 적지 않았다는 내용을 의도적으로 빠뜨리지 않았다.

여기서 한국 정치현실을 낡은 것이라 비유했다. 그러나 실상은 이미 썩어 문드러진 것은 아닌가? 곪아 터져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한국정치가 낳은 비극이 바로 5월의 새벽에 접한 전직 대통령 서거의 본질적인 안타까움이다.

이 문제가 꼭 정치의 영역에만 있나? 우리 모두가 사회 전반적인 ‘지연-혈연-학연’ 카르텔과 권력으로 돈을 부정하게 공짜로 쟁취하려는 부패한 만용과 썩은 인습에 젖었기 때문에 빚어진 비극은 아닌가?

그만큼 우리는 지금 모순된 의식, 부패의 수렁에 깊이 빠져 있는 것이다. 이제는 부정부패가 하나의 문화(文化)나 풍속(風俗)으로 자리 잡고 말았다. 빼도 못하는 고질병으로 골수에 박혀 있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 권징(勸懲)에 타격을 입힌 검은 집단들

참여정부 노무현 전 대통령도 처음에는 이렇지 않았다. 2003년 5월 31일 제3차 반부패세계포럼 전체 폐막식에서 “부정부패를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부패와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천명했다.

2004년 6월 7일 제17대 국회 개원연설에서도 부패문제와 정부혁신만은 본인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밝혀 부패청산의 강한 메시지를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당시 국가청렴위원회를 부패척결의 표상으로 삼았다. 이와 같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2기의 정부혁신 프로그램을 가동하면서 “부패는 가지만 자르는 것이 아니라 뿌리까지 뽑겠다”는 강한 의지를 달구었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5년 5월 한국과 유엔이 공동 주최한 제6차 정부혁신세계포럼 개막식에서 “우리가 추진하는 정부 혁신의 목표는 효율적인 정부, 투명한 정부, 분권화된 정부를 통해 세계 10위권의 경쟁력을 갖춘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혀 공직사회의 강도 높은 혁신과 부패척결을 주문했다.

그러나 현실은 노 전 대통령의 뜻과는 반대로 가고 말았다. 정치적 안정, 정부 효율성, 법치주의와 부패 방지 수준은 계속 추락했다. 말과 현실이 다른 정책집행 무능력은 확산되었다. 원칙을 무시한 일방적 참여만 난무했다.

대통령의 의지가 확고했던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 신설은 웬일인지 무산되고 말았다. 이것은 국민들에게 “부패척결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다”는 점을 또 다시 생각하는 의혹의 계기를 만들었다. 혁신으로 사회가 맑아졌다고는 하지만 권력과 공직의 부정부패나 권력남용 사례는 계속 늘어났다.

순진무구한 애도를 정치기반에 이용해 먹는 폐족들

노 전 대통령은 애초에 부패척결을 마음먹고 통치를 깨끗하게 할 것을 국민 앞에 약속했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과 그 이후 열린우리당의 무능과 아귀다툼, 그리고 스캔들과 내분으로 대통령 권징(勸懲)이 타격을 입으면서 5년 임기 내내 외풍에 시달렸다.

특히 2004년 선거법 위반을 빌미로 한 국회탄핵은 대통령 직무 수행의 순탄치 않은 정치역정을 사전에 예고한 것이나 진배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서거(逝去)의 상당한 책임은 인권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 부패척결 의지를 무산시킨 기득권들이 전부 져야 한다.

음모의 커튼 뒤에 숨어 기득권을 확대한 진보좌파 시민단체, 당시의 당-정-청, 검찰, 감사원, 국회, 언론 등이 바로 노 전 대통령의 통치를 순탄치 않게 만든 ´권력 빨대´의 장본인임에 틀림없다.

민주당은 즉각 서거 소식에 침통으로 울분을 토로했다. 그리고 “이제 죽음을 맞았으니 한나라당은 속이 시원한가?”라면서 전직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이명박 정부’는 치졸한 정부라고 독설을 쏟아냈다.

그리고 또 정권퇴진 운동을 운운했다. 그러면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 최후에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큰가? 단언하건데 민주당이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하이에나 근성, 겉으로는 눈물을 내보이며 속으로는 또 다시 죽음을 정치기반에 이용해 먹으려는 이중적 야심과 속셈을 아는 국민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입으로만, 거리의 구호로만 국민들의 순진무구한 마음을 훔치려는 정치집단이 있다면, 그들이 바로 봉화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 내려야 한다.

서거(逝去)의 가장 큰 책임…정치책동의 꺼리로 악용 말아야

차라리 노 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책임에 대하여 국민과 양심 앞에 한없이 죄송스러움을 표명해야 한다. 대신 검찰조사의 지나침, 언론보도의 사실화, 사회적 여론폭력 등에 분노를 표시하면 안 된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게 독설을 내뱉으면 스스로의 기만에 빠지고 만다.

마지막 남은 양심이라도 고인의 영전에 진정으로 바쳐야 한다. 카메라만 꺼지면 멀쩡한 얼굴로 다니다가 카메라 앞에만 서면 눈물을 질질 짜는 정치적 악용술책에 더 이상 국민들은 기만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잘 명심하기를 바란다.

그동안 민주당 동지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얽혀서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을 가장 염려했지 않은가? 일부로 멀리한 주제에 이제 와서 대통령의 고귀한 죽음의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독설과 저항, 폐족의 헛소리를 지껄이면 올곧은 국민들의 정치적 역풍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그 대신 이번 사태를 지난 10년 동안 온몸에 칠한 부패의 냄새를 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솔직히 돌아서서 정권을 같이한 노 전 대통령을 욕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민주당 동지들이 먼저 사죄해야 한다. 그리고 엄숙한 자책을 감수해야 한다.

민주당이 지켜 주지 못해서 이런 안타까움이 일어난 것은 누가 뭐래도 맞다. 의리도 충성도 없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이중적 ‘박쥐’ 놀음을 하면서 권력의 이익과 이해득실 앞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피터지게 싸운 지난 과오를 솔직히 반성해 보라.

실패한 정권의 책임을 전부 노 전 대통령에게 떠넘기고, 비난에는 가장 앞장 선 집단, 이번 서거(逝去)조차 다음 선거 때 이용할 ‘꺼리 만들기’에 혈안이 된 집단, 먹이 앞에서는 의리도 양심도 없는 하이네나 근성의 한통속들은 이제라도 어설픈 정치적 연기를 중단해야 한다.

정권 책임을 전부 죽은 자에게 떠넘기고, 뒤에서 비난만 계속

국가통치최고책임자의 언어구사 문제, 오기와 고집, 일관성 없는 변명성의 말 바꾸기, 오락가락 정책 발표, 국민이 동의하지 행정수도 이전 강행, 힘들어서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헌법과 통치권징을 부정한 발언, 정권 퇴진문제를 들고 국민을 위협한 행동 등 실로 형언할 수 없는 오류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오만이 있었다.

특히 국내 발언과 미국과 중국 등 국외에서 한 발언의 일체성 미비로 국제외교에서도 상당한 망신을 당했다. 특히 미국에 가서는 국내와는 달리 아첨하는 발언을 하고, 중국에서는 국립묘지의 수많은 호국영령을 모욕하는 발언 뉘앙스로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막가자는 것과 그 놈의 헌법, 군대 가면 썩는다는 등의 부절절하거나 격에 안 맞는 대통령 발언은 공권력과 헌법의 신성한 국민적 의무 자체를 무시하고 부정하는 것이었다.

대연정과 소연정이란 말로 통치 정체성까지도 혼란케 하고, 정당정치 민주국가에서 당원인 대통령이 당정분리를 먼저 주창하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이와 같이 ‘당-정-청’이 정책현안을 공유하지 못했으니 통치 효율성이 올라갔겠는가?

국가비상사태를 전제한 을지연습 기간에도 훈련복 입기를 거부해 장차관들이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고, 엄연한 현실적인 주적 북한 정권을 안보 동반자라고 자위했다.

반면에 그런 주적에게 햇볕정책은 ‘미인계’라는 것을 다 드러내 놓고, 결국 ‘미인’만 빼앗긴 엄청난 ‘돈 퍼주기 묻지 마’ 방식으로 흡사 과거의 조공을 연상케 하는 평양방문으로 국민을 호도했다.

유죄 무죄의 사법적 처벌에는 이미 국민적 관심 사라져

참여와 분배를 외치면서도 지니계수를 사상 최대로 끌어올린 양극화를 고착화시켰다. 그래서 서민을 더 못살게 만든 실정을 거듭하다가 퇴임 후에는 정치 훈수를 한다고 전직 대통령답지 않게 인터넷 까대기에 몰두했다.

이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입 안의 밥까지도 자식에게 먹이지 않는가? 서민에게는 임기 동안의 부동산 폭등으로 ‘자기 집 갖기 소망’을 접게 만들어 놓고도 자신은 검은 돈으로 아들 딸 집을 남모르게 사주었다.

서민 권력을 표방하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바로 공약과는 정반대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했다. 이때부터 민생은 분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은 선거마다 참패했다. 집값은 연일 폭등했고, 서민들의 ‘자기 집 마련’은 점점 멀어져 갔다.

국민을 절망케 한 발언 “도저히 힘들어 못해 먹을 대통령 짓”을 5년 동안 하면서, 다른 대통령 해먹은 것과는 깜도 안 되게 나 모르게 마누라에게 조금 주었다고 강변한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청와대가 얼마나 넓은데 업무에 엄청 바쁜 대통령이 그것을 감시할 시간도 없었고, 밖에서 힘들다보니 집에 들어가 발 씻고 자느라고 마누라가 어떻게 사는지 모른다고 한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미국 유학하는 자식들이 뭐해서 유학자금을 만들고 있는지, 직장 생활해서 집도 사고 사업도 하는 줄 알았는데 대통령 끝나고 보니 소문으로 조금 받은 것 같다고 하면 서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집문서는 찢어 버려 없고, 시계는 논두렁에 내가 아닌 집에서 버려서 절대로 모르니 증거 있으면 대보라고 하면 아무리 불신을 받는 검찰조차도 대경실색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 의혹의 눈초리로 검찰을 보는 국민조차도 검찰에게 정치적으로 눈치 보지 말고 엄정한 잣대로 처리하라고 다그치지 않는가?

그래서 전직 대통령이 아닌 인간 노무현의 유죄 무죄에 대한 사법적 판단에는 이미 오래 전에 국민적 관심은 사라졌다. 왜냐하면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정치지도자 노무현은 이미 국민과 역사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념적 편가르기, 생각이 짧은 말로 망신을 당한 사람이 자살한 사건, 국제외교 관점에서의 외톨이 자초, 김정일 독재 연장의 공헌 의혹 등으로 역사적 심판은 이미 끝나 보인다. 또한 참여정부로 인해 대한민국의 진보좌파 능력과 한계가 만천하에 드러난 점은 또 하나의 역사적 기여로 남을 것이다.

서민의 꿈을 앗아간 절망적 정치권력의 표상으로 추락

빈농, 가난, 이념, 혁신, 탄핵, 산기슭 토담집 마옥당(磨玉堂), 상고 출신 사시합격생, 요트, 아마추어 발명가, 농협 입사시험 낙방, 울산 공사판 막노동으로 부러진 3개의 이빨, 군번 51053545, 링컨과 같은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등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2002년 12월 빈농의 막내가 국민의 희망으로 거듭났다. 일반적 대한민국 서민과 마찬가지로 좌절과 방황을 많이 겪은 그는 참여와 민생을 외쳤다. 마옥당(磨玉堂)의 신념을 실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로부터 7년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투신자살했다. 그의 개인적 품성과 욕심을 접고 보면, 정치 입문 후 그의 개혁 개방 성향, 기존 집단의 권력체계 폐쇄성, 돈줄에 대한 욕심 등이 이중적으로 충돌한 사건으로 볼 수도 있다.

평소에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신념을 남에게 공개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댓글 문화를 확산시켰다. 그러나 그는 어설픈 ‘퍼블리즌’(publizen)이었다. ‘자기홍보(publicity)와 시민(citizen)의 합성어 자체를 ’국민 참여‘로 집약하고 민중적 민주주의 완성으로 자신했다. 그러나 국민이 외면한 참여는 ’그들만의 잔치‘로 끝났고, 자기도취적 나르시시즘에 빠져들었다.

그는 약속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어 보자고 외쳤다. 반칙이 없는 함께 하는 세상을 개창했다.

가난을 넘어 신화를 쓴 남자의 이야기는 처연하게

2002년 주류 권력의 교체는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당시의 시대와 서민의 요구였다. 전후세대가 한민족의 당당한 주역으로 나서라는 민족적 염원이 고스란히 담긴 메시지였다. 그 와중에 그의 도전과 용기, 그리고 젊은 지도력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대선 승리로 거듭났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여섯 번의 국회의원과 부산시장 도전에 네 번이나 낙선한 그가 국민경선으로 뽑힌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이것은 직접적으로 서민들에게 영욕과 부침, 환희와 좌절, 냉탕과 온탕이 교차한 온갖 풍상을 당선으로 잠재운 한편의 서사적 드라마였다.

가난을 넘어 신화를 쓴 남자 이미지는 이명박 대통령 일대기와 거의 비슷하지만, 숱한 고비와 난관을 뚫은 도전과 끝없는 열정의 역동성과 진정성에서 노 전 대통령이 한 수 위였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직후부터 바로 386 진보좌파를 정치적으로 합리화 시키는 권위 확장에 돌입했다. 말로는 권위 타파를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독단적 체제강화를 우선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검증 안 된 인물을 선호했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무모한 정책을 일방적으로 강행했다.

여기에 맹목적으로 부화뇌동하는 광신적 지지자들에게 마취되고 말았다. 당선 후 진정한 민주투사는 모두 숨거나 등을 돌렸다. 그러나 핵심 측근 집단을 자처하는 사이비 민주운동가, 인터넷 까대기 중독자, 혼합 386 회색집단들은 그들만의 영웅을 ‘노짱’으로 치켜세우며, ‘님을 위한 행진곡’을 참여정권 지정곡으로 5년 내내 애창했다.

그러나 그들 스스로 ‘분열-분당-배신’ 등의 ‘ㅂ’자 자기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기존의 보수우파 기득권을 부패집단으로 매도하면서 그들은 자체의 특권조직을 강화했다. 또한 진정한 정의의 이념이 아닌 ´집권-권력-축재‘라는 맹목적 출세주의와 그 수단으로서의 혁신이라는 오도된 개혁 이념에 매달렸다.

맹목적으로 부화뇌동하는 광신적 지지로 마취 당해

결국 `담배 있나?` 한 마디를 남기고 세상 밖으로 몸을 던진 노 전 대통령의 면목 찾기가 성공했는지는 앞으로 봉화산 부엉이 바위에게 물어볼 일이다. 왜냐하면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너무 힘들고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고 유언으로 남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산행을 나가면서 가족이나 측근들 중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경호원 1명만 대동했다고 한다.

마지막에 곁에 있었던 경호원 1명도 누구의 아들이고 누구의 남편이고 누구의 아버지일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경호원에게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기고 간 노 전 대통령도 어쩌면 저승에서도 편치 않을 것이다.

그보다는 심도가 낮겠지만, 노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도 엄청난 국가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앞으로 이 병리현상은 충격과 좌절, 그리고 부패에 대한 분노와 허망함으로 사회적 분란으로 불거질 것이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던가?” 공자는 죽으면서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 대신 천지만물의 운행과 사시사철의 생장이 대신 말해준다면서 “이제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말을 한 후 7일 만에 숨을 거두었다.

60대를 의미하는 이순(耳順)은 순리를 따른다는 의미다. 이는 하늘의 마음과 인간의 마음이 통하는 자기완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60이 넘으면 하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했다. 따라서 공자가 남긴 침묵의 유언은 침묵에서 오는 침묵 이상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죽음이 던지 메시지는 침묵 너머의 소리를 들으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600만 달러 이상을 받은 혐의가 아니라 이제는 노 전 대통령이 던지고 간 침묵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안타까운 국민이 흘릴 눈물은 침묵의 메시지를 되새기는 슬픔이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국가적 비극이냐 혹은 시대적 희생이냐의 논란과 다툼이 무슨 소용이 있나? 민주당의 “죽음 맞았으니 이제 속 시원한가"라는 독설과 원망이 대한민국 가치에 무슨 이득이 되겠나?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이유를 들먹이며 정치검찰과 배후세력을 급조하고 사실화하는 것이 국민적 애도와 무슨 상관인가?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퇴임 이전부터 정부와 한나라당, 정치검찰, 보수 언론 등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집단들이 먼저 무슨 짓을 해왔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끝내 "정치적 생명을 끊어놓으려는 정치보복으로 결국 한 나약한 인간을 완전히 무너뜨린 것"이라고 선동하면 자금 이 땅의 우리 모두가 더 서글퍼진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 가장 깨끗한 대통령을 권력 앞에 알아서 기는 정치검찰이 온가족을 부도덕한 사람으로 몰아 모멸감을 주며 자살하게 만들었다고 강변하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부정부패 쓰레기 집단으로 추락하고 만다.

노 전 대통령의 남긴 심적 고통의 후폭풍 잠재워야

이제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것을 언급하기조차 두렵다. 가난이 죄인가? 노무현을 빗댄 가난한 사람의 두 가지 경향은 “남에게 베푸는 것에 인색하고, 죽으나 사나 남의 돈만 뜯어 먹는 것”이라는 정치권력적 한탄도 나왔다.

언제나 대한민국 5월은 혁명과 항쟁, 이념과 가치, 진보와 보수, 민주와 해방 등의 갈등과 혼란 이미지와 중첩된다. 그런데 여기에 전직 대통령의 투신자살까지 겹쳤다. 그래서 5월을 넘기는 것은 이제 더 힘들게 생겼다. 특히 지금은 선진자본주의 안방에서 가진 자들의 탐욕의 씨앗이 터진 혼돈의 상태다.

2009년의 아픔은 빈부격차 양극화의 심화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장기불황 우려도 있지만 사회불안이다. 지니계수는 사상최고로 높아졌고, 불황과 거품 확산으로 인한 빈부격차는 이제 사상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근본적 문제는 계층을 적대시하는 불신과 알력이다. 속에서 끓고 있는 계층과 이념간의 분노다. 사회적 불안이 사회적 자본을 갉아먹고 있다. 그래서 서민의 먹을거리 해결책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다.

정부는 재정투융자를 통해 일자리를 직접 챙기고, 재정지출이 고용 유지에 바로 기여할 수 있도록 보다 과감하고도 직접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컨틴전시 플랜을 빨리 짜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투자 확대나 소비세 감면이 안정된 일자리를 늘리거나 유지한다고 확신하면 안 된다. 따라서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이 적기에 실행되지 못하거나 경기진작 정책이 단순소비로만 이어진다면, 사회적 리스크는 확산된다.

이런 와중에 이번 안타까운 사태는 이념 갈등과 계층갈등의 우려를 증폭시킬 가능성이 있다. 가장 깨끗한 대통령이 부정부패 쓰레기들에게 비리혐의로 수사 받다가 자살했다는 선동적 문구들이 등장했다.

조급한 단기성과 일방적 찬양은 4년 후 폐기 가능성 커

이런 위급한 상황인데도 집권 여당은 제살 파먹기 식의 계파 투쟁과 민생을 외면한 정치적 잔머리 굴리기로 일관하고 있다. 반면에 정권 찬양은 권력 정수리를 급속하게 파고들어 세력을 넓히는 실정이다.

특히 출신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회색집단들이 ‘이명박 권력’ 언저리를 서설거리기에 바쁘다. 권력 아부곡이 대박을 터트리자 각종 단체들이 보수로 위장하고 가용수단을 총동원하여 이명박 권력 찬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참여정부 5년 동안 노사모와 386 친노 집단의 ´노빠 찬양´의 종말을 되새겨 보라. 지금 이들과 차원이 다른 고도의 권력 아부 책동이 기세를 올리며 끝을 모를 거품을 퍼뜨린다.

이제 겨우 1년을 조금 넘긴 상태인데도 마치 5년 임기를 다 채운 것 같은 성공이벤트가 벌어지고 있다. 권력이 업적을 입도선매한 홍보 이벤트를 벌이면 국민은 금방 돌아선다. 그리고 후불제 권력이라는 비난에 직면한다. 4․29 재보선 참패 원인 중에 이런 요인도 상당하다.

앞으로 권력 아부곡이 계속 퍼질지는 오직 이명박 대통령 결단에 달렸다. 만약 대통령 자신이 이를 질타하고 국민의 ‘경제 살리기’, ‘일자리 만들기’ 기대를 충족시킨다면 권력 찬양은 임기를 마친 2013년에는 국민 자긍심으로 거듭날 수 있다.

또한 글로벌 경제 난국에서 협력적 혁신의 힘을 가지려면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방향으로 모든 정책과 사회적 합의가 전환되어야 한다.

‘정치-경제-언론-민간’의 지도자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는, 경쟁에서 밀려 난 약자들의 심각한 상황에 관한 문제의식을 좀 더 가지고, 근본적인 배려와 나눔 대책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작금의 정부정책 시스템이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성과가 있다는 정책들은 극소수 부자들만을 위한 편향적 도구는 아니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이명박 정부’의 시장경제와 자율정책의 고정관념에 대한 회의, 서민경제의 보전 시스템에 대한 우려 등을 검토함으로써, 분배주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의 이념적 변형을 발굴하는 시도를 빨리해야 한다.

지금은 시장과 정부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국가정책의 저울추가 방향을 바꾸고 있는 시기이다. 그래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태동시키는 단초를 만들어야 한다. 비용절감이 생산성 향상을 동반하고, 모든 국가경제가 상대우위를 갖는다는 기존의 경직된 확신은 작금의 경제난국에서 본질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한편 지구촌 전체가 어두운 경제전망 상황에서 한국만 유독 고도성장 신화를 계속할 수 있는가의 근원적 의문에도 더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적 지향점이 경제위기 상황에서의 감축관리가 시대적 요청에 동떨어진 것은 아닌지도 우려해야 한다.

대통령과 권력의 가치를 망치는 측근들

입으로만 충성을 외치는 측근들은 언제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대책을 내놓고 대통령의 환심을 사려고 덤빈다. 대안이 없는 원론적 대책만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자신들의 학문적 소양과 지식 편력을 과시한다. 어떤 때는 명쾌한 대답을 유보해 대통령을 혼란에 빠뜨린다.

모두가 입으로는 국민과 민복을 들먹이며 백성을 잘 살게 하겠다고 떠든다. 하지만 민생 입장에서는 그 모습 자체에서 왠지 서글픔을 느낀다. 거란침략과 몽골침략, 고려말, 임진왜란, 양대 호란, 세도정치, 조선말, 일제침략기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서민들은 지금 너무 답답하다.

결국은 민생의 고통만 남게 된다는 것을 서민들은 다 안다. 권력 측근들은 어려운 나라 사정과 국민의 모습을 보면서도 고민하는 척만 하다가 해결방안을 국정최고책임자에게 간책하지 않는다. 당연히 양심적 의인은 배척당하고, 양심이 없는 사악한 추종자들만 판을 치게 된다.

따라서 대통령은 항상 ‘적은 말’ 속에 들어가 있는 ‘큰 뜻’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과 삶을 이해하는 통찰력과 분석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묻기를 좋아하고 듣기를 좋아해야 한다. 일상을 살피고 목숨을 걸고 간책 하는 사람을 우대하면 더 좋다.

국정난맥 원인은 방식과 태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기기 쉬운 사물의 폐단보다는 구제하기 어려운 정신의 폐단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차원에서 정신적 폐단 원인을 근본부터 미루어 잘 살피는 것도 대통령의 몫이다.

차라리 배짱이라도 부리지…그렇게 나약하게 갈 것을

지금 와서 봉화마을 전체가 격앙된 분위기를 보이면 뭣하나? 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의 화환을 내동댕이치고 현직 야당 총재의 조문을 발길 짓으로 막는 분개의 작태는 숨진 전직 대통령을 또 한 번 더 욕 먹이는 아둔한 행동이다. 세상을 향한 무심한 적개심은 가장 나약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나타내는 집단적 증표다.

차라리 살아 있을 동안 29만원 밖에 없다는 억지 배짱이라도 부렸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오기와 도전, 오뚝이 이미지는 다 어디 가고 “600만 달러 받은 노무현 구속하라”는 일방적 구호에 투신자살이라는 나약함과 허망함으로 영욕의 삶을 마감하면 그만인가?

어떻게 보면 “고통스럽고 감내하기 힘든 상황에 직면해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꿋꿋하게 대응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는 29만원 전직 대통령의 심심한 애도가 더 맞을 지도 모른다.

지지자들을 결집시킨 언변으로 자신의 입장을 강변하는 배짱으로 무장하고 죽음의 공포를 털어낼 수는 없었을까? “정부혁신을 단행한 전직대통령으로서 개혁에 노력한 사람이다"라고 계속 도덕적 우월성을 주장할 수는 없었을까? 서글픈 죽음을 대하고 보니 차라리 오기와 독선이 더 그립다.

이제 기억의 백지에 무엇을 그리면 좋을까?

한승수 국무총리 등 정부조문단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로부터 조문을 거부당했다. 그래서 지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逝去)를 보는 ‘국민의 눈물’은 여러 가지 다양한 회한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진화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권력 오도의 참극을 우리의 뇌리에서 시원하게 지워나가는 창조적 발상도 필요하다. 정치에게 제일 비참한 것은 국민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이다. 자신은 올바른 정치를 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스스로 국민적 심판을 외면한 투신자살, 즉 잘못된 결단은 역사의 뇌리에서 반듯이 지워져야 한다.

시민들의 충격도 크다. 그래도 애모하는 국민들은 추모 물결에 더 많이 동참해야 한다. 명색이 세계 13위를 자랑하는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이 아닌가? 안타까움과 당혹감을 표시하며 고인의 죽음을 적극 애도하는 것은 맞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추모하는 집회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진정한 애도의 눈물을 또 다른 저항과 정권 타도의 촛불 빌미로 악용하면 안 된다. 추모집회는 깊은 슬픔의 시민들 애도로 순수한 인간의 가치에서 끝나야 한다.

“국민이 죽여 놓고 무슨 국민장이냐”고 장례 절차와 형식을 들고 저항감을 표출하면 안 된다. 오열하는 인간적 아픔과 분향 열기를 지난 촛불괴담의 난국으로 파탄내면 고인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안타까움과 당혹감을 우리 스스로의 자성의 계기로만 삼아야 한다.

애도를 또 다른 저항과 정권 타도의 촛불로 전도하면 안 돼

특히 정치권은 상호 비방을 자제하고 여론 통합의 선도에 서야 한다. 혹시라도 야당이 애도를 가장한 엄청난 촛불괴담의 후폭풍을 기대하면 나라 전체는 내려 안고 만다. 야당 총재조차 조문을 왔다가 반발과 적개심으로 내리지도 못한 작태가 이미 벌어지고 말았다.

애도를 정국파탄을 위한 축제의 소재로 삼으면 우리를 제외한 세계 모든 국가가 박수친다. 그래서 충격 속에서 깊은 애도로만 끝나야 한다. 이것이 망자의 길을 바르게 열어 주는 것이다. 운구행렬의 소담스러운 눈물 속에서 “노 전 대통령은 정치인들 중 가장 매력적인 분”이라는 등의 자극적인 선동을 또 하면 국민의 참뜻은 무참히 왜곡된다. 본질을 호도하거나 적개심을 부추기는 것은 사회적 적개심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가치를 왜곡하여 음모의 커튼 뒤에 숨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 사악한 권력의 조롱에 맞서 외로운 죽음을 선택한 바보 노무현의 진심”이라는 까대기를 재촉하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의 애도 가치는 나락으로 추락하고 만다. "검찰과 현 정권이 원한 것이 이런 것이냐"고 사태의 본질을 전도시키면 국민적 혼란은 더 확산된다.

이미 “자살하라 부추긴 김동길 기분이 어떠십니까”라는 사회적 집단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인간적 정의를 지적한 국가 원로의 인간적인 충고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런 충언이 변질되어 투신자살의 직접적 원인으로 선전되고 있는 것이다.

항상 슬픔과 분노는 동반한다. 그러나 그 슬픔과 분노를 잘 삭이는 자제와 지혜가 죽은 자를 끝까지 지켜주는 힘이 된다. 오열과 통곡이 현직 대통령의 조화조차 팽개치게 변질되거나, 무리한 검찰수사 주장을 기정사실화시키면 정말 나라 경제는 파탄난다.

그래서 시민들의 큰 마찰은 국가의 큰 고통으로 빚어진다. 흥분한 일부 조문객들이 노 전 대통령의 가치를 흥분으로 압박하면 안 된다. 대신 가신 분의 뒷자리를 무엇으로 메울까를 조용한 눈물로 성찰하며 고민해야 한다.

던지고 간 메시지로 대한민국 잘 보듬을 것을 다짐해야

인간은 나면서부터 빈 그릇이었다. 소유한 것도 없고 요구한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인생의 장막도 처음에는 백지였다. 그런데 그 빈 그릇과 흰 종이 위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쓰는가가 항상 문제로 다가왔다.

소크라테스는 빈 그릇에는 진리를 담았고 백지 위에는 논리적 지혜를 기록했다. 그렇기에 그 빛과 가치가 영원해졌다. 실패한 탐욕의 권력자들은 끌어 모은 재물과 애욕을 담았다. 여기서 우리는 자아의 가치를 위한 선택과 결단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우리 자신의 빈 그릇과 흰 종이에는 이미 황금으로 채워져 있고, 존귀한 메시지가 써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권력욕, 물욕, 애욕은 세상의 명예와 비움과 나눔의 영광을 차단한다.

오늘은 창밖을 유심히 내다보자. 막연한 기다림인지는 모르나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봄을 기다려야 하고, 봄이 되면 새로운 희망과 기쁨으로 자신의 가슴을 채워 나가야 한다.

우리가 기다린 봄이 비록 자신의 현실에, 자신이 만족할만한 해답이나 해결책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봄의 아름다움을 갈구해야 한다. 그래서 우울한 생각을 떨쳐버리고 가벼운 시선을 꽃망울로 옮겨야 한다.

시간과 영원의 근심…이제 끈을 놓고 고이 잠드소서!

“시간은 영원한 창조자의 영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는 육신을 가진 탓에 자연 속에서 살다가 자연에 다시 묻힌다. 객관적 시간의 상대성(相對性), 제한된 시간의 상관성(相關性), 의식적 시간의 상반성(相反性)으로 ‘시간의식’은 ‘인간생존’을 반추한다.

그래서 지금 순간의 계속성 관점에서 무상, 지속, 시간, 의식, 현재, 생명 등은 같은 의미를 지닌 동의어로 비춰진다. 그래서 생존이 영원의 부정적 개념인지도 모른다.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라는 화두를 남겼다. 어떻게 보면 체념적이고, 어떻게 보면 해탈의 면목을 지녔다. 시간의 생존의미를 철학적 생존가치로 전환시킨 것이다.

그러나 영원을 사모함은 영특하고 지적인 인간 마음의 상식적인 정서라고 한다. 그래서 “마을 주변에 비석 하나를 세우라”고 유언을 남긴 것인지도 모른다. 시간의 철학적 가치를 담은 비석을 국민적 애도로 고운 정성으로 세우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다면 이제 평안히 쉬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한 고민도 이제 잊어야 한다. 왜냐하면 죽음은 사람에게 사색의 공간을 던진다고 하지 않는가? 대통령을 지낸 나라의 큰 어른이 끝까지 나라와 국민에게 큰 혼란의 짐을 지우고 떠났다는 원망도 접을 것이다.

이제 필자가 국화꽃이 되어 분향소로 향하는 발길을 찾을 것이다. 그래서 이승의 고민을 접고 고이 잠드시기를 또 다시 진심으로 기구(祈求) 드린다.

끝으로 대한민국을 앞으로 잘 보듬어 나가라는 것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던지고 간 함축적 메시지다. 그래서 이제 이 땅에 남겨진 우리들이 고인이 남겨 준 고민을 잘 해결해 나갈 차례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시급히 고민해야 할 역사적 책무는 바로 권력의 부패사슬 척결, 사회적 가치통합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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