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9440억 현금 마련 어떻게…담보대출이냐 실트론이냐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7.24 16:23  수정 2026.07.24 17:37

SK㈜ 지분 약 21% 이미 담보 제공…실트론 협상도 장기화

지분 직접 이동 없어…재상고 땐 지연손해금 발생도 늦춰져

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지난달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재산 분할 파기환송심 2차 조정 기일에 출석하고 있다.ⓒ뉴시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9년을 끈 '세기의 이혼' 소송에서 SK㈜ 지분 이전은 피했다. 24일 파기환송심에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정작 논란의 핵심이었던 SK㈜ 주식은 한 주도 넘기지 않아도 된다.


서울고법 가사1부(부장판사 이상주)는 이날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분할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9440억원과 지연이자(연 5%)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등을 분할대상재산으로 인정하면서도, 정작 그 주식은 노 관장에게 넘기지 않는 길을 택했다. 노 관장 몫에서 부족한 부분을 현금으로 메우는 '대상분할' 방식이다. 재판부는 최 회장 보유 주식이 경영권과 지배권의 근거라는 점을 고려해 대상분할 방식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지난해 대법원 파기환송 취지를 상당 부분 반영했다.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 측의 300억원 지원금을 최 회장 보유 주식의 형성이나 가치 유지에 대한 노 관장의 기여로도, 재산분할 비율 산정에서도 참작하지 않았다. 최 회장이 혼인관계 파탄 이전 경영권 유지와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증여한 주식 등도 분할대상재산에서 제외했다.


반면 SK㈜ 주식 자체가 공동재산이라는 큰 틀은 흔들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혼인 기간 중 최 회장의 경영활동으로 주식 가치가 크게 상승했고 노 관장의 가사와 자녀 양육, SK그룹 관련 대외활동도 그 가치 유지와 증가에 기여했다고 봤다. 최 회장 측이 9년 내내 주장해온 '특유재산'론은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숫자를 가른 건 시점이었다. 재판부는 주식 가치 산정 기준을 환송 후가 아닌 환송 전 항소심 변론종결일(2024년 4월16일)로 정했다. 그 이후 5배 넘게 뛴 주가 상승분은 '가액'에는 반영되지 않았다. 다만 재판부는 그 상승분을 아예 무시하지는 않았다. '부부공동재산의 공평한 분배를 위해' 주가 상승 사정을 재산분할 '비율'을 정하는 데 고려했다고 밝혔다. 낮은 시점의 가액에 조정된 비율을 곱해 최종 금액을 산정한 셈이다. 그 결과 재산분할금은 2심(1조3808억원)보다 약 4368억원(32%) 줄었지만 여전히 국내 이혼소송 사상 최대 규모다.


최 회장 측 법률대리인은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고 "약 20년에 가까운 혼인 해소 과정에서 작년 대법원 판결로 이혼이 확정됐고 오늘 재산분할의 파기환송심 판결이 있었다"며 "최태원 회장은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판결에 대한 구체적 입장은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말씀드리겠다"며 재상고 여부는 유보했다. 노 관장 측은 이날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재상고 여부를 저울질할 때는 지연이자 구조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에 따르면 연 5% 지연손해금은 선고일이 아니라 '판결 확정일 다음 날'부터 붙는다. 재상고가 이뤄질 경우 판결 확정이 늦어지는 만큼 지연손해금이 발생하는 시점도 뒤로 밀려, 최 회장 측에 자금 운용 측면의 여유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는 재상고를 결정짓는 여러 변수 중 하나일 뿐, 판결 자체를 다툴 실익이 있는지가 우선 판단 대상이 될 전망이다.


최태원(왼쪽사진) SK그룹 회장이 지난달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최태원-노소영 이혼 소송 항소심 2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변론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뉴시스

싸움의 무게중심은 이제 법정에서 최 회장의 금고로 옮겨간다. 판결이 지분 이전을 강제하지 않은 만큼 SK㈜ 지배구조에 당장 흠집은 나지 않았지만, 9440억원과 이자를 실제로 마련해야 하는 숙제는 고스란히 남았다. 업계에서는 최 회장이 지급 능력 자체보다는 '어떤 자산을 먼저 현금화할 것인가'라는 방식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건 SK㈜ 지분을 담보로 한 대출이다. 지분을 팔지 않고도 현금을 조달할 수 있어 경영권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최 회장은 보유 SK㈜ 주식의 약 21%를 이미 담보·질권으로 제공하고 있다. 지난 5월19일 제출된 대량보유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최 회장은 한국증권금융에 118만4616주(대출액 4000억원), 하나은행에 34만276주(대출액 365억원)를 각각 담보·질권으로 제공했다. 이 밖에도 두 건의 질권설정(합계 120만4063주, 대출금액 비공개)이 더 있어, 담보 제공된 주식은 총 272만8955주에 이른다. 공시에 기재된 대출만 합쳐도 4365억원이다. 추가 차입이 이뤄질 경우 개인 차입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배당만으로 충당하기도 쉽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SK㈜의 연간 배당 규모를 감안하면 최 회장 지분(17.9%)에 따른 배당수입만으로 9440억원을 모으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변수는 SK실트론이다. SK㈜는 지난해 12월17일 SK실트론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두산을 선정했다고 공시했다. 협상은 당초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AI 반도체 호황 등을 반영해 SK실트론 기업가치가 매각 논의 초기보다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오는데, 이런 시각차가 협상 지연의 배경으로 꼽힌다. SK그룹 내부적으로 매각 자체를 재검토하는 기류도 감지됐다. 다만 최 회장이 총수익스와프(TRS) 형태로 보유한 개인 지분 약 29.4%까지 이번 매각과 함께 정리될지는 불투명하다. 일각에서는 SK㈜와 두산 간 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오히려 최 회장 개인 지분까지 매각될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도 있다.


SK㈜ 지분 직접 매각도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대규모 물량이 시장에 나올 경우 주가에 부담을 줄 수 있고 양도소득세도 발생해 지배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한계가 있다. 결국 재상고 여부와 별개로 시장의 관심은 최 회장이 어떤 방식으로 9440억원을 조달할지에 쏠릴 전망이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