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출발기금’ 가상자산 은닉 적발…금융위, “소득·자산 심사 정교화하겠다”
채무자 동의 없이도 가상자산 등 자산 정보 열람 가능한 ‘신정법 개정안’ 추진
법 개정 시에도 도박·투기성 채무 선별은 여전히 난제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지난 8일 오후 부산 남구 부산국제금융센터 캠코마루에서 개최한 새도약기금 소각식에서 축사 후 새도약기금·국민행복기금 대표,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 국민 대표 4명과 연체채권 서류를 파쇄하는 소각 세리머니에 참석했다. ⓒ금융위원회
가상자산 수억원을 보유한 차주가 채무 감면을 받은 사례가 드러나며 금융당국이 신용정보법 개정을 통해 자산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법 개정만으로 새출발기금과 새도약기금의 정책적 허점을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소상공인·자영업자 채무조정 프로그램 ‘새출발기금’ 운영 시 변제 능력이 충분한 채무자도 최소 60%의 감면을 받아 수백억원의 채무를 부적절하게 감면해줬다는 감사원의 감사결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감사원이 3000만원 이상 감면받은 1만7533명을 대상으로 재산 은닉 등 사해 행위 가능성을 점검한 결과, 1000만원 이상 가상자산을 보유한 사례가 269명, 채무 감면 신청 전후로 가족 등에게 1000만원 이상을 증여한 사례가 77명 확인됐다.
금융위는 감사결과 발표 다음날인 지난 16일 예정에 없던 백브리핑을 열고, 소득·자산 심사를 정교화하고 원금감면율을 차등화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을 반영해 새출발기금 운영 당시 적용했던 ‘DSR 40% 이상, LTV 50% 이상’ 등 상대적 기준을 손질하겠다는 취지다.
연체 7년 이상, 5000만원 이하 채권을 일괄 매입해 소각하는 새도약기금에 대해서도 ‘상환 능력이 충분한 고소득자가 정책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금융위는 소득 구간에 따라 지원 대상을 나누는 구조인 만큼 고소득자는 원금 감면 대상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다만 가상자산이나 비상장주식 등 은닉 재산을 둘러싼 문제에 대해서는 제도적 한계를 인정하며,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인 ‘신용정보법 개정안’을 보완책으로 제시했다.
법이 개정되면 차주 동의 없이도 가상자산사업자 등으로부터 보유 정보를 제공받아 새출발기금과 새도약기금 심사를 보다 정밀하게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신용정보법이 개정되더라도 정책 허점이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개정안이 도입되더라도 새도약기금에서 문제로 지적된 도박·투기성 채무를 가려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백브리핑에서도 신진창 금융위 사무처장은 ‘신용정보법 개정으로 도박·사행성 채무 선별이 가능하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도박 빚으로 인한 채권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며 “신용정보법 개정 역시 캠코가 채무자 동의 없이 자산 조회를 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는 것이지, 도박장 여부를 식별할 수 있는 근거를 두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식별 가능한 사업자라면 확인하겠지만, 사실상 식별이 어려운 영역까지 법으로 규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법률상 근거를 둘 수 있는 최대치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정책 설계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준비 없이 배드뱅크를 출범시킨 뒤, 제도 허점이 드러날 때마다 법 개정을 덧붙이는 방식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신용정보법 개정은 심사를 보완하는 수단일 수는 있지만, 채무 일괄 매입·사후 소각이라는 구조에서 비롯되는 도덕적 해이 우려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정무위 관계자는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도박 빚이나 투기 자금 용도로 대출한 것을 100% 걸러내지 못할 것”이라며 “채무를 일괄적으로 탕감하는 방식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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