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감독이라는 직책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보다도 더 영향력을 지닌 단장이라는 역할이 주어졌다. 염경엽을 둘러싼 SK와 넥센의 기묘한 악연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 장면이다.
SK는 지난 17일 염경엽 신임 단장의 선임을 공식 발표했다. 염 단장은 최근 한화 단장으로 부임한 박종훈 전 LG 감독에 이어 프로야구 감독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단장에 올랐다. 포스트시즌 및 한국시리즈 진출 경험이 있는 감독 출신 단장은 염 단장이 최초다.
이미 넥센과 LG에서 스카우트-운영팀장-코치-감독을 두루 거친 염 단장은 40대의 젊은 나이에 프런트의 정점인 단장직까지 프로야구단 현장과 행정의 모든 주요 실무직을 역임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SK는 전임 민경삼 단장의 장기집권이 끝난 이후 새로운 인물을 물색하고 있었다. 염 단장은 지난 4년간 넥센 감독을 맡아 팀을 포스트시즌 진출로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선수 육성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현장과 프런트의 업무에 모두 능숙하다는 점도 SK가 추구하는 프런트 야구의 리더로서 적임자라는 평가다.
하지만 염 단장의 SK행이 화제를 모은 또 다른 이유는 역시 넥센과의 미묘한 관계 때문이다. 염 단장은 지난해 넥센과 계약기간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돌연 자진사임을 결정하며 넥센 구단과 불화설이 나돌기도 했다. 이미 시즌 중반부터 염 단장이 SK의 차기 사령탑 내정설에 휩싸이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염 단장은 사임하던 시점에도 이를 강력하게 부인했고 해외에서 나가서 공부를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결국 3개월 만에 입장을 바꾸어 SK행을 선택했다. 비록 감독이 아닌 단장 직책이라고는 하지만 말을 바꿨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SK도 여론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염 단장의 영입을 추진하는 파격을 단행했다. SK 측은 감독 영입설은 사실무근이고 염 단장과 잡촉한 것도 넥센 감독에서 사임한 이후 지난해 12월부터 후임 단장직을 제의한 것이 처음이라는 입장이다, 염 단장이 여러 차례 거절했음에도 끝까지 삼고초려 끝에 영입했다는 SK 측의 설명이다. 진실이야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넥센 감독 염경엽이 SK 단장으로 소속이 바뀌었다는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다음 시즌 SK와 넥센의 라이벌 구도다. 두 팀의 대결은 올해 ‘염경엽 더비’로 통할 전망이다. 두 팀 모두 적극적인 프런트 야구를 시도하고 있는 구단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방향성은 조금 다르다.
넥센은 최근 또 다른 프런트 출신인 장정석 신임 감독을 임명했다. 전임 염 단장과는 차이는 장 감독은 현역 은퇴 이후 프런트로만 활약하며 코치 등 지도자 경험이 아예 없다는 점이다. 넥센은 염경엽 단장이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포스트시즌과 인연이 없던 팀이었다. 지난 4년간 넥센의 성공이 염경엽의 능력이었는지, 아니면 염경엽이 넥센이라는 시스템의 수혜자였는지는 올해 장정석 감독의 행보와 성과를 통하여 증명될 전망이다.
SK는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사령탑인 트레이 힐만 감독에 이어, 감독 출신 염경엽 단장까지 영입하며 10개 구단 중 가장 파격적인 수뇌부를 구성했다. 새판 짜기에 나선 SK가 전성기 왕조 시절의 위용을 재현해보일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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