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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발견㊷] 혼돈과 불안의 마스터, 케이트 블란쳇


입력 2023.03.26 08:00 수정 2023.03.26 16:31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캐롤, 블루 재스민 그리고 TAR 타르

배우 케이트 블란쳇 ⓒ이하 CGV아트하우스 배우 케이트 블란쳇 ⓒ이하 CGV아트하우스

인생의 본질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몇이나 될까. 그런 연기력, 그러고 싶은 욕망과 희망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그런 작품을 만나지 못하면 길이 막힌다. 그런 작품이 구상되어 제작에 들어간다 해도 그런 캐릭터가 그 배우의 차지가 되라는 법도 없다.


이 어려운 확률을, 그것도 누차 뚫고 당첨된 배우가 있으니 케이트 블란쳇이다. 부분적으로 그러한 캐릭터, 조연인 작품들까지 논하면 끝이 없다. 명백하게 그러한 인생의 본질을 표현한 작품들 세 가지만 얘기해 볼까.


아! 인생의 본질이란 게 한두 가지도 아닌데,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본질을 구체적으로 국한 시키는 게 좋겠다. 지금 써온 글처럼, 표현처럼, 불분명하여 혼란스럽고 혼란을 넘어 나를 둘러싼 지구와 우주가 팽팽 도는 것만 같은 혼돈에 사로잡혀 더할 나위 없는 불안에 빠진 한 인간의 심리를 케이트 블란쳇은 마치 진실로 그 상황에 놓인 것처럼 표현한다.


이 날것의 표현이 중요한 것은, 단지 그가 기가 막히게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다. 크든 작든 매일의 혼돈과 불안 속에 사는 게 나만이 아니고, 나의 상태가 정신병원이라도 찾아가야 할 것 같은 비정상이 아님을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캐릭터가 일깨워 우리의 심정을 다독이고 우리의 일상에 평안을 선물한다는 데에 그 생생한 연기의 의미가 깊다.


영화 '캐롤'의 캐롤 ⓒ 영화 '캐롤'의 캐롤 ⓒ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혼돈과 불안 연기에 탁월하다고 명백하게 느낀 영화는 우선, ‘캐롤’(2015, 감독 토드 헤인즈, 수입 ㈜더쿱, 배급 CGV아트하우스)이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블란쳇은 안정적 생활이 가능한 남편 그리고 목숨보다 소중한 딸이 있음에도 인생에 처음 찾아왔거나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사랑’을 만나 혼란에 휩싸이는 캐롤을 연기했다.


동정은커녕 이해받기도 어려운 캐롤의 선택, 게다가 캐롤의 사랑은 동성을 향한 것이었고 캐롤의 동성애는 남편이 보기엔 처음도 아니어서 그저 여유로워서 지루한 생활에 신선한 자극을 바라는 ‘사치품’처럼 폄하된다. 그것이 남편만의 시선이었으랴.


하지만 케이트 블란쳇은 캐롤과 테레즈의 운명적 끌림, 사랑 앞에 직진하는 테레즈와 달리 갈등과 혼돈을 겪는 캐롤의 심정을 미화 없이 깨끗하게 표현했다. 테레즈 역의 루니 마라는 자칫 피해자로 보일 수 있고, 캐롤 역의 케이트 블란쳇은 흔히 사랑의 가해자로 보일 수 있는 설정이었음에도. 루니 마라의 인터뷰처럼, 타이틀-롤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의 리드에 리액션 하며 두 배우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순수한 사랑으로 영화를 끝맺었다. 사랑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사랑에 빠진 두 캐릭터, 그 인물들을 연기한 두 배우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영화 '블루 재스민' ⓒ이하 인벤트 디 제공 영화 '블루 재스민' ⓒ이하 인벤트 디 제공

영화 ‘블루 재스민’(2013, 감독 우디 앨런, 수입 ㈜드림웨스트픽쳐스, 배급 인벤트 디)에서의 케이트 블란쳇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제목 그대로 블루, 청색 우울감에 빠진 재스민, 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한 여인의 발버둥과 안간힘 그리고 그마저도 위장으로 해낼 수 없이 심적 나락에 빠진 한 인물의 내면을 실감으로 표현했다.


재스민은 뉴욕 맨해튼 명품가에서 쇼핑한 명품들을 온몸에 휘감은 게 지극히 자연스럽고, 햄튼 고급 주택가에서 살며 파티를 즐기는 게 잘 어울리는 상류층 여성이었다. 케이트 블란챗은 여왕이나 귀족 같은 품위를 몸에 밴 듯 뿜어내는 데 능하다. 그만큼 자존감도 강한데, 재스민은 그만 남편의 외도를 알아챈다, 당연히 참을 수 없다.


영화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 ⓒ 영화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 ⓒ

견딜 수 없어 모든 걸 버리고 떠날 거면, 그 이후의 삶도 당해낼 강함이 있으면 좋으련만 재스민에게는 전자를 행할 결단력만 있다. 무작정 뉴욕의 화려한 셀럽 라이프를 떠나 샌프란시스코의 평범한 생활, 동생 일상으로의 편입을 꿈꾼다. 애초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재스민은 그곳에서 뿌리내리는 게 아니라 ‘공중누각’을 쌓는다. ‘나는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 거짓으로 잰 체하며 허구의 이미지를 만든다.


가짜 캐릭터를 통해 진짜 새 인생이 펼쳐질 리 만무다. 게다가, 스스로 자신을 일으켜 세우려는 게 아니라 허상의 인물을 통해 ‘낚은’ 새로운 남자에게 자신의 인생을 의탁하려는 시도가 먹힐 만큼 인생이 녹록하지 않다. 재스민은 이제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다. 바닥에 바닥을 찍은 인간의 표상을 케이트 블란쳇은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명징하게 보여준다, 혼돈과 불안 그 자체인 ‘블루 재스민’의 모습으로. 감탄이 일고, 뇌리에 또렷이 남아 잊기 어려운 표정과 아우라 가득한 연기다.


영화 'TAR 타르' ⓒ이하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영화 'TAR 타르' ⓒ이하 유니버설 픽쳐스 제공

사실, 이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배우에 의해서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케이트 블란쳇 자신이 다시 한번 해냈다. 배우로서 10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음을 영화 ‘TAR 타르’(감독 로드 필드,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를 통해 스스로 입증했다.


이 작품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다시금 타이틀-롤을 맡았다. 배우가 캐릭터의 이름을 내세운 작품을 한다는 것, 그 무게감은 지구 중력 이상일 수밖에 없는데 블란쳇은 되레 ‘바로 그때’ 절정의 연기를 이룬다.


영화 'TAR 타르'의 타르 ⓒ 영화 'TAR 타르'의 타르 ⓒ

리디아 타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이자 작곡가다. 여성 지휘자를 가리키는 ‘마에스트라’라고 불리지 않고 보통명사인 ‘마에스트로’라고 불리는 것은 그의 탁월한 곡 해석 능력과 세계적 오케스트라 연주단과 이룩해온 음악적 성과 덕분인 동시에 레즈비언 부부·육아 생활에 있어 남편과 아빠이기 때문이다.


스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와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타르의 과거는 불투명한 불안들이 잠재했고, 그의 현재 또한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소리에 예민해서 숙면 취하기 어렵고, 뛰어난 천재여서 평범한 둔재들의 헛소리를 참기 어렵지만 나름대로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쓴다.


뼛속까지 아티스트, 그 연기의 끝은 어디일까 ⓒ 뼛속까지 아티스트, 그 연기의 끝은 어디일까 ⓒ

타르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위협하는 위험은 일상에 널려 있다. 성소수자여도 권력을 쥐는 순간 진보적 여성들의 타깃이 될 수 있고, 모든 행동이 ‘동성애자’ 프레임으로 해석될 수 있다. 동성 아내에게는 무심하고 일방적인 남편이고, 부모 역할 잘하는 것만으로는 인생의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모난 돌이 정 맞을 확률은 진정 상대적으로 높다. 사회적 성공과 별도로 여전히 아이 같은 타르에게 인생은 만만치가 않고, 분명 자기중심적 사고와 행동이 불러오는 문제는 크다.


영화를 통해 타르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어지럽다. 만일 나라면 잘살아낼 자신도 없고, 조언의 말도 가닥이 서지 않는다. 보통은 지구의 자전을 느끼지 못해 편히 살 수 있지만, 특별할 일 없는 자전을 깊이 느낀다 치면 살아내기가 여간 힘겹지 않을 것처럼. 인생에 고난과 고통이 있다는 게 뭐 그리 특별한 일이겠는가마는 유달리 체감의 감도가 높은 타르에게는 숨통을 조이는 ‘죽을 맛’이라는 얘기다.


불안과 혼돈 연기의 마스터, 케이트 블란쳇 ⓒ 불안과 혼돈 연기의 마스터, 케이트 블란쳇 ⓒ

다시 말해, 타르의 인생고(人生苦) 역시 대중적으로 이해받고 용서받기 어려운 아픔인데 케이트 블란쳇은 우주가 빙빙 도는 한가운데에 내가 ‘원의 중심’으로 서 있는 것 같은 혼돈과 당황스러움을 고스란히 우리가 느끼게 한다. 내게 닥친 불행이 모호해서 더 불안하고 두려운 심적 상태를 절절히 공감하게 한달까.


영화 ‘타르’에는 명작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중첩돼 있고 결결이 배어 있다. 이 작품을 내가 전부 이해하려면 도대체 몇 번을 봐야 할까 싶을 만큼 심오하다. 그런데, 결코 어렵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배우 케이트 블란쳇의 놀라운 매력이고 배우로서의 인력이다. 혼돈과 불안 표현의 마스터 경지에 이른 연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열 번은 너끈히 반복해 볼 수 있겠다는 낙관을 케이트 블란쳇이 준다. 그렇게 계속 보다 보면, 어느샌가 내가 이 영화의 깊은 세계에 평안히 빠져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을 품어 본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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