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테이너, 미술 시장규모 1조원 시대 견인
솔비 "연예인 화가에 코웃음...현재는 예술 경계 무너져"
지난해 미술시장은 역대 최고 규모로 성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집계한 ‘2022년 미술시장 규모 추산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미술시장 매출액은 1조377억원(추산)으로 전년(7563억원)에 비해 약 37%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술시장 성장의 주역으로는 팬데믹에 중단됐던 아트페어의 재개 등도 있지만, ‘아트테이너’(art entertainer의 준말)의 활동도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아트테이너 1세대 솔비(권지안) ⓒ엠에이피크루
불과 10년 전만해도 미술시장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던 아트테이너가 시장규모를 키우는데 일조할 수 있었던 건, 아트의 허들이 낮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새로운 작품 공급을 위해 일부 화랑에서 아트테이너들의 작품으로 시선을 돌리고, 연예인의 인지도를 발판으로 행사를 홍보하려는 미술 행사 주최 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래서 아트테이너 원조 격인 가수 조영남부터 시작하는 아트테이너 계보는 최근 더욱 급증했다. 아트테이너라는 신조어를 본격적으로 쓰이게 만든 장본인은 2012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미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솔비(권지안)다. 이밖에도 이혜영, 윤송아, 구준엽, 임혁필, 하정우, 하지원, 구혜선, 나얼 등에 이어 최근에는 송민호(위너), 박기웅, 유라(걸스데이) 등이 아트테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부정적인 여론에도 꾸준히 자신의 예술 세계를 선보인 것도 아트테이너 성장의 발판이 됐다. 대표적으로 ‘유명세로 실력도 안 되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척 한다’는 부정적 시선에 시달려야 했던 배우 하정우는, 국내 H·art Gallery에서 개인전을 연 것을 시작으로 뉴욕, 홍콩 등지에서도 전시를 하면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한 작가로부터 ‘미대 가고 싶은 학생 수준’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받아야 했던 솔비도 2010년 치유 목적으로 미술을 시작해 2012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2015년 음악과 미술을 결합한 ‘셀프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화가로서 역량을 발휘하며 예술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를 인정받아 2018년엔 ‘2019 대한민국 퍼스트브랜드 대상’에서 처음 신설된 ‘아트테이너 부문’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솔비는 “제가 처음 미술을 할 때만 해도 아트테이너는 전에 없던 ‘낯선’ 분야였다. 대중들이 느낀 ‘낯섦’은 때론 부정적인 감정으로 표출되기도 했고, ‘TV에서 보던 연예인이 미술·예술을 한다고?’하며 코웃음 치던 분들도 있었다”며 “미술은 감정의 표현과 시각의 확장성, 다양성을 제시해주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영역이 확장되고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만큼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간극이 점차 좁혀지고 있다. 그 결과 지금은 많은 연예인이 자신의 그림을 당당히 드러내며 많은 아트테이너들이 탄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열린 박기웅 작가 특별전 <48VILLAINS>
지난 2021년 화가로 데뷔한 박기웅은 전시회 홍보 인터뷰 당시 “무엇보다 주변에 작가로 자리 잡은 친구도 있고, 자리 잡지 못해 ‘투잡’을 뛰는 친구도 있는데, 나는 어쨌든 ‘배우’라는 베네핏을 얻고 그림을 그리는 거니까 그 점이 전공자들한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법은 연기력을 키운 것처럼, 매일 그림을 그리며 실력을 키우는 것이었다. 박기웅은 “전시회를 준비할 때는 짧게는 4~6시간, 길게는 6~12시간 붓을 잡았다. 전시가 있든 없든 매일 그림을 그렸다. 연기력을 키우는 데도 여러 작품에서 많은 역할을 경험해 보는 게 좋은 것처럼, 그림도 많이 그리면 실력이 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술 업계에서는 ‘식당 다음으로 많은 부업이 화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연예인들이 ‘미술 작가’로 활동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연예인이 미술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미술을 전공했던 실력을 바탕으로 작가 활동을 하거나, 취미로 시작한 그림이 부업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책을 쓰거나, 식당과 쇼핑몰 등을 운영하는 등 연예인의 부업은 미술에만 한정되진 않는다. 그리고 꼭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부업은 당연한 시대가 됐다. 유독 연예인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여전히 아트테이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남아 있지만,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한 큐레이터를 통해 현재 개최하고 있는 전시회의 스태프 10명에게 아트테이너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9명이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에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아티스트의 예술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최근엔 작품과 대중과의 접점을 잘 찾는 것 역시 예술가의 덕목인 시대다. 아트테이너의 등장 역시 대중의 니즈에 따라 생긴 현상으로 업계도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초현실주의 작가이자 나이브 아트의 대가 앙리 루소, 우리나라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박수근, 빈센트 반 고흐, 프리다 칼로, 장 미셸 바스키아 등의 미술 거장들 역시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자신들만의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진중권을 비롯한 여러 미술평론가들 역시 “미술대학 나온 것을 신분으로 생각하는 것이 하나의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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