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출범한 우주항공청
고위직 9명 가운데 4명 조직 떠나
연구기관 vs 정부조직 정체성 충돌
경남 사천이라는 지역적 한계도 과제
누리호 4차 발사 모습. ⓒ우주항공청
이재명 정부 출범 1년을 맞은 가운데 우주산업 컨트롤타워인 우주항공청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우주항공 5대 강국’을 내세우며 우주 예산을 사상 처음 1조원대로 확대했지만, 정작 내부에서는 고위직들의 연쇄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우주항공청 내 서열 2위인 노경원 우주항공청 차장이 조직을 떠나기로 했다. 노 차장은 최근 경상국립대학교 항공우주공학부 교수로 최종 합격한 상태다. 노 차장은 대학 학사 일정에 따라 2학기 개강 전 우주청을 떠날 것으로 보인다.
노 차장에 이어 이재형 우주항공청 기획조정관(국장)도 지난 21일 자로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사조정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국장은 우주항공청을 만들 당시 설립추진단장을 맡은 인물이다.
지난 1월에는 김현대 항공혁신 부문장이 사직했다. 김 전 부문장은 미국항공우주국(NASA) 출신이다. 미국 시민권자로 조지아공대 항공우주공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2022년까지는 NASA에서 일했다. 김 부문장은 임명 당시 존 리 전(前) 우주항공임무본부장에 이어 두 번째 NASA 출신으로 주목을 받았다.
우주청 인력 이탈 신호탄은 존 리 전 우주항공임무본부장이 쐈다. 존 리 전 부문장은 지난해 10월 임기 절반을 남기고 돌연 사퇴했다. 존 리 전 본부장은 김현대 전 부문장과 마찬가지로 NASA에서 29년간 근무하며 고위 임원을 지냈다. 우주청 설립 때부터 차장과 함께 우주청 서열 2위 자리인 본부장을 맡아 한국 우주산업을 진두지휘해 왔다.
결과적으로 지난 1년 사이 우주항공청은 서열 2~3위 자리 고위직 9명 가운데 4명이 자리를 떠났다. 서열 2위 차장·임무본부장에 이어 기획조정관과 항공혁신 부문장마저 하차하면서 조직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들의 사직 이유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우주청 개청 당시부터 지적돼 온 ‘정체성’ 문제와 경남 사천에 위치하는 지리적 한계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주청은 개청 당시부터 정체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전문가 조직과 관료 조직 사이의 애매한 성격 때문이다.
우주청은 개청 당시 과학자와 기술자 중심 전문 기관을 지향했다. 동시에 중앙행정기관이라는 공무원 조직의 기능도 맡았다. 이 때문에 개청 초기부터 연구자 문화와 관료 문화가 충돌할 것이라는 우려가 컸다. 국내 최고급 인재를 공무원 체계 안으로 끌어올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왔다.
오태석 우주항공청장이 지난 4월 서울 종로구 한 식당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기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우주항공청
오태석 청장, 해법으로 ‘조직개편’ 꺼내
독립 중앙행정기관이지만 실제 사업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등 기존 출연연구기관 중심으로 돌아가는 점도 조직 정체성을 흐리게 했다. 우주청이 정책기관인지, R&D 총괄기관인지, 산업 육성기관인지 역할이 모호하다는 평가다.
생활 불편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바로 정주 여건 문제다. 사천에 위치한 우주청은 대전 연구단지와 멀고 수도권 접근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개청 이전부터 국제 협력과 인재 유치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실제 우주청 주관 회의나 행사 상당수가 대전 또는 서울에서 열리는 게 현실이다.
무엇보다 교육이나 생활 여건이 직원들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병원과 학교, 문화시설, 교통 등이 열악하다. 2년간의 정착지원도 곧 끝난다.
이런 상황은 새 정부 들어서면서 더욱 복잡해졌다. 이재명 정부는 ‘성과 중심 실용 노선’을 강조하며 우주산업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우주개발 사업은 본질적으로 장기 프로젝트라는 점이다. 누리호 고도화, 재사용 발사체, 달 탐사, 저궤도 위성망 구축 등은 최소 수년에서 수십 년 단위 안정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주청은 핵심 인력이 잇따라 빠져나가며 정책 연속성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실제 우주청 내부에서는 지금도 임무본부장 공백으로 일부 사업 결재와 의사결정이 지연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제 핵심은 단순한 인사 이탈이 아니다. 우주청이 출범 당시 내세운 ‘민간 전문가 중심 혁신 조직’ 구축이 현실적으로 작동 가능한 구조인지 시험대에 오른 상태다. 예산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직 안정성과 사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부임한 오태석 우주항공청장은 지난 4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조직개편을 강조했다. 오 청장은 ‘조직 효율화’를 통해 설립 취지는 살리되, 조직을 더욱 유기적으로 재정비하겠다고 했다.
당시 오 청장은 “차장 조직과 임무본부 간 협업이 안 되고 단절돼 있다는 얘기가 많다”며 “원팀으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조직을 어떻게 개편해야 할지 디테일하게 따져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주청 안팎에 따르면 조직개편 방안은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르면 3분기 안으로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오태석표’ 조직개편안이 우주청이 가진 전반의 문제를 얼마나 개선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한편, 이런 지적에 우주청 관계자는 “개청 당시부터 우주항공청과 그 소속기관 직제, 우주항공청법에 의해 역할과 직무가 규정돼 있었고, 사천에서 근무하게 되는 것을 모두 알고 왔다”고 설명했다.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우주청은 정책과 R&D, 산업 육성을 모두 담당하는 기관”이라며 “이는 우주항공청법에 적시돼 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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