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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피크제 첫 위법 판단…줄소송 이어지고, 기업은 혼란 속으로


입력 2022.05.28 07:14 수정 2022.05.28 20:30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대법원 "나이만 기준으로 임금 삭감하는 것은 합리적 이유에 해당 안 돼 무효"

노동계 "대법 판결 환영, 폐지 수순으로 가야…정년유지형 판례, 영향 제한적"

향후 임금피크제 개별 사례 관련 법원 판단…'업무량·강도의 저감 여부' 쟁점될 듯

경영계 "인력 경직성 심화로 기업 경영부담 가중…고용부, 가이드라인 빨리 줘야"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시민들이 출근길에 나서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서울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시민들이 출근길에 나서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나이만을 이유로 직원의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인 만큼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이 정당한 임금피크제의 기준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대법원은 "다른 기업이 시행 중인 임금피크제 효력은 사안별로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합리적인 이유'만 있다면 임금피크제 운용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합리적인 이유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정당성과 필요성,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 감소 여부 등을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아울러 ▲실질적 임금 삭감의 폭이나 기간, ▲임금피크제를 통해 감액된 재원이 제도 도입 당시 노사가 합의한 목적을 위해 사용됐는지 여부 등도 고려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하며 이제 임금피크제를 아예 폐지하는 수순으로 가야하고, 앞으로의 판단은 업무강도 저감 등이 있었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대법원의 판결은 당연한 결과로 적극 환영하고, 지금 같은 방식의 임금피크제가 지속돼서는 안 된다"강조하고 "이번 판결을 계기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깍는 현장의 부당한 임금피크제가 폐지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대법원.ⓒ데일리안 DB. 대법원.ⓒ데일리안 DB.

노동계 전문가들은, 이번 판례가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번 판결 속 사례에서 근로자에게 적용된 임금피크제는 정년유지형으로, 이 근로자가 임금피크제 적용 이전에 해오던 일을 그대로 하면서도 임금이 깎인 것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은 퇴직을 앞둔 근로자들의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임금도 삭감해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인 정년연장형을 채택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건의 임금피크제는 정년유지형이라는 특별한 사례에 대해 판단을 내린 것이어서 법정 정년 이후에 정년 연장형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기관이나 기업의 경우에는 그 영향이 상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며 "문제가 된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 도입 사업장의 경우에는 대법원 기준에 맞춰 재설계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 업무량이 동일한데 임금만 삭감하는 방식은 차별로 판단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임금피크제 개별 사례와 관련한 법원의 판단은 임금 삭감에 준하는 업무량과 강도의 저감(低減) 여부 등이 있었는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정년 전에 간접적인 구조조정 수단으로 임금피크제를 활용하는 방식이었는지 여부가 포인트가 될 것"이라며 "강제적이고 일률적으로 인력 절감만을 꾀하는, 노동을 경시하는 풍조가 바뀌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재계에서는 무엇보다 기업 혼란이 우려된다며 임금피크제를 채택한 기업과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줄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경련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산업현장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줄소송 사태와 인력 경직성 심화로 기업의 경영 부담이 가중되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총경영자협회 관계자는 "이번 판례가 정년유지형이기는 하지만, 임금피크제와 관련한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판례가 하나 쌓인 것"이라며 "이후 퇴직한 직원들도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을 걸 가능성이 있고,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본 판결로 인해 임금 체계를 다시 짜야 하는 기업이 있을 수 있으니 주무 부처에서 판단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빨리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설명자료를 내고 "다른 기업에서 시행하는 임금피크제 효력은 판단기준 충족 여부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다"며 "임금피크제가 모두 무효는 아니다. 관련 판례 분석, 전문가 및 노사의 의견 수렴을 거쳐 현장에 혼란이 없도록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건강보험공단 등의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는 유효하다는 판례가 이미 나와 있다"고 전했다.

김하나 기자 (hanaki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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