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경기서 ‘인천시민 폄훼’ 현수막 걸려
포항 구단의 ‘광주 비하’, 유럽서는 전범 옹호
K리그 경기서 특정 지역을 비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논란이 커지고 있다. ⓒ 쿠팡플레이 중계화면 캡처
건전한 경쟁과 열정의 장이어야 할 프로스포츠 경기장이 일부 팬들의 몰상식한 ‘지역 비하’와 ‘혐오 표출’로 얼룩지고 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박찬대 구단주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스포츠의 본질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지역 비하 행위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해당 현수막은 축구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도를 넘어 팬들과 인천시민 전체를 모욕한 명백한 범죄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열정적인 응원은 권장되어야 하지만, 최소한의 존중과 윤리가 결여된 응원은 결코 응원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면서 "재발 방지와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처벌이 이뤄질 때까지 단호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성토했다.
이번 파문은 지난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FC서울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도중 발생했다. 서울 원정 응원석에 내걸린 걸개에는 ‘전달水 + 조건盜 = 人賤 UTD’라는 충격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고, 이 장면은 중계방송을 타고 생중계됐다.
인천의 올바른 한자 표기인 ‘어질 인(仁), 내 천(川)’ 대신 ‘사람 인(人), 천할 천(賤)’을 의도적으로 사용해 인천 시민 전체를 ‘천한 사람’으로 폄훼한 것은 물론, 전달수와 조건도 등 인천 유나이티드의 전·현직 대표이사 이름에 프레임을 씌워 특정 개인의 명예까지 심각하게 훼손했다.
인천 구단 역시 7일 공식 성명서를 내고 "이번 행위는 응원 문화의 범주를 명확히 벗어난 모욕"이라며 "관련 자료와 현장 중계 화면을 면밀히 분석 중이며, 행위자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및 모욕죄에 따른 민·형사상 법적 책임을 엄중히 묻겠다"고 예고했다.
스포츠 무대를 더럽히는 지역 비하와 차별적 언행은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3월에는 광주 원정길에 오른 포항 스틸러스 서포터즈 '울트라스 레반테'가 소셜미디어(SNS)에 광주를 '해외'에 비유하며 "해외 원정 출발", "해외 입국 심사 통과" 등의 게시물을 올려 호남 지역을 폄훼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였다. 논란이 일자 포항 구단 단장과 서포터즈가 공식 사과했으나, 광주 FC와 광주광역시는 해당 응원단원에 대해 광주 경기장 영구 출입 금지라는 강경 조치를 내렸다.
학교 스포츠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6월 제81회 청룡기 고교야구 대회에서는 배재고 응원단이 광주일고와의 경기 도중 5·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구호를 단체로 외치는 몰상식한 행동으로 중징계를 받으며 사회적 공분을 샀다.
세르비아 FK 츠르베나 즈베즈다의 팬들은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는 전범 라트코 믈라디치를 칭송하는 대형 걸개를 걸었다. ⓒ REUTERS=연합뉴스
유럽 축구 무대 역시 서포터즈의 그릇된 정치적·인종적 폭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세르비아 명문 FK 츠르베나 즈베즈다는 최근 UEFA 유로파리그 경기에서 일부 팬들이 '발칸의 도살자'로 불리는 전범 라트코 믈라디치를 칭송하는 대형 걸개를 걸고 연호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믈라디치는 1995년 보스니아 전쟁 당시 이슬람교도 8000여 명을 학살한 범죄자다. 이에 유럽축구연맹(UEFA)은 인종차별 및 차별적 행위 규정을 적용해 즈베즈다 구단에 대한 중징계 착수에 나섰다.
스포츠에서 라이벌 구도는 경기의 몰입도를 높이고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핵심 요소다. 그러나 라이벌 관계를 핑계 삼아 특정 지역과 시민을 폄하하고, 역사적 비극을 희화화하며, 범죄자를 칭송하는 행위는 스포츠의 가치를 근본부터 흔드는 부끄러운 행위일 뿐이다.
이번 사안을 계기로 경기장 응원문화에 대한 보다 분명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 라이벌을 향한 도발은 경기장 안에서의 승부로만 끝나야 한다. 지역과 시민,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까지 응원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지역 비하와 혐오 표현이 ‘재미’로 포장된다면 수위는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구단과 연맹 등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선을 넘은 행위에 대해서는 그에 걸맞은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팬들이 사랑하는 스포츠를 건강하게 지키는 장치일 것이다. 선을 넘은 혐오에 온정주의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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