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보다 더 힘센 이재명에게 박수를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6.10 07:00  수정 2026.06.10 07:19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재판에 앞서 조작기소 여부를 밝혀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와 관련 “법과 상식대로 하면 된다”며 “잘못됐으면 취소하고, 잘못 안 됐으면 놔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듯한 말이다. 그런데 옳은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최소한 진상 규명은 해야 되겠다.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들이 꽤 많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법원의 판단을 받아보라는 것이 대한민국 법제가 정한 적법하고 합리적인 절차다. 그런데 그는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선 충격 받고 공소취소 더 급해졌나


이 대통령은 지방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던 지난 4월 30일 민주당이 발의한 조작기소 특검법안에 대해 “공감대는 형성이 되었으나 추진 시기나 절차에 대해 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밝혔다. ‘윤석열 정권 검찰청, 국가정보원, 감사원 등의 조작수사·조작기소 등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라는 길고 긴 제목을 가진 이 법안의 핵심은 이 대통령에 대한 공소를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이 특검에 부여된다는 사실이다.


이 대통령이 ‘숙의’를 당부한 까닭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다. 6․3지방선거가 목전에 이른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5월 중에 이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이 대통령도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맞장구쳤다. 다만 어떤 사람들끼리의 공감대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어쨌든 지방선거가 끝나면 특검법 국회 통과는 민주당의 제 1과제가 될 것이었다.


선거를 넘기고 처리하라는 뜻의 사인을 준 것은 ‘공소취소’가 민의에 반하는 것임을 확인했거나 적어도 감지는 했기 때문이었을 터이다. 그렇다면 포기하는 게 옳다. 그런데도 선거 끝나고 적절한 시점에 당정 간 논의를 거쳐 입법절차를 마무리 짓고 특검 수사가 시작되도록 하라고 독려하듯 했다. 민심에 대한 속임수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 화법 아닌가.


지방선거에서 이른바 명픽(pick)들이 거뜬히 당선됐다면 이 대통령은 여유를 부렸을 수 있다. “뭐가 그리 급해, 천천히 논의해서 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눈에 띄게 이 대통령의 신뢰 혹은 총애를 받는 것으로 여겨졌던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 하정우 부산북구갑 보궐선거 후보, 김용남 평택시을 보궐선거 후보 등이 줄줄이 낙선했다. 이들의 패배가 이 대통령의 뻗쳐 오르던 기세에 제동 역할을 했을 수 있다. 민심이 마냥 자신을 추종한다는 믿음에 심각한 균열이 생긴 셈이 된 것이다.


시간을 지체하면 공소 취소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음직하다. 이 대통령과 같은 탁월한 전략가가 아니라 이 일개 범부의 짐작으로는 그랬으리라는 얘기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불리해질 것으로 예견된다면 서두르는 수밖에 없다. 그런 판단으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그 속내를 드러낸 것 아닌가 생각된다.


권력자의 사법방패 특검도 있다네요


이미 법원의 판단에 넘겨진 8개 사건, 12개 혐의, 5개 재판을 대통령 자신이 임명하는 특검으로 하여금 공소를 취소케 하자는 이 기발한 착상을 누가 한 것인지 정말이지 놀랍다. 그런 궁리를 할 수 있었던 기발한 아이디어도 그렇지만 법도 도덕도 사회적 관례와 평판도 아랑곳 않고 오직 직진만 한 그 아이디어맨의 충성심 얼마나 대단한가! 재판소원제(사실상의 재판 4심제)까지 신설해 놓고도 그 이전에 재판 자체를 막는 방안을 강구한 세심함은 또 어떤가.


‘국민주권정부’가 하늘처럼 모신다는 ‘국민’은 특검수사라는 것을 잘못 인식해 왔던 듯하다. 그러니까 국민은, 정부기관인 검찰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권력형 비리, 권력자의 범죄를 국회 입법을 통해, 국회의 추천으로 선임되는 특별검사에 맡기는 방식의 수사라고 알아왔다. 그런데 이재명 정권에서는 여당이 만든 법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별검사가 전 정부의 대통령 부부와 당정 요인들을 수사해서 중형을 구형하게 하는 제도로 바뀌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적 특검제도’다.


거기까지만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특검제도의 역설이라고 하겠는데 이제는 더 나아가 현직 대통령의 혐의를 지워버리고 기소한 검사들에게 조작기소의 책임을 묻는 특검수사를 시도하는 데까지 갔다. 이 대통령은 “객관적으로 문제 있어 보이는 부분이 꽤 많아 보인다”고 했다. 누구의 눈에 보인다는 것인가? 대통령의 눈에 그렇게 보인다고 그게 ‘객관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피고인 이재명’의 눈에 보이는 것은 그의 ‘주관적 억울함’이기 십상이다. 그 억울함이 객관적인 판단이 되기 위해서는 재판 과정을 통해 입증돼야 한다. 정말 자신은 결백한데 정치검찰이 혐의를 조작해서 기소한 것이라면 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게 상식 아닌가?


그런데 이 대통령은 법원 앞에 특검사무소를 설치하게하고 자신에 대한 기소장을 휴지로 만드는 작업을 그곳에 맡기자고 한다. 적어도 자신의 혐의에 관한한 기소는 조작된 것이므로 기소장을 휴지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민주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직을 맡았다면 누구보다 법치질서를 존중하고 준수해야 할 텐데 그는 아니다. 권력으로 그 체계를 무너뜨리려고 한다.


차라리 자신만을 위한 특별법을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기어이 법제를 비틀어야 하겠단다. 사법적 족쇄를, 표 나는 변칙이나 편법으로 풀어 구설에 오르고, 훗날 책임 추궁을 당하는 상황과 맞닥뜨리기가 싫은 걸까? 그래서 그럴듯한 우회로를 모색한 인상인데 내 눈을 가리면 세상 사람들도 못 본다고 여기는 듯해서 실소하게 된다. 쫓기던 닭이 볏단 속에 머리만 처박고 있는 것처럼―.


윤석열 정치검찰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 발의하는 민주당.ⓒ뉴시스(공동취재)
대통령의 형사사법권 독점시대 여나


권력자나 권력기관의 범죄에 대해서도 끝까지 추적해 법의 준엄함을 확인시킨다는 취지로 도입된 특검제도가 어떻게 권력자의 도구(때로는 창, 때로는 방패)로 변질될 수 있었는지 생각할수록 황당하다. 그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알고 싶다. 요즘 인공지능(AI)이 만물박사 역할을 해 준다니 혹 거기서 힌트를 얻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AI가 아직은 모범답안을 내놓는데 더 익숙한 수준이어서, ‘권력자의 특검 거느리기’ 같은 아이러니한 발상까지 제안할 것 같지는 않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법제적 전통과 규범․관례의 한 부분을 절단해 버리거나 뒤틀어버리면 그 후에 어떤 상황과 변화가 초래될지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조작기소 특검법’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형사사법권의 대통령 독점제도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대에도 형식상으로는 권력분립체계가 작동했었다. 지금처럼 대통령이 사법권까지 장악하고 행사할 수 있는 법제와 상황은 듣고 보느니 처음이다. 특검을 통해 기소자체를 취소함으로써 법원의 재판 기회를 봉쇄해 버리는 경우를 어떻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민주당은 그 잘하는 입법을 통해 이 대통령에게 형사면책특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 소동을 마무리 짓는 게 어떻겠는가? 아니면 다른 모든 형사 피고인들도 다 들고 일어나 공소취소를 요구할 텐데 그 때마다 ‘조작기소 특검법’을 만들어 줄 것인가? 특권법을 만들었다가 민심을 잃으면 어떻게 하느냐 해서 특검이라는 우회로를 만들어 눈속임을 하자는 것이라면 그것보다 더 어리석은 꾀는 없다. 국민은 선전선동에 좌지우지되는 존재가 아니다.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자신들의 머리로 생각하며 자신들의 의지로 행동한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재명 정권식으로 특검법을 만들어 운용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중요한 사실은 독선․독단적 리더십으로 유명한 트럼프도 ‘권력자를 위한 특검’ 같은 것은 생각조차 한 흔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 자신 과거에 특검 수사의 대상이 된 적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혐의를 지우기 위해 특검 카드를 꺼낸 적은 없었다. 트럼프보다 더 강력한 힘을 과시하는 이 대통령에게 박수라도 보내야 할까?

글/ 이진곤 언론인·전 국민일보 주필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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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10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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