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뉴시스
정치는 말로 시작해 말로 귀결된다. 제도와 정책도 결국 언어를 통해 설명되고 설득된다. 그래서 한 사회의 정치 수준은 그 정치가 어떤 말을 쓰느냐로 가늠되곤 한다. 말은 글보다 즉각적이고 감정의 온도가 높다. 특히 최고 권력자의 말은 사회 전체의 기류를 바꾸는 힘을 갖는다.
취임 6개월을 넘긴 이재명 대통령의 언어가 최근 들어 눈에 띄게 거칠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에서 대통령의 발언 수위까지 높아지면서, 갈등을 관리해야 할 언어가 오히려 대립을 증폭시키는 신호가 되고 있다는 우려다. 여야가 서로를 향해 날 선 말을 쏟아내는 상황에서 대통령까지 공세적 언어 전선에 합류하는 모습은 국가원수의 위치와 어울리는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최근 부처 업무보고 현장은 이같은 우려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대통령은 외화 밀반출 문제를 꺼내들며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말이 참 기십니다" "업무 파악을 정확하게 못하고 계신 것 같은 느낌"과 같은 표현이 이어졌고 임명 시기와 임기를 따지듯 질문을 던졌다.
문제의 사안은 공항공사보다는 세관 업무에 가까운 사안이었고 언급된 수법은 과거 대북 송금 사건에서 등장했던 것이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야당 출신 인사라는 점이 강조되면서, 정책 점검이라기보다 공개 면박에 가깝다는 인상을 남겼다.
같은 날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과의 대화도 논란을 키웠다. 역사 교육을 두고 '환빠 논쟁'을 언급하며 이미 위서로 판명된 자료를 문헌인 것처럼 거론했고, 이에 대한 신중한 답변에 핀잔이 이어졌다. 학계에서 정리된 논쟁을 정치적 언어로 다시 호출하는 장면은 역사 문제를 둘러싼 불필요한 혼선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을 낳았다. 이 자리의 기관장 역시 전 정권 인사였다.
이 밖에도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탈모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가능성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정은경 복건복지부 장관은 생명과 직결된 의료 영역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취지로 선을 그었다. 국민이 부담하는 보험 재정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충분한 사회적 논의나 여론 수렴 없이 최고 권력자가 즉석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방식이 적절한지 의문이 남는다.
비슷한 장면은 다른 분야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른바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한 백해룡 경정을 수사 인력으로 투입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그러나 해당 의혹은 사실관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서 신빙성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논란의 한복판에 선 인물을 수사에 참여시키는 결정 자체가 관행과도 거리가 멀다.
대통령이 부처 보고를 공개적으로 받고 정책적 문제를 지적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이 대통령은 과거 지방자치단체장 시절 현장을 파고드는 행정 스타일로 '일 잘하는 단체장' 이미지를 쌓았다. 그러나 대통령의 언어와 태도는 다른 차원의 기준을 요구받는다.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고 공개 석상에서 질책이 반복될 경우 공직 사회는 책임과 창의 대신 대통령의 관심사에만 매달리는 상황에 가까워진다.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통치자의 언어는 국가의 얼굴이 된다. 발언의 무게와 신중함을 다시 묻게 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국격을 드러내는 상징이자 국민 통합을 이끄는 도구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절제된 언어다. 대통령의 말은 날카로울수록 신중해야 하고 강할수록 품격을 담아야 한다. 그것이 분열의 시대에 국가원수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언어 원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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