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절을 해도 되는가?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18.11.30 06:00  수정 2018.11.30 08:13

<신성대의 행간이설> 국격을 팔아 자신의 겸손함을 챙기는 ‘이상한’ 대통령

겸손은 비천한 자의 처세술…절하는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에겐 사(私)가 없다!…대통령 굽신배의 마이너스 부가가치 견적?


중국 방문 환영식에서 의장대 사열 끝에 멈춰서 뜬금없이(중국 국기를 향해?) 절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유튜브 동영상 캡처

국격을 팔아 자신의 겸손함을 챙기는 ‘이상한’ 대통령

유학(儒學)을 받들어온 한국인 대부분은 ‘겸손’과 ‘공손’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듯하다. 대충 얼버무리기 좋아하는 성향의 민족이라 그게 그건 줄 안다. 그러다보니 일상의 매너(예절)에서도 그 혼동이 심각하여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선진주류 사회에 들지 못할뿐더러 메이드인코리아 부가가치 디스카운트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어 엄청난 손실을 당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그에 대한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유학은 봉건시대의 처세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전에서 ‘겸손(謙遜)’이란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 혹은 자세’라고 한다. 유교 전통의 동양인(특히 한국인)들은 이를 예(禮)와 인(仁)의 근본이 되는 미덕인양 누천년 동안 선양해왔으며 오늘날에도 겸손은 사람됨의 가장 기본적인 측정자가 되고 있다. 하여 어린아이가 말을 시작할 적부터 존댓말을 배워야 하고, 어린이집에 보내면 제일 먼저 배꼽인사부터 배워온다. 그런 게 인성교육인 줄 알고 있다.

하지만 겸손에 대한 서구인들의 인식은 우리와 한참 다르다. 영어로 겸손은 ‘humility’가 되는데 여기에는 겸손, 겸허, 겸양의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굴욕, 굴종, 치욕, 부끄러움, 허약, 무기력과 같은 비천한 의미가 더 강하다. 서구문명의 큰 축 중의 하나인 헬레니즘에서 겸손은 ‘비굴(humiliation)’과 동의어였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으뜸이 되는 일에 매우 열정적이어서 자기표현을 중요시했으며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뛰어나기를 열망했었다. 그들에게서 겸손은 삶의 낙오자들에게서나 발견되는 혐오스런 특징이었을 뿐이었다. 그 시민정신이 중세에는 기사도, 오늘날에는 잰틀맨십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겸손은 비천한 자의 처세술

그와 비슷한 말로 ‘공손(恭遜)’이 있다. 겸손과 혼용되고 있으나 기실 다른 개념이다. 우리말사전에서 ‘말이나 행동이 겸손하고 예의 바르다’라고 설명하고 있어 겸손을 저변에 깔고 있다. 영어로 공손은 ‘courtesy’, ‘politeness’, ‘civility’로 정중, 경건의 의미가 들어있다. 여기에는 겸손, 즉 상대방을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낮춘다는 개념이 없다. 겸손은 노비나 하인의 태도였다. 당당하지 못한 사람이 용기가 있을 리 없고, 당연히 그런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는 건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인식이었다. 당당하면서도 정중하게 예(禮)를 지키는 것을 공손이라 한다.

바로 이 겸손과 공손의 두 개념이 서구문명과 동양문명의 차이점이다. 그리고 그 차이는 현대에 이르러 예절, 인간관계, 철학, 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극명한 차별과 차등을 낳았다. 용기 없고 ‘책임’질 자신 없는 인간은 비굴해진다. 서구의 민주주의가 동양으로 밀려들어온 지 한 세기를 넘겼지만 기실 동양의 어떤 나라도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우산 아래에서 겨우 한국 정도가 민주주의를 향해 끝없이 허우적거려 보지만 아직 ‘민주(民主)’의 의미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비굴한 민주가 천민자본주의를 낳고 있다.

절하는 대통령, 문재인

현재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절을 하는 국가 최고지도자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는 취임 이래 가는 곳마다 굽신배를 한다. 국내는 말할 것도 없고 해외순방 중 연설을 할 때에도 공손(?)하게 고개와 허리를 숙여 절을 한다. 어느 나라에서든 비행기 트랩 위에서 상대국 국민을 향해 두 부부가 절을 한다. 심지어 일본을 방문했다 떠날 때에는 트랩을 오르기 전에 저 멀리 비행기 앞바퀴 근처에 모여 서있는 정비공들에게도 굽신굽신 90도 절을 올리는가 하면 평양에서도 시민들에게 깍듯하게 90도 절을 했다. 그런가 하면 국빈 방문 때 의장대 사열 도중 멈춰 (중국국기를 향해?) 절을 올리는 바람에 황당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었다.

아마도 이 굽신배가 국내에서 그의 지지율을 받쳐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본인도 그걸 알기에 끊임없이 절을 해서 겸손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유지코자 하는 것이겠다. 평소 가진 자들의 갑질에 억눌려온, 스스로를 을(乙)이라 여겨온 한국인들은 수퍼갑의 갑(甲)질 아닌 을(乙)질, 즉 겸손질을 미덕으로 여겨 대통령의 굽신배가 마냥 싫지 않은 모양이다. 절만 받아먹어도 헛배가 불러오는 참 별난 민족이다. 더 나아가 문대통령은 그 겸손을 ‘포용’으로 포장하고 있다.

기실 한국은 사회 자체가 어쩔 수 없는 갑을(甲乙) 구조로 되어있어 모두가 갑도 되고 을도 되게 되어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어떤 관계든 동등할 수가 없다. 나이, 계급, 직위, 학벌, 재산, 선후배… 등등의 차이에서 갑을차등의식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구별된다. 심지어 당사자를 넘어 부모, 자식, 처가, 친구의 조건은 물론 자동차와 아파트 평수까지 그에 영향을 미친다. 유교의 봉건적 사유체계에 더해 존댓말과 반말이라는 갑을적 언어체계를 가진 민족으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적 굴레다. 한국인들이 유독 감투를 좋아하는 것도 실은 이 을적(乙的) 삶에 대한 콤플렉스 내지는 트라우마 때문이겠다. 어떻게 해서든 갑(甲)이 되어 그 을(乙)로 살아온 한(限)을 풀고자 하는 거다. 그리하여 이 갑을의식은 무시로 법과 규칙, 도덕, 상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권과 인격, 인간존엄성을 깔아뭉갠다.

대통령에겐 사(私)가 없다!

대통령은 한 나라 국민의 대표이자 국기와 마찬가지로 그 국가의 상징적 존재이다. 따라서 제 나라 국민은 물론 전 세계 어느 곳, 누구에게도 고개조차 함부로 숙일 수가 없다. 가령 태극기를 아무에게나 내리거나 기울일 수 없는 거나 마찬가지겠다. 해서 대통령은 제 나라 국기 외엔 예를 갖추지 않는다. 그마저도 절을 하는 게 아니라 거수(擧手)로 예를 표할 뿐이다.

일국의 최고지도자가 겸손과 공손을 구분 못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마치 양반(동양신사?)인양 자랑스레 굽신대고 있으니 이같이 참혹하고 창피한 일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겸손한 대통령? 완전 착각이다. 그게 본인의 진심인지 가식인지 알 수 없겠으나, 자신의 바람과는 달리 세계인들 누구도 그를 양반이나 신사로 볼 이유도 도리도 없다. 그리하여 일국을 대표하는 최고지도자가 되고서도 그에 걸맞은 태도와 자세도 모르는 하층민 출신의 ‘이상한 대통령’으로 단정하고 속으로 비웃고 있다 하겠다.

대통령이라는 직분과 태도에 대한 인식도 없이 자신의 사적인 감정 혹은 판단에 따라 아무데, 아무나에게 굽신배를 올리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행위라 하겠다. 본인의 겸손을 자랑하기 위해 국격을 심대하게 훼손한 월권적 비굴함이다. 국격을 팔아 자신의 겸손한 품격(?)을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대국에 조공 바치러 간 사신도 아닌데! 대통령이 상대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면? 그게 바로 사대(事大)가 아닌가? 그게 아니면 아직도 피식민지배 시절 몸에 밴 비굴인가? 이런 사람이 과연 공(公)과 사(私)를 제대로 구분할 수 있을까?

국민의 대표로서 국민 혹은 누군가에게 경의나 감사를 전하기 위해 절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아무려나 당연한 말씀이다. 하지만 그 표현법이 문제다. 달리 방법도 수없이 많은데 왜 하필 굽신배란 말인가? 고민할 필요 없이 맨입에 몸으로 때우겠다? 조금만 논리적으로 생각해봐도 대통령의 갑질 아닌 을질은 더없이 부끄러운 난센스 무지임을 알 수 있건만 세계관이 아직도 한반도 밖을 넘어가지 못하는 국민이라 그런지 누구도 대통령의 이상한 행태에 의아한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생각 없는 국민에 개념 없는 대통령! 덕분에 한국인은 세상에서 가장 비굴한 민족이 되고 말았다.

하여 언젠가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스스럼없이 해대도 한국인들은 입 꾹 다물고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본디 자기네 속국을 미국이 가로챘다며 다시 돌려달라고 불평한 건가? 그러니 일본이 지난날 한국을 식민지배 한 것을 세계인들은 당연하게 여길 것이고, 나아가 또 언젠가는 주변의 강대국이 한국을 속국으로 삼거나 식민지배해도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리라. 당당하게 홀로 바로 서질 못하는 노예나 하인을 거두어 다스리는 게 어찌 비난받을 일이겠는가?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니 제발 건드리지 말아주세요? 저는 착하고 겸손한 사람이니 잘 봐 주십시오? 당신을 높이 받들고 알아 모실 테니 거두어주시고 먹고 살 수 있도록 보살펴주십시오? 자신을 낮추는 건 글로벌 무대에선 결단코 매너가 될 수 없다. 겸손한 자를 비굴한 본심을 숨기는 기회주의자로 인식하기에 신뢰하지 않는 것은 물론 곰팡이와 같은 사회악으로 여겨 경멸할 따름이다. 하여 그런 사람을 보면 오히려 잔인하게 짓밟고 싶은, 다시 말해 갑질 하고픈 충동욕구를 일으킨다. 예(禮)를 생략하고 격식을 무시는 것은 무례이지 공손이 아니다. 직분에 맞는 예(매너)로 피차 품격을 지켜주는 것이 공손이다.


대통령 굽신배의 마이너스 부가가치 견적?

배(원가)보다 배꼽(이익)이 더 큰 것을 명품이라 부른다. 명품은 굽신대며 팔지 않는다. 배를 내밀수록 배꼽은 더 커진다. 작금 메이드인코리아의 가성비 경쟁력은 거의 상실해가고 있다. 대통령의 굽신배가 메이드인코리아 부가가치를 얼마만큼 떨어뜨리는지에 대한 계산을 할 줄 모르는 국민이다보니 허리가 부러지고 손이 문드러지도록 일해도 결코 가성비를 넘어서는 명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손꼽히는 명품 수입국이지만 기실 명품의 의미도 모르고 있다. 고부가가치산업으로의 진입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이게 작금의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자 한계다.

명품은 품격으로 만든다. 품격 있는 국민이 만들고 품격 있는 상류가 소비해줘야 명품이다. 자기보다 아래로 깔아보는 굽신배 민족이 만든 상품을 제값 주거나 마진 더 얹어주고 살 세계인은 없다. 최상의 매너는 신뢰와 존경. 최고의 자원이자 부가가치다.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들 아무도 우러러보지 않는다. 문대통령의 굽신배 겸손은 무지‧무식‧무례로 직무수행능력은 차치하고, 메이드인코리아 디스카운트에 기름을 붓고 있다 하겠다.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지도자로서의 자격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가지게 한다. 선진문명국에서였다면 마땅히 탄핵감이다.

공손은 배려의 매너다. 배려란 누구를 낮추고 높이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기본 개념에서 상대를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자신도 존중받아 인간존엄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인과 한 테이블에서 밥 먹는 신사는 없다. 인격은 동등하지만 품격은 동등할 수가 없다. 밥맛없는 한국인? 삼류 매너로는 선진주류들의 본선무대에 발도 못 붙인다. 매너는 무형의 자원이자 기술이다. 전통예절 또한 글로벌 소통의 도구로 재해석되고 그 형식도 시대에 맞게 다듬어져야 한다. 당연히 경쟁력 떨어지는 매너는 버려야 한다. 현재성이 없는 예(禮)는 굴레일 뿐이다. 글로벌 경쟁력 상실한 ‘소중한 우리 것’은 박물관에 모셔두고, 하루빨리 최전선 최첨단의 매너를 받아들여야 한다.

글/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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