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 포기 조건에 북미 대화 카드 꺼내
북미대화 가능성 속에 韓, 중재자 재부상 관측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을 향해 '비핵화 목표 포기'를 조건으로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을 피력하면서, 올 하반기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가 물밑 접촉을 통해 다시 불이 붙을지에 외교가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0월 31일부터 이틀간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할 예정인 가운데, 두 정상의 네 번째 대면 회동 성사 여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북미 대화에 대한 개방적 입장을 직접적으로 피력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과거 최고 지도자의 직접적인 메시지는 곧 북한의 공식적인 대외 기조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김 위원장은 지난 26일 전날 핵무기연구소를 비롯한 핵 관련 분야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핵물질 생산 및 핵무기 생산과 관련한 '중요 협의회'를 지도하며 "강한 억제력, 즉 핵무력을 중추로 하는 힘에 의한 평화유지, 안전보장 논리는 우리의 절대불변한 입장"이라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다면 미국과 대화할 수 있다는 자신들의 메시지에도 한미 정부가 비핵화 목표를 유지하자 재차 '핵포기 불가'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에서 연설하며 "개인적으로는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며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 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 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 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북한 관영매체들이 22일 보도했다.
물론 김 위원장은 '비핵화 포기'라는 명확한 조건을 내걸면서 미국에 공을 넘기는 '판 흔들기'도 동시에 시도했다. 이는 기존의 '선(先) 비핵화'를 주장해온 미국의 입장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동시에,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북한의 오랜 전략적 목표를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협상 재개의 문을 열면서도 '제재 해제'와 '비핵화 불가역성'을 맞바꾸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협상 구도를 짜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성사될 수 있는 김 위원장과의 4차 대면 가능성 또한 주요 관측 대상이다.
과거의 전례를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은 예측 불가능한 '파격 행보'를 통해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해 온 만큼, 이번 방한 역시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살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다만, 북한이 '비핵화 포기'라는 선제 조건을 제시한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방식으로 '메시지'를 내놓을지가 관건이다. 미국이 기존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원칙에서 얼마나 유연성을 보일지에 따라 하반기 대화의 물꼬가 트일지가 결정될 전망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 측에 대화의 여지를 남기면서도 강경한 조건을 내세운 데 대해 양측 모두 시간을 끌지 않고 톤을 낮춘 대응을 했고, 서로에게 출구 전략을 모색할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일각에서는 이미 미국과 북한이 협상을 시작했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정부 역시 하반기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한반도 비핵화 문제 해결의 궁극적인 돌파구는 결국 북미 대화"라며 "남북 대화 재개를 계기로 북미 간의 물밑 접촉을 모색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즉, 한국이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 간의 중재자 역할을 다시금 수행하며 대화의 불씨를 살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결국, 올 하반기는 김 위원장의 '조건부 대화' 언급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 그리고 한국 방문을 계기로 한 4차 정상회담 성사 여부 등을 통해 한반도 정세가 다시 한번 격변의 시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이재명 정부의 유연성(단계적 접근)이 오히려 북한의 '비핵화 거부'를 더욱 자극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면서 "트럼프의 '거래 본능'을 자극해 핵 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수용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은 비핵화 불가를 고수하며, 대치 국면을 장기화할 가능성이 더 농후하고, 한미가 비핵화 목표를 내려놓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며 "김 위원장의 숨은 전략은 중장기적으로 비핵화 논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데 집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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