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페이스북
X
카카오톡
주소복사

[조남대의 은퇴일기①] 독방으로부터 탈출


입력 2022.06.07 14:02 수정 2022.06.07 15:50        데스크 (desk@dailian.co.kr)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라고 한 말은 혼자가 아닌 함께 어울려 사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 감염으로 외부와 단절된 채로 독방에 갇혀 지내다 보니 바로 눈앞에 보이는 산이 유혹하지만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아내가 문만 살짝 열고 밀어 넣어준 식사ⓒ 아내가 문만 살짝 열고 밀어 넣어준 식사ⓒ

직장 다니는 딸이 코로나19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다음 하루 이틀 지나자 손녀에 이어 사위와 손자까지 온 식구가 감염되었다. 수시로 왔다 갔다 하며 손주들을 돌봐주고 있던 터라 증상은 없지만, 혹시나 하여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이라고 한다. 하루 30만 명 이상 발생하는 코로나19 환자 중의 한 명이 된 것이다. 그래도 아내는 음성이라 천만다행이다.


자연스럽게 아내는 안방과 거실을 차지하고 나는 서재와 문간방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바깥으로 나갈 수 없으니 그동안 밀렸던 원고를 정리하고 책도 읽으며 보내자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하기까지 했다. 아무런 증상이 없는 데다 몸이 불편하지 않아 당연히 약도 먹지 않았다. 검사 결과가 잘못되거나 다른 사람과 바뀐 것은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담당 병원에서 간호사나 의사가 하루에 한 번 전화 와서 "특별한 증상이 없느냐?" 묻고는 "흉통이나 호흡곤란 증상이 있으면 즉시 응급지원센터에 연락하라"고 하니 은근히 겁이 났다. 또한, 60대의 치명률이 30~40대보다 두 배가 넘는다는 기사를 보자 내가 60이 넘었다는 것이 새삼 인식되면서 약간의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아내는 끼니때마다 정성스럽게 식사를 챙겨 문만 빼꼼히 열고 밀어 넣고는 얼른 닫는다. 할 말이 있으면 거실과 서재에 있으면서도 전화로 통화를 한다.


평소에는 아파트 창문을 통해 보이는 산도 무심히 지나쳤는데 나갈 수 없다고 하자 더 가보고 싶어진다. 마스크 끼고 혼자 다녀와도 될 것 같은데 아내는 엘리베이터 타고 가면 전염이 될 수 있다며 한사코 말린다. 방에서 혼자 지내면 참 좋을 것 같았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몸이 찌뿌둥해 지면서 상큼한 바람이 코끝을 자극하자 갑갑함이 몸속으로 파고든다.


정치인들이 몇 년 동안 감옥에 있으면서 공부하고 책도 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대중과 박근혜 대통령은 오랫동안 교도소 독방에서 지내며 '김대중 옥중서신'과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특히 김 대통령은 "감옥에서 양서를 읽을 때마다 '내가 여기 오지 않았더라면 이 진리를 알 수 없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하며 감격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외부와 차단된 독방에서 책을 읽고 글도 쓸 수 있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몇 년 전에는 잘 아는 분이 정치적인 사건으로 교도소에 갇혀 있어 친구 몇 명과 면회 간 적이 있었다. 잘 지낸다고 하지만 쓸쓸한 그림자가 얼굴에 가득했다. "지내기가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이제 시간이 지나 적응이 된 데다 교도소 측에서도 대우를 잘 해주어 책도 읽으면서 지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잡범들과 섞여 있지 않고 혼자 있으니 지낼만한 모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세상의 복잡한 일을 잊은 채 책 읽고 글 쓰며 지내면 지식도 함양하고 정신 수양도 될 것 같았다.


지리산 계곡을 3~4시간 걸어 올라간 깊은 산속 스님 혼자 기거하는 암자에 행자로 지내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 풀벌레 지저귀는 소리 들으면서 책 읽고 글 쓰고 지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 그려 보기도 했다


창밖으로 보이던 관악산 정상의 연주대는 비 그친 뒤라 자욱한 안개에 갇혔다. 날씨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가슴이 답답하고 울렁거려 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갔다. 심호흡한 다음 물 한 모금을 들이키자 조금 진정 된다. 시끄럽게 들리던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오늘따라 정겹고 반갑기까지 하다. 찡그려져 있던 얼굴이 환하게 펴진다.


겨우내 앙상하던 가지에 연녹색 새순의 움트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가끔 날아다니는 새들의 자유로운 비행이 오늘따라 눈에 확 들어온다. 오솔길을 산책하는 사람들의 걸음걸이에는 활력이 넘쳐 있고,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머금은 것처럼 보인다.


아파트에서 바라본 뒷산과 멀리 보이는 관악산 풍경ⓒ 아파트에서 바라본 뒷산과 멀리 보이는 관악산 풍경ⓒ

갑자기 오래전에 보았던 영화 '빠삐용'이 생각난다. 푸른 바다를 보며 자유를 갈망하던 빠삐용은 악명 높은 감옥섬의 까마득한 절벽에서 파도의 방향을 연구한 다음 상어가 우글거리는 바다에 뛰어든다. 코코넛 주머니로 만든 뗏목을 타고 천신만고 끝에 탈출한다. 주인공인 스티브 맥킨은 뗏목 위에서 "이 자식들아, 나 여깄다"라고 소리 지른다. 감옥섬을 벗어난 기쁨 심정을 발산한 것이리라.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교도소의 독방을 그리워하고 지리산 골짜기의 암자 생활을 동경했던 것은 단지 가진 자의 꿈이고, 자유인이 행복에 겨워 생각해 본 허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수시로 창문을 열고 바깥을 쳐다보며 시원한 공기를 쐐 보지만 성에 차지 않는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5일째 아침에는 마스크를 끼고 19층에서 계단을 통해 살금살금 내려가 아파트 뒷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오는 사이 아무도 안 만났으니 괜찮겠지?', '사방이 확 트인 산인데 전염 우려도 없잖아'라고 자위하며 심호흡을 해 본다. 폐부로 들어가는 공기의 상쾌함이 느껴지면서 이제는 살 것 같아진다. 비록 참나무, 소나무와 아카시아밖에 없지만, 나무들과 함께 있어도 좋기만 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이웃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 보다. 하루만 더 지나면 마음대로 나다닐 수 있는 자유의 몸이 될 터인데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빠삐용이 죽음을 무릅쓰고 악마의 섬을 탈출했듯이 나도 독방에서 뛰쳐나왔다. 주거지를 벗어난 책임과 비난이 따를지라도 감내하려고 한다.


ⓒ

조남대 작가 ndcho55@naver.com

'조남대의 은퇴일기'를 네이버에서 지금 바로 구독해보세요!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