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마지막도 웃음으로 떠난 만담의 대가 [ASK TO:]


입력 2022.08.11 16:05 수정 2022.08.11 16:06        옥지훈 기자 (ojh34522@dailian.co.kr)

- "코미디 무대가 사라지고 있어... 뿌리부터 살려야 꽃이 핀다"

- "한국 만담은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발탈’에서 이어졌다"

- ‘만담의 대가’ 장소팔 선생 탄생 100주년

- 레이건의 유머, 지지율 상승의 비결


장광팔씨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담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나라가[Naraga] 유튜브 장광팔씨가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담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나라가[Naraga] 유튜브

“젊은 분들은 잘 모르죠? 만담 몇 개 보여드릴까?”


올해 만으로 일흔한 살인 장광팔(본명 장광혁)씨는 ‘만담가’이다. 만담가는 코미디언이 생긴 시초라고도 한다. 외양부터 즐거움이 묻어났다. 고희(古稀)를 넘긴 나이에도 주름이 별로 없다. 하도 웃어서 생긴 웃음 주름만 남았다. 첫 만남에도 금세 긴장이 풀렸다. 장 씨에게 만담 몇 개를 요청했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치켜 세우는 한국 전통 만담. 무대에 울려 퍼진 웃음 수는 점점 불어났다.


“아들아, 내가 왜 죽는 줄 아느냐? 심심해서 죽는다”


아버지 장소팔(본명 장세건)은 만담의 대가이다. 1세대 희극 선구자로 꼽힌다. 1950~60년대 라디오에서 장소팔·고춘자 만담은 유명한 만담 프로그램이였다. ‘최고의 콤비’를 비유할 때 이들을 두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장소팔 선생은 일제강점기 시절, 1922년에 경성부 관훈동 185번지에서 태어났다. 현재는 인사동이 있는 자리이다. ‘장소팔 극장’이 인사동에 위치한 이유다.


■ "재담에서 만담, 만담에서 희극, 희극에서 코미디"


장광팔씨가 장소팔극장 앞에서 만담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 데일리안 장광팔씨가 장소팔극장 앞에서 만담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 데일리안

박춘재는 고종황제 가무별감을 지냈다. 그는 민요재담가로서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재담은 패관문학과 고금소총 설화에서 이어져 왔다. 장소팔은 박춘재에게 사사했다. 박춘재가 만든 재담과 재담설에서 만담이 나왔다.


장 씨는 "재담이 만담으로 되고 만담이 다시 희극으로 되고 희극이 지금의 코미디"라며 ”장르라는 차이가 아닌 시대에 부합한 발전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불출 만담가가 일본 유학을 갔다 와서 일본의 '만자이'(万歲)에서 만담이라는 용어를 쓴 것을 두고 오해라고 일축했다. 장 씨는 "연구를 해온 결과 만자이적 요소도 있지만 주로 라쿠고(落語)에 가까운 재미있는 옛날 우리나라의 서사문학이라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


이어 "만담에 뿌리는 재담이다. 그런데 박춘재 선생은 예전에 '발탈'을 이용해 팔도강산 유람을 다녔다"며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79호로 지정이 되어있는데, 전공자도 잘 모르신다. 우리가 만담을 물으면서 발탈을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만담의 뿌리는 발탈이다"라고 덧붙였다.


발탈은 검은 박스 안에 발을 넣고 연기하는 인형배우와 인간배우가 재담을 나누는 방식이다. 장 씨는 "발탈 공연을 어린이날 가서 어린이들에게 맞게끔 진행했다"며 "앞으로도 이 옛 것을 자주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 "코미디언이 설 자리가 사라지는 건 심각한 현상이죠"


ⓒ 나라가[Naraga] 유튜브 ⓒ 나라가[Naraga] 유튜브

정치판을 보면 코미디 프로가 없어질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SNL' 시리즈에서 대권주자들은 자신을 풍자하는 인터뷰에 참석했다. 정치 풍자로 웃음을 자아냈다. 사실 모두가 풍자에 익숙하다. 장 씨는 "공중파에서 웃음프로가 사라진다는 것을 상당히 심각한 현상으로 본다"며 "일시적인 게 아니고 상당히 심각한데 그것은 어떤 사회현상과도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만담의 가치를 설명할 때 '배려'라고 가장 많이 말했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만담을 '널뛰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장 씨는 "나를 낮추면 상대방이 높이 올라가고 그 사람이 떨어질 때 나는 그 사람보다 더 높이 올라간다"며 "유머도 그러한 형식으로 순환적인 구조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머의 기본을 두고 "사회 풍조가 안티를 만들어서 악플을 달고 깎아내려 자기가 올라가는 것으로 변질됐다"며 "항상 똑똑한 이가 바보를 골탕 먹여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유머의 기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코미디가 그렇다"고 했다.


장소팔·고춘자 콤비를 두고 한국 만담의 다른 점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장소팔이 고춘자만 골려 먹는게 아니라 고춘자도 장소팔을 골려 먹는 대등한 입장"이라며 "누구를 바보 만들고 왕따를 만드는 웃음이 아니라 서로 배려하며 주고 받는 만담이 한국 만담의 가장 우수한 점"이라고 덧붙였다.


■ "사회풍자에 제약... 전통적인 코미디 뿌리부터 살려야"


만담의 기초는 사회 풍자다. 최근 풍자나 해학적인 단어를 사용하면 정치색이나 사람을 단정짓기 쉽다. 한국 만담은 언어유희를 통한 사회 풍자를 풀어내며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에는 배려가 있다. 장 씨와 '제 2의 장소팔·고춘자 콤비'를 같이 이어가고 있는 독고랑(본명 장소미)씨는 연극배우다.


장소미 씨는 "만담을 시작하면서 정극 연기와는 차이가 엄청나다"며 "만담은 즉흥적으로 대화가 주거니 받거니 되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적응하기도 힘들었지만, 점차 중요성을 알아가면서 언어의 유희나 서사적인 문학적인 어떤 많은 것들에 폭이 연극과는 개념이 완전 틀리다"며 "언젠가는 다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레트로'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항상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며 "지금 더욱 더 많이 알려져서 우리 문화의 뿌리를 젊은 세대에 알려주고 남기고 싶다"고 덧붙였다.


■ 레이건의 유머 "여보, 내가 영화배우 시절에는 피했는데"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부인 낸시 여사가 지난 1986년 12월 반려견 렉스와 함께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밭을 걸어가고 있다. ⓒ AP/뉴시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부인 낸시 여사가 지난 1986년 12월 반려견 렉스와 함께 워싱턴 백악관 남쪽 잔디밭을 걸어가고 있다. ⓒ AP/뉴시스

"여보, 총알이 날아왔을 때 영화처럼 피하는 걸 깜빡 잊었어"


1981년 3월 30일.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저격 당했다. 응급실에 내원한 사이 영부인 낸시 여사가 나타나자 이같이 말했다. 응급실에서 던진 유머다. 이 유머가 알려진 이후 레이건 지지율은 80%까지 치솟았다. 장 씨는 유머의 중요성을 두고 레이건 일화를 얘기했다.


그는 "사실 이 유머가 대통령이 극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유머 담당관이 따로 있어서 여론을 의식한 유머를 적어준다"며 "유머가 사회를 결국 여유롭게 만들고 국민을 안심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풍자에 인색해 너무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이어 "웃음의 소재가 되는 대상을 조금 풍자하면 비난하는 세상이 됐다"며 "앞으로는 서로가 좀 양해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회가 이제는 되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 데일리안 ⓒ 데일리안

옥지훈 기자 (ojh34522@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옥지훈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