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천막당사" - 이 "여학교 앞" - 손 "판자촌"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입력 2007.02.25 10:11  수정

<데일리안 대선기획>한나라당 ‘빅3’, 이것이 다르다<9>

´내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이명박 전 서울시장, 손학규 전 경기지사 등 ´빅3´에게 ´생애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어디냐´고 물어봤다.

대답한 장소는 한결같이 대권주자로서 자신이 가장 부각시키고 싶은 장점이 시작된 ´출발점´이었다. 때로는 정치 일생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천막당사"=박 전 대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한나라당 천막당사"라고 답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국민의 신뢰를 잃고 가장 어려웠던 시절,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던 곳이 바로 천막당사"라며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장소"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에게 천막당사는 대권주자로서 강한 이미지를 심어준 일종의 ´정치 아이콘´이다.

´박근혜 천막당사´를 설명하기 위해선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한나라당은 대선 연패에 이어 차떼기정치자금 파문과 탄핵 역풍으로 풍전등화 상황이었다. 당 지지율은 바닥을 쳤다. 총선에서 의석 수 50석도 얻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박 전 대표는 현재의 열린우리당보다 더 큰 위기를 맞았지만, 당명을 바꾸거나 정치 새판을 짜자는 주변의 요구를 거부했다.

오히려 "속죄의 뜻"이라며 당사와 연수원을 내놓고 여의도 벌판에 천막당사를 폈다. 정치적 눈가림 아닌 정면돌파 전략은 성공을 거둬 최악의 선거결과가 예상됐던 총선에서 120석 이상을 건졌다.

이후 2년 3개월 대표 임기동안 지방선거 등 각종 선거를 대승으로 이끌며 ´한나라당을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권주자로 올라서게 한 계기이기도 했다.

박 전 대표도 강연 등을 통해 "지지율 한자리수 위기에 놓인 당이 천막당사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왔다"며 자신의 공적을 부각시켰다.

◆"뻥튀기 장사하던 여학교 앞 골목"=
이 전 시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로 어린시절 "뻥튀기 장사를 하던 여학교 앞 골목"을 꼽았다.

이 전 시장은 당시 장소에 대한 추억을 세세하게 설명했다.

"야간상고 시절 어머니가 풀빵장사를 시작하셨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도와 함께 했는데, 어느날 어머니께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하니까 수입이 적으니까 별도로 해야겠다´면서 뻥튀기 기계를 빌려오셨다.

며칠 동안 연습을 한 뒤 어머니가 봐 놓으신 자리에 갔는데, 하필이면 그곳이 고향에 딱 하나 있는 여자중고등학교 들어가는 입구 골목이었다. 새벽에 나가서 준비를 해 놓고 막 장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여학생들이 골목으로 등교하기 시작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만 보아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사춘기 때, 아무리 살기 힘들지만 도저히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여학생들이 등교할 때는 골목 뒤에 숨어 있다가 학생들이 다 등교하고 나면 나와서 일을 했었다.

서울시장 재임시절 내가 뻥튀기 장사를 하던 그 학교 동창들이 나를 만나러 온 적이 있었다. 내색은 안 했지만, 혹시 그 때 내 모습을 기억하는 것은 아닌가 얼굴이 혼자 빨개졌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웃으면서 추억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장소이다."

이 전 시장은 이미 인터뷰 등을 통해 가난한 어린 시절을 딛고 일어선 ´성공이미지´를 강조해왔다.

◆"청계천 판자촌"=
손 전 지사는 "70년대 내가 빈민운동 하던 시절의 청계천 판자촌이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라고 답했다.

손 전 지사는 종종 "학벌이 콤플렉스다"고 말한다. 경기고-서울대-영국 옥스퍼드대 박사로 이어지는 학벌이 자신에겐 ´엘리트 이미지´를 심어 줘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학생운동에 이어 노동·빈민운동으로 ´거친 청년시절´을 보낸 손 전 지사로선 억울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가 꼽은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인생의 탄탄대로를 달리던 시절의 ´옥스퍼드대 강의실´, ´국회의원회관´, ´경기도지사실´이 아닌 ´청계천 판자촌´인 것도 이 같은 맥락.

그는 이에 대해 "현재도 보람을 느끼지만 청년시절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던졌고, 지금 우리가 민주화를 일궈야 되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이뤄야 된다는 분명한 내 철학, 내 생각을 갖고 젊은 시절을 지냈다는 것에 대해 커다란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 사회 어려운 사람들, 빈민들, 노동자들, 청계천 판자촌에서 밥 끓여먹으면서 ´어떻게 이 빈민들을 구할 수 있을까´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같이 살아주는 것. 이 땅에 사회 정의를 심어주는 손학규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서울대 졸업과 함께 "민중과 함께 살겠다"며 노동운동을 위해 구로공단, 빈민운동을 위해 청계천 판자촌 등을 옮겨 다녔다.

0

0

기사 공유

댓글 쓰기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관련기사

댓글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