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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로그인] 수산인 끌고 정부 밀고…의무자조금, 한국판 ‘제스프리’ 꿈꾸다


입력 2023.03.20 07:00 수정 2023.03.20 07:00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2004년 김으로 출발한 수산자조금

20년 만에 ‘의무’ 자조금으로 전환

정부 지원 바탕 ‘스케일 업’ 추진

경쟁력 제고로 수출 시장 확대 기대

지난 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양식수산물 의무자조금 출범식에서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횐쪽에서 다섯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해양수산부 지난 3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양식수산물 의무자조금 출범식에서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횐쪽에서 다섯번째)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해양수산부

최근 세계는 급변하는 물결 속에 다양한 생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등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 중립, 감염병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비대면 문화 확산, 디지털 첨단 기술을 접목한 4차 산업혁명 등 저마다 시장 선점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공기관 역시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수립 중입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공공기관 역점 사업에 관한 관심은 크게 줄어든 상황입니다. 데일리안이 기획한 [D:로그인]은 공공기관의 신사업을 조명하고 이를 통한 한국경제의 선순환을 끌어내고자 마련됐습니다.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로그인]처럼 공공기관이 다시 한국경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조명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제스프리(Zespri)’는 세계 최대 규모 키위 상표(브랜드)다. 1997년 뉴질랜드에서 키위 농가들이 뜻을 모아 협동조합을 설립한 게 시초다.


현재 해마다 47만t의 키위를 생산해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 매출을 거두고 있다. 수출국만 70개국이 넘는다. 한국과 일본, 호주, 이탈리아 등은 별도 허가를 얻어 제스프리 이름으로 키위를 직접 생산하기도 한다.


제스프리 성공 비결은 규모와 자본력이다. 제스프리는 키위 품질 관리, 신품종 개발, 해외시장 개척으로 세계 최대 프리미엄 키위 브랜드라는 입지를 다졌다. 수확에서부터 선적까지 모든 과정을 컴퓨터로 관리하는 최첨단 유통 시스템을 바탕으로 썬골드, 그린, 점보, 유기농 등 다양한 키위를 유통 중이다.


제스프리가 규모의 경제를 실천하고 든든한 자본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소규모 농장들이 힘을 모았기 때문이다. 제스프리는 농가 스스로 결성한 자조금 단체다. 1997년 설립 이후 현재 2700여 농가가 조합원 주주로 등록돼 있다.


‘썬키스트(Sunkist)’도 마찬가지다. 189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오렌지를 키우던 사람들이 가격 경쟁을 피하려고 조직한 단체가 시초다. 현재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 6500여 농가가 조합원으로 참여 중이다. 청과물 업계 세계 최대 규모로 연 매출은 약 10억 달러에 달한다.


제스프리와 썬키스트 사례에서 보듯 사실상 국경이 허물어진 시대 농수산물이 수출 시장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요소들이 있다.


최고 수준 품질은 기본이다. 이외에도 소비자에 각인할 ‘브랜드’가 필요하다. 판로를 만드는 기획력도 있어야 한다. 소비자 눈길을 끌 상품 포장과 다양한 방식의 홍보도 빼놓을 수 없다.


광어양식연합회가 자조금을 활용해 소비 촉진 활동을 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광어양식연합회가 자조금을 활용해 소비 촉진 활동을 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이 모든 것에는 돈이 필요하다. 그래서 제스프리와 썬키스트는 조합을 만들고 자조금을 거뒀다.


자조금(自助金·self-help cost)은 상품 소비촉진, 품질향상, 자율적인 수급 조절 등을 위해 농가 또는 어가에서 스스로 내는 자금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돼지(한돈), 우유, 계란 등이 자조금을 운영 중이다.


자조금은 의무자조금과 임의자조금으로 구분한다. 조합 회원이 자발적(임의)으로 납부하느냐 아니면 강제(의무)로 돈을 내느냐의 차이다.


국내 자조금은 농산물이 주를 이룬다. 2000년 파프리카와 참다래를 시작으로 2021년 기준 25개 품목에서 자조금을 조성·운영하고 있다.


수산자조금, 20년 동안 10개 품목 확대


수산자조금은 전남 해남군에서 김 양식업자들이 뜻을 모은 게 시초다. 2004년 김 양식 단체와 김 건조 단체가 뜻을 모아 (사)한국김산업연합회를 만들어 자조금을 조성한 게 수산자조금 시작이다. 20년이 지난 현재는 전복과 광어, 송어 등 10개로 확대했다.


수산자조금은 지난 20년 동안 임의자조금 형태로 운영해 왔다. 쉽게 말해 돈을 내도 그만 안 내도 그만이란 의미다. 그렇다 보니 자조금을 운영하는 단체가 해당 수산물 전체를 대표한다고 보기 힘들었다.


대표성이 없으니 사업에도 한계가 분명했다. 자금 규모를 늘리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무엇보다 자조금을 내지 않은 회원(업자)들이 자조금 혜택을 누리는 ‘무임승차’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됐다.


임의 자조금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올해 해양수산부는 올해 8개 수산물에 대해 ‘의무자조금’ 제도를 도입했다. 지난해 출범한 굴과 미역을 제외한 모든 자조금 단체가 대상이다. 이들 단체는 가입 회원 절반(50%) 이상으로부터 의무자조금 전환 동의를 얻었다.


해수부는 지난 3일 열린 의무자조금 공동 출범식 자리에서 “수산물 자조금의 책임 있는 운영을 위해 모든 품목별 수산업자가 자조금 조성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체제 전환을 추진해 왔다”며 “이를 통해 품목별 단체 회원 수도 늘고 조성하는 자조금 규모도 더 확대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해수부가 의무 자조금을 통해 기대하는 바는 책임감과 자율성, 규모의 증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단체별로 자조금 활용을 제약하던 크고 작은 규제를 해소해서 자율성을 보장한다. 자조금의 책임 있는 운영을 위한 성과 연계 환류 체계도 도입한다. 제도 확대를 위해 모범자조금을 신설하는 등 다양한 유인체계 마련도 고민 중이다.


해수부는 자조금 제도를 의무화함으로써 품목별 단체의 수직·수평적 확대를 기대한다. 자조금 참여 업체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를 위해 해수부는 지속해서 제도를 개선하고 전담 지원 조직 등 만들어 뒷받침할 예정이다.


송어자조금관리위원회에서 자조금을 활용 송어시식행사를 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송어자조금관리위원회에서 자조금을 활용 송어시식행사를 하고 있다. ⓒ해양수산부
든든한 자본력 바탕 세계 무대서 경쟁


현재 수산자조금 규모는 연간 70억원 정도다. 이 가운데 절반은 정부 보조금이다. 축산자조금이 503억원에 이른다는 점에서 농축산 자조금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크다.


자조금은 소비 촉진 홍보, 수급 조절, 유통구조 개선, 수출 활성화, 품질 향상, 생산성 개선 등 산업 경쟁력 강화에 사용한다. 자조금 규모를 키우는 게 중요한 이유다.


해수부는 “임의 방식에서는 아무래도 자금 형성에 한계가 있고, 회비(자조금)를 내는 회원과 내지 않는 회원 간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모범자조금 단체를 신설해 인센티브(혜택)를 확대하려는 것도 결국엔 자조금 규모 확대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해수부는 의무자조금 안착을 위해 사업 지침을 개정, 사업 내용을 단체(협회)가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자조금의 40% 의무적으로 수급 조절에 쓰도록 했다. 앞으로는 단일 사업에 쓸 수 있는 한도를 35% 제한하고,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


자조금 단체가 중·장기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단체별 특성에 맞춰 가공사업 투자, 공동 인터넷 판매자 등록 등 다양한 수익처를 발굴하도록 돕는다. 법령과 제도 개선도 뒷받침할 예정이다.


사업계획 이행실적과 객관적인 신규 성과지표 등을 종합 고려한 환류 체계도 구축한다. 자조금 집행을 정책 중요도를 기준으로 가중치를 부여해 객관적인 성과지표를 개발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더욱 책임 있는 자조금 운영을 기대한다.


단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전문가 조언(컨설팅)과 단체별 행정, 예산집행 관련 교육도 계획하고 있다. 현행 농수산자조금법에서 수산업만 별도 분리하는 ‘수산물 자조금 단체 조성 및 육성에 관한 법률’도 추진한다. 자조금 운영·관리를 안정적으로 지원할 전담 조직을 설치할 방침이다.


조승환 해수부 장관은 “김과 전복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양식 수산물 단체들이 의무자조금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며 “수산인이 자율적으로 조성하는 만큼 정부도 자조금이 확대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권순욱 해양수산부 수산정책실 어촌양식정책관.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권순욱 해양수산부 수산정책실 어촌양식정책관.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의무자조금, 20년 수산자조금 역사 전환점 될 것”
[인터뷰] 권순욱 해수부 수산정책실 어촌양식정책관


“의무자조금은 소규모 어가가 집단화한다는 점,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현 정부 정책 기조인 민간 중심 성장을 수산 분야에서 실현하는 대표 사례라는 점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수산인 스스로 필요한 부분에, 원하는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중요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수산물 의무자조금 사업을 지휘 중인 권순욱 해수부 수산정책실 어촌양식정책관은 의무자조금 제도 시행에 대해 “20년 수산자조금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표현했다.


권 정책관이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자조금 규모의 확대다. 앞으로 업장 규모나 생산량, 매출 등 일정 기준 이상 회원(수산인)들은 의무적으로 자조금을 내야 한다. 단체별 자조금 규모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정부가 1대1 비율로 보조금을 더해주기 때문에 효과는 배가 된다.


다음으로 자조금 단체에서 책임 있는 운영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권 정책관은 “모든 구성원이 (자조금에) 참여하게 된다면 그만큼 사업 계획이나 구성에 관심을 두게 되고 운영도 투명하게 된다”며 “사업에 관한 욕구를 모으면 다양한 사업을 통해 자조금 경쟁력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의무자조금이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담보돼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회계 투명성이다. 규모가 커지고 사업 영역도 확대하다 보니 자조금 사용 내용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특히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만큼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해수부는 이를 위해 앞으로 전담조직을 지원할 계획이다. 현재 자조금 단체에 회계 문제를 조언해주는 역할은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서 하고 있다. 사업 관리와 직원 대상 정기 교육은 물론 전문 법인을 초청해 회계 관련 도움을 주고 있다.


해수부는 앞으로 제도 확대를 예상하고 상시 근무 형태의 자조금 단체 지원 사무국을 만드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사무국은 해수부가 직접 관리하기보다는 KMI나 수산업협동조합 등 수산업 관련 기관에 위탁하는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조금 몸집이 커진 만큼 내부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도 해수부 몫이다. 단체 내 의사소통이나 내부 갈등 관리 등에 신경 써야 한다. 권 정책관은 “여러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 여러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도 과제”라고 말했다.


권 정책관은 “의무자조금 출범이라는 새로운 분기점을 맞아 해수부도 수산물 자조금 단체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자조금 관계자 여러분과 양식업 종사자들도 자조금을 활용한 신규사업 발굴 등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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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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