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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선동 정치 말고 법정에서 다투라


입력 2023.01.30 07:07 수정 2023.01.30 07:07        데스크 (desk@dailian.co.kr)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은 또 뭔지

피의자는 선이고 검찰은 악인가?

“민주공화국에선 숫자가 최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에 출석한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보수단체가 맞불집회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에 출석한 지난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보수단체가 맞불집회를 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민호 기자

“국민여러분. 오늘 이 현장을 기억해 주십시오. 오늘 이곳은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이 법치주의 그리고 헌정질서를 파괴한 현장입니다.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이 정적제거를 위해서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최악의 현장입니다. 이제 이 나라가 검사에 의한 검사를 위한 검사의 나라가 돼 가고 있습니다.”

지난 28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낭독한 입장문의 한 대목이다. 불의한 정권에 맞서서 목숨을 건 투쟁을 하던 ‘민주 전사(戰士)’가 법정에서 최후 진술을 하는 장면으로 착각될 법한 용어들로 채워졌다.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은 또 뭔지

그는 정권의 무도한 권력행사에 저항하다가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진 투사가 아니다. 개인으로서의 범죄혐의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소환한 것이 왜 ‘법치주의와 헌정질서의 파괴’가 되는지 그걸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그는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 수많은 형사 피의자 중 한 사람에 불과하다. 모든 형사 피의자들이 검찰과 정부를, 이런 논리로 공격할 권리를 가졌다고 말하는 것인가?


지난 10일 ‘성남FC 후원금 의혹’과 관련해 출석했을 때는 ‘검찰공화국’ ‘정치검찰’이라더니 이번엔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이라고 표현을 바꿨다. 응원 나온 민주당 소속의 충성스러운 의원들과 ‘개딸’을 위시한 지지자들 정서에 더 먹혀들 네이밍이라고 여긴 것 같다. 그렇지만 품격과 자제력이 완전히 배제된 정치인의 말은 대표적인 사회악이다.


‘윤석열’이 대표하는 ‘검사 독재정권’이라는 의미인지, ‘윤석열 검사가 검사스럽게 이끄는 독재정권’이라는 뜻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하기보다는 ‘윤석열 검사’라고 하는 게 지지자들의 공격심리를 부추기면서 상대방의 감정을 긁어대는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을까? 그래서 어느 쪽으로나 의미가 통하도록 조어(造語) 실력을 과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검찰공화국’이든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이든 지지자들의 공감을 고조시키기 위해서 구사한 표현일 텐데 이는 정부와 검찰뿐만 아니라 바로 자신의 지지자들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지지자들이 그런 저질스럽고 모욕적인 언어에 환호할 수준밖에 안 된다고 공언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향해 “내편을 드는 사람들은 모두 이 정도의 인식과 의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것이나 뭐가 다른가.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국민여러분 겨울이 아무리 깊고 길다한들 봄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권력이 크고 강하다고 해도 국민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피의자는 선이고 검찰은 악인가?

왜 국가공권력은 겨울이고 피의자 자신은 봄이라는 것인지, 비유가 너무 유치하다. 봄은 여름에, 여름은 가을에 양보하거나 밀려가고 마침내 다시 겨울이 온다. ‘최종적 강자’는 겨울이 되는 건가? 봄은 없이 겨울뿐인 극지방에서는 겨울이 선도 되고 악도 되나? 국가 공권력은 겨울에, 피의자 자신은 봄에 비유한 건 ‘국가=악(惡), 범죄 혐의자=선(善)’이라고 규정한다는 뜻이겠는데, 법률가이자 정치지도자인 이 대표의 자기부정이 어이없다.


“이 현장을 기억해 달라”고 한 뜻은 또 뭔가? 강제로 멱살 잡혀 끌려간 게 아니었다. 그 자신이 출석 일시를 일방적으로 정해, 그것도 약속 시간을 1시간 가까이나 넘겨서 그 자리에 섰다. 당 소속 국회의원 다수와 자신을 지지하는 대중의 호위 속에 거드름피우며 등장해서 준비해간 입장문을 낭독했다, 지난 10일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기자들의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뭘 어떻게 기억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인가?


그는 이날 조사에서도 자신이 제출한 진술서로 답변을 대신했다고 알려졌다. ‘진술 거부’도 권리인 만큼 그게 잘못이라 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처럼 당당히 군사정권보다 더 나쁜 ‘검사 독재정권’이라고 비난했을 양이면 검찰 조사과정에서도 호통을 치며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털어낼 수 없다.


“순리와 진실의 힘을 믿습니다. 주어진 소명을 피하지 않고 무도한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의 폭압에 맞서 당당하게 싸워 이기겠습니다.”

‘입장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국민 또한 ‘순리와 진실의 힘’을 믿고 싶어 한다. 그에 대한 사법처리의 대미(大尾)가 그렇게 장식되기를 소망한다. 그에 대한 수사가 ‘독재정권의 폭압’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범죄행위였는지를 ‘순리와 진실의 힘’은 가려 줄 것이다(재판의 결과 중형을 선고받은 입장이 아니라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면서 ‘독재정권의 폭압’ 운운하는 건 너무 호들갑스럽다).

“민주공화국에선 숫자가 최고”

그는 이날 12시간 30분가량의 조사를 마치고 오후 10시 53분경 검찰 청사를 나와서 취재진에게 소감을 밝혔다.


“윤석열 검사 독재정권의 검찰답게 (검찰이) 수사가 아닌 정치를 하고 있었다.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조사가 아니라 기소를 목표로 조작한다는 느낌이었다.”

검찰이 형을 부과하는 게 아니다. 검찰은 기소만 할 수 있을 뿐 유무죄는 판사가 판단한다. 검찰이 수사가 아닌 정치를 한다는 말은 억지다. 이야말로 정치적 레토릭 아닌가. 검찰이 이 대표를 소환했다는 것은 이미 범죄혐의를 확인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기소를 목표로 하는’ 조사일 수밖에 없다. 결백 입증은 피의자 자신과 변호인의 몫이다. 검찰은 그 반대편에서 이 대표 측과 ‘진실’을 다투게 된다. 재판이야 말로 진실을 찾는 과정이다. 왜 검찰에 그 책임을 묻는가(그는 질문하는 기자들에게 “막지 마세요”라며 불만을 표출했다).


이 대표는 검찰 출석 전날인 27일, 전북 지역에서 이틀째 민생투어를 이어갔다. 이날 그는 군산 공설시장에서 연설을 했다.


“다시 헌정질서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파괴되고, 국민이 주인이 아니라 소수 권력자가 나라의 주인 행세를 하는 비정상적 상태, 독재의 시대가 왔습니다. 방치하면 그들의 세상이 됩니다. 우리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과 그들이 이끌던 정부의 요인들이 줄줄이 부패·비리혐의로 법정에 세워졌고 많은 수가 중형을 선고받았었다. 그게 촛불혁명정부의 적폐청산이라고 했다. 그 직전 정권을 담당했던 세력의 일원으로서 이런 말을 소리 질러 할 수 있다니! 그 심리구조가 신기할 정도다.


기고만장했던 사람들이 사법적 궁지에 몰리자 보이는 행태가 이렇다. 군중을 동원해서 상황을 역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큰 세력을 가졌으니 정권이든 검찰이든 범접할 생각을 말라는 위협이라 할 수 있다. 이게 ‘진보(進步)’로 자처하는 사람들의 법치에 대한 인식이다.


그는 이 연설에서 “1인 1표 민주주의, 민주공화국에선 숫자가 최고 아닌가”라며 “작은 실천을 일상 속에서 해 나가면 거대한 새 역사를 만들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것이 그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다. ‘숫자가 최고’라는 인식 속에 주권자로서의 국민은 없다. 그에겐 동원된 민중만이 의미를 갖는다. 그런 민중이 필요하다고, 주권자인 국민들을 선동한 것이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 말에 환호했다.


“인간에게는 모순을 믿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정치적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대중의 성향에도 이런 측면이 있다. 그들의 스타가 하는 말이나 행동에 모순이 있든 말든 신뢰와 환호는 계속된다. 이런 팔로어들의 행태가 리더의 오만과 무책임성을 부추긴다. 이것이 이 대표에게는 거대한 ‘지지 대중의 성(城)’이다. 장기적인 견고성이 의문스럽긴 하지만….


ⓒ

글/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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