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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저희가 찾아 낼게요" [ASK TO : ]


입력 2022.08.26 18:39 수정 2022.08.26 20:50        송혜림 기자 (shl@dailian.co.kr)


ⓒ 데일리안 ⓒ 데일리안

실제 거북선 모습을 아무도 본 적 없다. 임진왜란 때 원균이 칠천포에서 패전해 거북선 등 98척이 난파된 기록이 나오지만, 그 큰 배를 이뤘던 나무 조각 하나 발견되지 않았다. 흔히 아는 거북선의 모습은 역사 기록물에 묘사된 대로 복원된 것이다 . 수 백 년 간 남해안 저편에 잠들어 있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그 선박의 형체를 찾는 일은 어쩌면 모든 국민의 바램일 것이다.


취재진과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양순석 수중 발굴 조사원 ⓒ데일리안 취재진과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양순석 수중 발굴 조사원 ⓒ데일리안


“제 숨이 붙어 있을 때 거북선을 찾는 게 최종 목표죠.”


거북선 찾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인 남자가 있다. 바로 양순석 수중 발굴 조사원(50)이다. 지난 8월 11일 전남 목포 소재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 지하 회의실. 취재진과 마주 앉은 양 씨에게 거북선에 대해 묻자 이내 허탈감을 드러냈다. 그는 “세월이 흘러 해안선도 다 바뀌고 대형 조선소가 생기며 준설도 일어나 해저 환경 자체가 다 바뀌었다"며 "처음 거북선이 묻혔다고 예상한 곳도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어느덧 20년 경력의 양 씨의 면모엔 그가 쫓아 온 역사 만큼이나 주름이 짙게 파여 있다. 그의 직업은 육상 발굴과 비슷하게 바다에 묻힌 청자나 사기 그릇 등의 유물을 발굴하는 일이다. 거북선처럼 침몰 선박의 흔적을 찾는 일도 그의 업무다. 조사원들은 1년의 절반인 6~7개월 가량은 발굴 작업을 위해 바다에서 생활하며, 발굴 작업을 나가지 않는 동절기에는 논문이나 보고서를 작성한다.


지난 8월 9일 오전 8시경 전북 군산 고군산도 인근 해역에서 수중 문화재 발굴 팀이 발굴 작업 전 양순석 수중 발굴 조사원의 지시를 받고 있는 모습 ⓒ데일리안 지난 8월 9일 오전 8시경 전북 군산 고군산도 인근 해역에서 수중 문화재 발굴 팀이 발굴 작업 전 양순석 수중 발굴 조사원의 지시를 받고 있는 모습 ⓒ데일리안

양 씨와 8 여 명의 해양 발굴 팀원들은 산소 통에 몸을 의지한 채 망망대해로 뛰어 든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국내 유물을 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뭉친 그들. 수중 발굴 팀의 수장인 양 씨의 눈매에서 갯벌 속 거북이 머리가 언뜻 보이는 듯 했다.


█ "1년의 절반은 바다에서"… 수중 발굴 조사원들의 쉴 틈 없는 하루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 소속 수중 발굴 조사원들의 1년은 눈코 뜰 새 없이 흐른다. 양 씨는 "직원 통 틀어 업무 만족도는 50% 이하일 것"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먼저 발굴 해역은 어떻게 지정이 될까. 양 씨는 “사료를 통해 과거 전쟁이 일어난 장소와 배 몇 척이 난파됐는지 학술 조사를 실행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발굴이 진행 중인 군산 고군산도 해역도 1972년 제작된 『고군산진지도』에서 국제 무역 항로의 기항지이자 서해안 연안 항로의 거점이라고 기재된 바 있다.


인근 어민들이 바다에 떠 다니는 유물을 발견해 신고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까지 연구소에 접수된 수중 문화재 발견 신고는 250 여 건. 그러나 대부분 조사원들이 직접 수 개월 간 현장 조사를 거쳐 발굴 해역을 정하게 된다. 유물이 다발로 발견되는 일은 드물다. 양 씨는 “현재까지 접수된 신고 중 80~90%은 조류 등으로 난파선에 적재돼 있던 유물이 흐트러져 한 두 점씩 개별로 발견된 경우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조사원들은 유물을 하나씩 찾아가며 난파선의 흔적을 좇아 가야한다.


전북 군산 고군산도 인근 해역에서 수중 발굴 작업을 위해 한 조사원이 잠수복을 입고 있는 모습 ⓒ데일리안 전북 군산 고군산도 인근 해역에서 수중 발굴 작업을 위해 한 조사원이 잠수복을 입고 있는 모습 ⓒ데일리안
수중 발굴 조사원들이 바다 속으로 다이빙할 때 쓰는 수중 마스크. 해상 팀원들과 소통하기 위한 통신 장비가 부착돼 있다. ⓒ데일리안 수중 발굴 조사원들이 바다 속으로 다이빙할 때 쓰는 수중 마스크. 해상 팀원들과 소통하기 위한 통신 장비가 부착돼 있다. ⓒ데일리안

이들은 주로 바지선(소형 선박)을 타고 다니며 하루 9시간 발굴 작업을 진행한다. 숙박은 주로 발굴 전용 선박인 누리안 호에서 해결한다. 발굴은 먼저 해수면 위에 밧줄로 바둑판 모양의 그리드를 설치하고, 진흙이나 개흙의 침전물을 퍼 올리는 슬러지 펌프를 사용한다. 조사원들은 잠수 헬멧을 쓰고 하루 4~8번 다이빙하며 발굴 작업에 참여한다. 한 해역의 발굴 작업은 주로 5년 이상이며 길면 10년 넘게도 이어진다.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 내 박물관에 비치된 유물들 ⓒ데일리안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 내 박물관에 비치된 유물들 ⓒ데일리안

수많은 유물들의 제작 연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양 씨는 "도자기는 육상에서 발굴한 도자기와 제작 시기를 비교하고, 유기물은 탄소 연대 측정(탄소를 이용해 유물 또는 생물 유해의 연대를 측정하는 방식)을 통해 제작 연대를 추측한다"며 "가장 정확한 방법은 선박에 실린 화물표 역할의 목간(문서나 편지 등의 글을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 또는 대나무 조각에 적은 것)을 통해 발신자나 발신 지역 등을 추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비취색 도자기가 햇빛을 반사하는 순간"… 수 백 년 간 바다에 잠들어 있는 역사의 유물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인 2003년. 군산 십이동 파도 인근 해역. 8천 점이 넘는 청자와 각종 유물들을 실은 고려 선박이 천 년 역사의 침묵을 깨고 모습을 드러냈다. 고 선박은 오랜 세월 무색하게 그 형태를 그대로 보존한 채 수 천 여점의 청자를 적재한 상태로 발견됐다. 국내 수중 고고학의 한 획을 그은 대 발굴이었다.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 내 박물관에 비치된 유물들 ⓒ데일리안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 내 박물관에 비치된 유물들 ⓒ데일리안

양 씨도 그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그는 “갯벌을 들어내는 순간 비취색 도자기들이 햇빛을 통과하며 영롱함을 뽐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며 “일반인들은 주로 박물관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유물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조사원들은 깨끗한 포장 상태의 도자기들을 가장 먼저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양 씨를 20여 년간 가슴 뛰게 하는 건, 여전히 서 남해 아래 묻힌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유물들이다. 그는 “옛날에는 날씨도 예측할 수 없었고 배도 튼튼하지 않았다. 따라서 적어도 당시 수천 척의 해양 사고가 일어 났을 것이며 그 만큼의 난파선도 가라 앉아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표했다.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 내 박물관에 비치된 유물 ⓒ데일리안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 내 박물관에 비치된 유물 ⓒ데일리안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 내 박물관에 비치된 유물들 ⓒ데일리안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 내 박물관에 비치된 유물들 ⓒ데일리안

유물들이 현대에 시사하는 바 역시 값지다. 그는 “수중 유물은 한 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주요 사료다. 예로 진도 명량 해역에서 나왔던 소소승자총통(小小勝字銃筒·1597년 명량 대첩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개인용 소총)의 경우 그 시대 전쟁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물 지정 신청까지 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양 씨는 1991년부터 이뤄진 새만금 간척 사업 덕분에 발굴 작업도 일부 탄력을 받는다는 희소식을 전했다. 그는 “군산 비안도 해역 발굴 당시 물길이 지나는 곳에 물막이 공사가 진행됐다. 그 덕에 해저면이 깎여 8m 아래에 있는 도자기들이 노출이 됐다”며 “현재도 간척 사업으로 설치된 방조제 덕분에 고군산도 해역에도 해저면이 깎이는 곳이 있어 추가 유물들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 그 드넓은 바다를 수중 발굴팀 '13명'이 담당한다니


현재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의 해양 발굴 팀은 총 13여 명이다. 국내 해역 발굴을 전부 담당하기엔 다소 적은 숫자다. 양 씨는 “매년 정부 부처에 증원 요구를 꾸준히 하고 있지만 공무원 조직 특성 상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현장 발굴 시 10명 이상의 조사원들이 필요한 데, 그 수를 채우지 못해 민간 잠수사들을 채용해 업무를 맡기고 있는 실정”이라며 “1년의 절반을 바다에서 보내다 보니 보고서를 작성하는 시간도 촉박하다. 소수 직원이 맡는 업무도 과중돼 개인 연구 활동에도 뒤쳐질 수 밖에 없다”라고 토로했다.


█ 수중 발굴은 '블루 오션'… 그러나 국내선 아쉬운 후학 양성


1976년 전남 신안 해역부터 시작해 2022년 군산 고군산도 해역까지 총 33회 가량의 발굴 조사가 이뤄졌다. 사실 국내 수중 발굴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아 소위 ‘블루 오션’이라고도 불린다. 다만 수중 발굴 분야에 대한 낮은 관심도로 후학 양성은 타 국가에 비해 뒤처지는 실정이다.


수중 발굴 조사원이 되려면 수중 고고학은 물론 육상 고고학도 배워야 한다. 또 잠수 기능사 등 전문 자격증도 취득해야 하며, 수중 3D 실측 장비 등 고도의 수중 기기를 다루는 법도 터득해야 한다. 전문적인 학과 과정이 필요하나 국내에는 아직 수중 고고학과 관련된 학과가 없다.


취재진과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양순석 수중발굴 조사원 ⓒ데일리안 취재진과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양순석 수중발굴 조사원 ⓒ데일리안

양 씨는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 등에서 관련 학과를 전공하고 국내로 넘어 오는 편"이라며 “이 때문에 국립 해양 문화재 연구소에서 직접 교육 훈련 센터를 운영하려 계획 중이다. 이를 통해 많은 전문 인력 등을 배출해내면 더욱 많은 수중 발굴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기대 중"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해양 발굴 4대 험난처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진도 명량 해역, 태안 안흥량, 강화도 손돌목, 그리고 북한에 있는 인당수다. 그 곳에 아직 수 백 년 간 잠들어 있는 대규모 유물들이 있다"면서 "또,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나 판옥선 발굴도 이제 시작 단계다. 그 발굴 과정들을 미래의 후배들과 차근차근 이뤄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혜림 기자 (shl@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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