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쇼 멘붕 몰고 온 몰리나의 묘한 심리전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입력 2013.10.19 16:12  수정 2013.10.21 09:35

타석에서 방망이 부러뜨려 커쇼로부터 주도권 뺏어

수비에서도 타의추종 불허하는 안정감으로 무실점

몰리나의 심리전으로 잘 던지고 있던 커쇼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 게티이미지

결과론적 관점에서 봤을 때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의 멘탈 붕괴는 야디어 몰리나와의 승부에서부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LA 다저스가 19일(한국시각), 부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3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세인트루이스와의 원정 6차전에서 커쇼가 무너지며 0-9로 패했다.

이로써 2승 4패로 탈락이 확정된 다저스는 올 시즌 일정을 마무리하게 됐다. 이와 함께 7차전 선발로 내정됐던 류현진의 등판도 물거품돼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반면, 세인트루이스는 2년 만에 내셔널리그 챔피언 자리에 오르며 보스턴-디트로이트 승자와 월드시리즈 패권을 놓고 다툰다.

이날 다저스 선발 커쇼는 4이닝 10피안타 7실점으로 생애 최악의 투구를 펼쳤다.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19이닝 1자책의 완벽한 투구내용을 선보였던 커쇼였기에 충격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커쇼는 3회와 5회, 각각 집중타를 얻어맞으며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3회말에는 안타 5개와 볼넷 2개로 4점을 내줬고, 5회에도 3연속 3안타를 허용한 뒤 고개를 푹 숙인 채 강판됐다.

슈퍼에이스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평소 심리전에 능한 몰리나의 돌발 행동 때문이었다. 사실 커쇼는 1회부터 구위가 썩 좋지 않았다. 1회말 카를로스 벨트란에게 2루타를 얻어맞은데 이어 2회에도 셰인 로빈슨에게 안타를 허용해 불안감이 엿보였다. 게다가 주심마저 스트라이크 존을 매우 좁게 형성해 코너워크를 구사하는데 애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대량실점의 시발점인 3회, 커쇼는 1사 후 맷 카펜터에게 2루타를 맞은 뒤 카를로스 벨트란에게 연속 안타를 내줘 먼저 1실점했다. 이후 맷 홀리데이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안정을 되찾는 듯 보였지만 얄궂은 몰리나가 커쇼를 심리를 자극했다.

몰리나는 스트라이크로 꽂힌 94마일 직구를 지켜본 뒤 2구째 같은 볼이 오자 크게 헛스윙했다. 그러자 몰리는 자신에게 화가 난 듯 갑자기 방망이를 부러뜨렸다. 삼진 상황이 아니었기에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몰리나가 방망이를 교체하느라 잠깐의 시간이 흘렀고, 결과적으로 이로 인해 주도권을 쥐고 있던 커쇼도 리듬이 끊어지고 말았다. 다시 타석에 들어선 몰리나는 5구째 슬라이더를 잡아당기는 중전안타로 벨트란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이후 우익수 야시엘 푸이그의 송구 실책까지 나오며 커쇼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몰리나의 심리전은 공격뿐만이 아닌 수비에서도 빛났다. 몰리나는 9-0으로 일찌감치 승리를 확정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투수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곧바로 마운드에 올라 진정시키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침착하고 치밀한 경기 운영에 다저스 타자들의 의지가 꺾이는 것은 당연했다. 반면, 다저스 포수 AJ 엘리스는 커쇼가 크게 흔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운드를 찾지 않았다.

몰리나는 현역 메이저리거 가운데 최고의 포수로 손꼽히고 있다. 투수를 안정적으로 리드하는 것은 물론 블로킹과 수비, 어느 것 하나 흠잡을 곳이 없다. 특히 도루 저지와 볼을 스트라이크로 둔갑시키는 플레이밍(일명 미트질)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다. 이로 인해 몰리나는 2008년부터 5년 연속 내셔널리그 골드글러브를 수상하고 있으며, 이번이 없는 한 올 시즌도 수상이 유력시 된다.

이번 내셔널리그 챔피언십시리즈의 MVP는 커쇼를 두 번이나 꺾은 마이클 와카(2승, 13.2이닝 무실점)가 선정됐다. 하지만 와카는 물론 팀을 안정적으로 이끈 몰리나야 말로 숨은 공로자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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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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