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을 말이라 해야 하는 시대 열리나
너무나도 지저분한 변태적 정치보복
특별재판부, 좌파 혁명론과 이어졌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8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무제한토론 종결동의의 건 표결에 참여하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중국 최초의 통일왕조 진나라는 3대 15년 만에 망했다. 나라를 결딴낸 자는 환관 조고(趙高)였다. 시황제가 49세를 일기로 죽은 후 그는 어리석은 호해(胡亥)를 앞세워 국권을 농단했다. 이 간신의 학정으로 진나라는 멸망의 위기에 처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2세 황제 호해가 조고를 추궁하기 위해 불렀다. 황제의 의도를 짐작한 그는 사위 염락(閻樂), 동생 조성(趙成) 등과 반란을 일으켰다.
염락은 1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망이궁(望夷宮)으로 쳐들어갔다. 호해는 자결의 방식으로 살해됐다. 조고는 공자 자영(子嬰)을 황제가 아닌 진왕(秦王)으로 추대했다. 제국은 이미 무너져 황제의 칭호를 붙일 자리가 없었다. 자영은 조고를 찔러 죽이고 삼족을 멸했다. 그러나 그 역시 항우(項羽)에게 죽임을 당했다.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잘 알려진 고사가 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농락하거나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는 행위를 말한다. 조고가 호해 앞에 사슴을 가져다 놓고 말이라고 우기며 신하들에게 같은 답을 강요했던 일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조고는 말이 아니라는 신하들을 모두 숙청, 살해했다.
사슴을 말이라 해야 하는 시대 열리나
환제(桓帝)는 중국 후한의 제11대 황제였다. 권력을 전횡하던 양(梁)씨와 손(孫)씨 일족을 멸하고 권력을 회복하는 듯했으나 그 과정에서 도움을 받았던 환관들의 세력이 막강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가 죽고 12대 영제(靈帝)가 13세의 어린 나이로 황위를 이었다. 그는 무능하고 병약했다. 권력은 환관의 무리 10상시(常侍)에게 장악됐다.
영제가 죽자 하 태후의 오빠, 대장군 하진이 조카 유변(劉辯)을 13대 황제로 즉위시켰다. 시호는 소제(少帝). 하진이 십상시를 제거하려고 하자 이들이 하 태후의 명령을 위조해 그를 장락궁으로 불러들여 살해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오광 등 하진의 부하들이 분노해서 원술과 같이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난입을 시도했다. 하진이 죽은 지 사흘 만에 원술의 형 원소가 상황을 정리했다.
십상시의 수장 장양은 하 태후, 소제, 진류왕(陳留王), 궁궐 관속 등을 이끌고 북궁으로 피신했지만 다음 날 원소가 이곳을 장악했다. 그는 궁의 문을 닫아걸고 환관이란 환관은 모조리 끌어내 죽여 버렸다. 수염이 없어 살해된 관리가 있었는가 하면 바지를 내려 환관이 아님을 증명하고 살아난 관리도 있었다. 이 ‘십상시의 난’으로 죽은 환관이 2,000명에 이르렀다. 장양은 도망을 갔으나 결국 황하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이 난리 속에서 권력을 장악한 사람은 동탁(董卓)이었다. 십상시가 죽으면서 더 끔찍한 악마를 불러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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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이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 과정을 담은 CCTV 영상을 열람하고 난 뒤 이 중 일부가 유출돼 돌아다니고 있다. 이건 명백한 인권유린이다. 구치소는 감금시설이기도 하지만 보호시설이기도 해야 한다. 국가 시설 안에 있으면서 공공연히 인권을 유린당해야 한다니!
구속 수감된 피의자가 특검 조사실 출석요구를 거부한다고 해서 CCTV 영상을 국회의원들에게 열람시키고 이 중 일부를 유출케(결과적으로) 하는 것이 적법 절차인지는 법률전문가가 아니어서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여당과 그 우호 정당 의원 일부가 구치소에서 영상을 열람한 뒤 ‘속옷 차림’이었음을 역설하는 장면이 괴기스럽다는 것은 안다.
너무나도 지저분한 변태적 정치보복
검찰청, 공수처,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등 국가기관은 제도적으로 엄격한 게이트키핑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특검은 다르다. ‘특별검사’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돼 있다. 그런데도 정권 측이 특검수사에 집착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이 휘하의 수사기관들이나 공수처의 역량과 공정성을 불신하기 때문인가. 정말 그런 이유라면 체계와 질서가 제대로 잡힌 나라라고 할 수가 없다. “이게 나라냐”고 따져 묻던 사람들 다 어디 갔나?
윤 전 대통령은 헌법 제77조 제1항에 의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었다. 그러나 국회의 요구로 6시간 만에 이를 해제했다. 이게 팩트다. 그것이 헌법 위반이었는지, 내란 행위였는지는 법원이 판단해줄 것이다. 헌법 제27조 제4항은 무죄 추정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유죄가 확정될 때까지 윤 전 대통령은 무죄다. 문제는 그를 일방적으로 ‘내란 우두머리’라고 부르고 미리 단죄하는 정부·여당에 있는 것 아닌가?
자기들끼리만 보고 나와서 한 말이다. 왜 이들이 ‘속옷’에 집착하는지 짐작이 안 된다. 이 혹서(酷暑)의 구치소 감방에서 (선풍기 한 대가 있으니) 옷 다 갖춰 입고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 “구치소 선풍기 더위 한번 겪어보라”라고 한 조국 씨의 악담만으로도 그 환경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에어컨 놔달라는 것도 아니고 더워서 옷 벗고 있겠다는데 그게 왜 그처럼 못마땅한가? 언제부터 국회의원들이 수감자 감시권을 부여받았는지도 말해주시라.
이처럼 지저분한 변태적 정치보복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을까? 전직 대통령(그 부인까지)을 구치소에 가둬두고 동물원 관람객 행세를 하다니! “하의도 속옷이었다”라는 식으로 과도한 호기심을 유도하며 (추측이지만) 회심의 미소를 지을 게 아니라 다 공개하시라. 그리고 앞으로 모든 피의자 피고인의 수감생활 다 동영상으로 촬영해 공개하시길 촉구한다.
특별재판부, 좌파 혁명론과 이어졌나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내란 사건 1심 재판을 의무적으로 중계하도록 하는 3개 특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는 언론보도도 황당하다. 지귀연 재판장이 진행하는 재판의 공정성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정 재판관의 재판과정을 감시하는 법을 만들겠다니! 법을 찍어내기에 충분한 의석수를 가지고 있으니 민주당이 못 만들 법은 없다.
‘내란특별법’이라는 것도 그중 하나다.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에 12·3 비상계엄 관련 사건을 담당할 특별재판부와 특별영장전담판사를 두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적을 정치권에서 완전히 소탕해버리겠다고 작정했다는 뜻이다. 위헌적 발상이지만 이들에겐 별로 중요한 제약 요소가 아니다. 민주당은 제21~22대 국회를 통해 헌법정신, 취지, 명문규정을 우회하는 노하우를 충분히 축적했다. 법치주의를 내세워 법치주의를 고사시키는 방법을 아주 잘 터득한 것이다.
행정부·입법부를 장악한 민주당은 이제 사법부에 대해 총공세를 펼치는 분위기다. 법원 조직과 재판 제도에 대해 파상 공격을 거듭하고 있다. 입법권을 휘둘러 사법부를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기세다. ‘3권 분립’ 같은 것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좌파의 권력이 이상비대증에 걸린 이때를 놓치면 다시 기회를 잡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듯하다. ‘특별재판부’ 발상은 좌파적 혁명논리에 이어져 있는가? 국가 권력구조의 심대한 왜곡‧파괴는 입법 내란 행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가?
지구적 범위의 기후변화로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잦아지고 그만큼 인류의 공포심도 커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더 위험한 것은 인재세변(人災世變)이다. 권력의 광증(狂症)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는가. 특히 집단적·독선적 정의감이 빚어내는 이 증세는 인류적 재앙이 된다.
권력은 야수성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다. 그래서 제도의 힘, 법치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그것까지 권력에 압도되고 말면 야수의 질주를 효과적으로 막을 대안이 없다. 권력의 무한질주는 저항과 응징에 의해서만이 멈춰질 수 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독재자들의 말로가 하나같이 비참했던 게 그 때문이다.
“일은 내가 저지르지만 책임은 다른 사람이 질 것이다.”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에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게 오산임은 권력을 잃고 난 후에나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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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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