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폭염·폭우 겹친 악재, 농산물 수급 ‘비상’
사과·송이·마늘 직격탄…산지 피해 회복 더딘 현실
소비지원금 2차 지급, 한우·제수용품 가격 자극
공공요금 인상 변수 촉각…추석 물가 관리 시험대
추석 대목을 앞두고 장바구니 물가에 비상이 걸렸다.
올 초 저온 피해와 대형 산불이 겹치고, 여름에는 지역에 따라 가뭄과 집중호우에 시달리는 극과극의 상황이 벌어지면서 농산물 수급이 흔들린 탓이다. 여기에 최근 정부의 2차 소비지원금까지 풀리면서 ‘명절 특수’가 가격 급등의 불쏘시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6.45로 전년 동월 대비 1.7% 상승했다. 농축수산물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4.8% 올라 지난해 7월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으며 가공식품(4.2%)과 외식(3.1%)도 가격 오름세를 이어갔다.
2분기 식료품·음료의 소비자물가는 작년 2분기보다 2.9% 올랐다.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2.1%)을 웃도는 수치다. 식료품·비주류음료 물가 상승률은 지난 2020년 1분기부터 최근까지 5년 넘게 전체 물가 수준을 상회하고 있다.
물가 상승세는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다. 2018년 이후 가장 긴 폭염에 따른 ‘히트플레이션’(열+인플레이션)의 여파로 먹거리 물가가 크게 요동쳤다. 수급 불균형으로 먹거리 가격 변동도 심상찮아 추석을 앞두고 새 정부 물가 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특히 올해는 산불의 여파가 하반기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올해 초 사과·송이·마늘 등 주요 작물 산지가 직접 피해를 입으면서 생산량이 크게 줄었고, 재배 기반이 무너진 탓에 회복도 더딘 상황이다.
일례로 경북의 대표 농산물 중 하나인 사과도 산불에 따른 후유증이 심각하다. 산불이 난 의성, 안동, 청송 등은 사과 주산지로 손꼽힌다. 경북도에 따르면 안동·의성·청송·영덕·영양 등 5개 지역의 사과 재배지 피해 면적은 전체 9362㏊의 18%인 총 1698㏊다.
산불이 휩쓸고 간 밭의 사과나무들은 말라 죽거나 제대로 생장하지 못해 이미 뽑혀 나갔다. 피해 농민은 사과를 새로 심었지만 다시 수확할 수 있을 정도로 자라려면 5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산불 영향으로 물량이 줄면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부가 이달 말부터 2차 소비지원금을 풀었다는 점이다. 경기 진작 효과를 노린 정책이지만, 시기상 추석 성수기와 맞물려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지갑 사정이 나아지기보다 장바구니 부담이 오히려 커질 수 있다.
실제로 올해 추석 연휴를 2주가량 앞두고 제수용품과 선물용으로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소고기 가격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2차 지급이 맞물리면서 쿠폰을 이용해 소고기를 구매하려는 수요가 더해지면 가격 상승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지난 7월 1차 소비쿠폰 지급 당시에도 사용처로 지정된 편의점에서 정육 매출이 크게 올랐는데, 대표적으로 GS25에서는 쿠폰 발행 이후 약 한 달간 국산 소고기 매출이 직전 달보다 232.9% 신장했다. 이마트24의 정육 코너 매출도 전달보다 40%가량 증가했다.
올해도 벌써부터 들썩거리고 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전날 기준 1+등급 소 등심 부위의 평균 소비자가격은 100g당 1만2268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6% 상승했다. 평년과 비교해 3.4% 비싸다.
같은 등급의 소 안심 부위 평균 소비자가도 100g당 1만5045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6%, 평년 대비 3.2% 각각 높게 책정됐다.
국거리용으로 많이 쓰이는 양지 부위의 1+등급 소비자도 100g당 평균 6144원으로 평년보다는 7.8% 감소했으나 전년 동기 대비 7.7% 올랐다. 안심과 등심 부위를 기준으로 소비자 가격은 추석이 가까워지면서 이달 초보다 100g당 1000원 안팎으로 상승했다.
업계 관계자는 "축산물은 명절에 수요가 증가하는 품목인 데다, 올해는 소비쿠폰을 활용해 고깃집을 찾는 가족 단위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돼 가격 상승 요인이 겹쳐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은 올해 하반기 각종 생활물가 상승세는 ‘전기요금 현실화’ 논의가 물가 상방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개인 서비스 물가가 상승하면서 발목을 잡을 수 있고, 전기 요금 인상 폭이 크면 물가에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추석을 앞두고 ‘추석 민생안정대책’을 마련했다. 배추·무·사과·배 등 21대 주요 성수품 공급물량을 평상시보다 1.6배 확대한 17만톤을 공급하고, 추석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인 900억원을 투입해 농축산물을 최대 50% 할인 행사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농축수산물 가격이 오르면 원재료 부담이 커지는데, 여기에 전기·가스 같은 공공요금까지 인상되면 매장 운영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며 “가격 인상으로 전가하기도 어렵고, 자영업자들은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고, 소비자들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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