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 순서를 보면 권력 변화가 보인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입력 2008.12.20 08:59  수정

이윤성 부의장, 김용태 출판기념회서 3번째 호명 받자 ´호통´

감투없는 이상득, 당직자보다 앞서…박근혜도 김영삼에 양보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16일 오후 국회 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김용태 의원의 ´김용태 리포트-대한민국 생존의 조건´ 출판기념회에서 김용태 의원과 이야기 하고 있다.

퀴즈하나.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홍길동 의원 출판기념회에 박희태 대표, 홍준표 원내대표, 정몽준 최고위원이 참석했다. ‘축사 1번’으로 단상에 오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문제가 너무 쉽다면, 참석자를 추가한다. 이상득 의원, 박근혜 전 대표, 김영삼 전 대통령, 김형오 국회의장. 이젠 누가 먼저 단상에 오를까? 또 2번은?


정치권에서 축사 순서는 단순히 ‘감투’의 높낮이로 결정되지 않는다. 이 퀴즈를 풀기 위해선 행사의 성격과 장소, 현재 정치적 상황 등을 고려해야 한다. 행사 주최측으로선 축사 순서를 정하는 일이 고차방정식을 푸는 일보다 어려운 셈이다.

진성호 출판기념회, 이윤성-정몽준-공성진-이상득-고흥길 순

최근 열린 행사에서 고차방정식을 풀 ‘공식’을 찾을 수 있다.

지난 15, 16일 각각 한나라당 진성호, 김용태 의원 출판기념회가 국회도서관에서 열렸다. 여권 실세들이 대거 참석했고, 두 번의 행사에 참석한 ‘금배지’ 합만 170개가 넘었다. 두 의원 모두 친이계로 분류되고 있다.

우선 진 의원 출판기념회의 경우, 축사 1번으론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올랐다. 그는 “진 의원의 책을 보니, 대통령 되겠다는 얘기 같다”며 후한 덕담을 늘어놨다. 이어 최고위원 득표 서열순으로 정몽준-공성진 최고위원이 축사를 했다.

4번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나섰다. 이 의원은 현재 당직이 없다. 사회자는 “한나라당의 큰 어르신 이상득 의원을 모신다”며 그를 단상에 올렸다. 이 의원 옆엔 친박계 좌장 홍사덕 의원이 앉아 있었지만, 마이크 앞에 설 기회가 없었다. 이-홍 의원 모두 6선(選)으로 당내 ‘최고선’이다.

이어 고흥길 문방위위원장과 정의화 재경위위원장, 진 의원의 지역구인 문병권 중랑구청장이 뒤를 이었다.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15일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진성호 의원출판기념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이윤성, 3번째 축사에 “위계질서를 모른다” 호통

김용태 의원은 출판기념회에서 축사 순서 때문에 때 아닌 ‘된서리’를 맞았다. 행사 사회는 김 의원이 직접 맡았고, 박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를 각각 1,2번 축사자로 올렸다.

문제는 이 부의장. 호명을 받고 3번째로 단상에 오른 이 부의장은 언짢은 표정으로 “김 의원이 잘 나가는 사람인데, 위계질서를 모른다”면서 “국회에서는 의장이 주인이고, 이 자리에선 부의장인 내가 제일 높다”라며 호통(?)을 쳤다.

이 부의장은 축사에서도 의레하는 덕담 대신 ‘작심한’ 험담을 늘어놨다. 그는 “하나 짚고 넘어가겠다”면서 “김 의원이 행사 초반에 예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등 의정보고회로 착각을 한 것 같은데, 선관위에 신고도 하지 않아 이것은 불법이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니깐, (축사 순서 때문에) 감정 상하게 해서, 별 생각을 다 나게 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정-공 최고위원이 축사를 했고, 6번째로 이상득 의원이 단상에 섰다. ‘상왕’, ‘영일대군’ 등으로 불리며 여권최고실세로 군림하는 이 의원으로서는 서운할 법도 한 일. 이 의원은 “앞서 올라오신 분들은 감투가 높은 분들인데, 나는 감투가 없다. 단지 키가 크다”며 에둘러 말했다.

이 의원에 이어 김영선 정무위위원장,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이 축사를 했다.

이명박의 꼴찌 축사 “김영삼 대통령이 왔다가셨나 보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시절인 지난 2005년 11월 14일 박진 의원 출판기념회에서 ‘꼴찌 축사’를 했다. 이 대통령이 유력한 대권주자로 지지율 1위를 달릴 때다.

당시 행사엔 김영삼 전 대통령,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이만섭·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근혜 전 대표 등 정치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그렇다면 축사 1번은 누구였을까. 박 의원이 청와대에서 통역비서관으로 수행한 바 있는 김 전 대통령이다. 2번은 이 전 의장으로 ‘원로 정치인’이라는 의미가 컸다. 당시 당대표였던 박 전 대표는 이들의 축사가 끝나고 나서야 단상에 올랐다.

이 대통령은 행사에 30분가량 늦게 도착했고, 이미 ‘거물’ 인사들이 자리를 떠난 뒤였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마지막 축사에 나선 이 대통령은 “방금 김영삼 대통령이 왔다가셨나 보다. 오는 길에 보니깐, 경찰차에 둘러싸인 차가 빠져 나가더라”라면서 ‘전직대통령 교통통제서비스’에 부러운 눈길을 보냈다.

하지만, 더 이상 부러울 이유가 없다. 이 대통령은 지금도, 후에도 ‘전관예우’를 받고, 축사도 ‘1번’을 부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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