놔두면 잘한다더니…씁쓸한 증권사 내부통제 [기자수첩-증권]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입력 2025.11.10 07:03  수정 2025.11.10 07:03

'임원 일탈'로 압수수색 당한 NH증권 후속조치

모든 임원 韓주식 매매 금지…해외주식·ETF는 예외

정부 '포지티브 규제' 닮아…임원이 '잠재적 범죄자'?

규제 권한 쥔 관료들이 웃지 않겠나

서울 여의도 증권가 전경(자료사진). ⓒ연합뉴스

'일단 안 되게 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대한민국의 규제 방식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관료 입장에선 책임은 최소화하고 권한은 최대화하는 '최선의 접근법'일 수 있다.


기업하는 사람들은 애달프게 요청한다. '일단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안 되는 것을 짚어달라.'


하지만 돌아오는 관료의 대답은 통상 "검토하겠다"에 그친다.


당국 영향력이 둘째라면 서러울 금융투자업계도 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빠르게 불어나는 퇴직연금 관련 규제 완화가 업계는 물론 국민 자산 증식에도 도움이 될 거란 논리다.


사업 영위에 있어 네거티브 규제를 갈망하는 업계지만, 정작 내부 규정을 만들 땐 정부와 다를 게 없다.


NH투자증권은 지난달 28일 고위 임원의 미공개정보 사적 활용 혐의로 본사를 압수수색 당했다. 해당 임원은 회사가 주관한 공개매수 관련 정보를 주변에 반복적으로 전달해 약 2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압수수색 이틀 뒤 해당 임원에 대한 직무배제 조치가 내려졌고, 윤병운 사장이 이끄는 내부통제강화 태스크포스(TF)가 신설됐다. TF 발족 4일 뒤, 회사 측은 후속 조치로 모든 임원의 국내 상장주식 매매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단 해외주식, 상장지수펀드(ETF) 등은 매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 되게 하되 예외를 두겠다'는 정부 규제 방식을 빼다 박았다.


사달을 일으킨 임원은 1명인데, 모든 임원을 옭아매는 접근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정부 규제를 떠올리게 한다. 기업을 겨냥한 각종 규제가 그렇듯 NH투자증권 임원들은 사실상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은 모양새다.


'패가망신' 운운하는 정부의 주가조작 엄벌 기조에 따라 강력한 후속조치가 필요했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사장 연임 가능성을 저울질하는 민감한 시기에 대형 사고가 터졌으니 윤 사장이 직접 총대를 멜 필요도 있었다.


다만 용산 입김이 크게 작용해도 '위원회 만장일치' '자발적 동참' 등의 기술적 포장을 아끼지 않는 관료 사회보다도 일 처리가 거친 느낌이다.


"놔두면 알아서 잘한다"며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를 요청해 온 금융투자업계다.


금융당국 개편 논의가 불붙을 당시엔 "시어머니만 늘어난다"며 볼멘소리를 쏟아내기도 했다. 한데 집안 형님 중 하나인 대형 증권사가 시어머니보다 독하게 제 자식을 휘어잡았다. 말없이 웃고 있을 시어머니를 생각하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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