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출소할 때 나영이는 대학생인데..."

이충재 기자

입력 2013.10.16 10:21  수정 2013.10.16 11:03

'나영이 사건'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한 네티즌들

영화 '소원' 계기로 7년후 출소 조두순 재처벌 요구

“이렇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는 처음이다. 다시 처벌하자.”

지난 2008년 발생한 조두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소원’이 개봉되면서 네티즌 사이에서 ‘조두순 재처벌 청원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의 고통스러운 삶이 재조명되면서 조두순을 비롯한 성범죄자에 대한 “재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로 모아지고 있는 것.

우선 조두순에 대한 재처벌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미 법원에서 확정판결까지 받은 사안을 재수사하는 것은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에 어긋난다.

하지만, 조두순 사건을 비롯한 아동 대상 성범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들끓고 있는 성범죄 처벌에 관한 국민법 감정을 감안하면 현행 양형기준은 ‘솜방망이 처벌’에 가깝다.

영화 ‘소원’과 관련된 포털사이트 게시판과 기사 댓글란 등에는 “7년 후엔 조두순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닐 것을 생각하니 아이 키우기 무섭다”, “또 다른 조두순이 나오지 않게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아동 성범죄자는 외딴섬에 가둬야 한다”, “거세를 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가장 많은 공감을 얻었다.

이에 따라 아동 대상 성범죄를 비롯한 성범죄 전반의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고, 이에 대해 엄격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실제 양형기준 강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이미 지난 2011년 개봉된 영화 ‘도가니’로 장애아동 성폭행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도가니법’제정으로 이어진 바 있다.

'이렇게 또 끓다가 말 것인가'…실효성 있는 대책 논의해야

그동안 조두순 사건뿐만 아니라 ‘김길태, 김수철 사건’ 등 사회적 공분과 파장을 일으킨 사건 이후에도 성범죄 양형기준을 둘러싼 논의가 있어왔지만, 여론에서 멀어지면 다시 흐지부지하는 등 헛바퀴를 돌리길 반복했다.

'나영이 사건'의 조두순에 대한 12년 형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이 5년 째 이어져 오고 잇는 가운데 조두순에 대한 재처벌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사진은 조두순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소원'의 한 장면 ⓒ필름 모멘텀

지난 2008년 이른바 ‘혜진·예슬양’ 사건 당시에도 국민여론이 들고 일어섰고, 정치권은 법개정을 통해 강력한 처벌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건은 기억에서 멀어졌고, 관련 법안도 정치적 쟁점 법안에 밀려 표류했다.

이 때문에 아동 성범죄 사건에 대한 정부당국과 정치권의 대응은 ‘사후 약방문식’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사건이 터진 이후 ‘인기영합식-땜질식’ 대책을 내놓는데 급급했다.

무엇보다 ‘끓는 여론’에 졸속처리할 사안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신중한 논의를 통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피해자 중심에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특히 ‘여론에 편승한 형량 조정’은 법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국민법감정도 중요하지만, 여론에 따라 법의 잣대가 흔들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류여해 한국사법교육원 교수는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형량 상향이 거론되고, ‘형량 인플레이션’ 현상이 계속되면 우리 형법에는 최고형인 사형만 남을지도 모른다”며 “엄벌만능주의가 매우 손쉬운 방법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고 말했다.

"강력한 처벌 필요…그러나 엄벌만능주의 근본 해결책 아니야"

류 교수는 이어 “강간을 한 사람을 사형에 처하게 되면 서너 명의 목숨을 빼앗은 연쇄 살인범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 하나만 예외적으로…’란 생각으로 법의 정신을 넘어서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류 교수는 또 “법의 기본정신이 무너지면 분명 우리 발목을 잡을 것”이라며 “범죄에 적정한 형벌을 가해야 한다는 것도 법의 중요한 정신이고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양형기준이 아닌 ‘성범죄 재범률’에 주목했다. “처벌 강화로 성범죄가 줄었다는 통계가 없다”는 점도 시선을 ‘예방’쪽으로 돌리게 했다.

실제 경찰청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성범죄로 검거된 2만189명 중에서 성범죄 관련 전과가 있는 재범자는 9115명으로 재범률이 45.1%에 이른다. 즉, “엄벌도 중요하지만 교정 프로그램 개발도 그에 못지않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성범죄자에 대한) 학습 노력을 많이 기울이면 변경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교정을 철저히 해야 한다”며 “무조건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처벌을 반복적으로 주는 것이 오히려 이 사람들을 더 사회적으로 외톨이가 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어떻게든 장기간 징역형을 받는 동안 교정교화를 통해 재화시켜서 출소시키는 것이 필요한 일”이라며 “그런 차원에서 보면, 형량을 늘리는 등 강력한 처벌의 수위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영구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1000년형' '종신형'…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처벌

다른 나라에선 아동 성범죄를 살인죄에 버금가는 강력 범죄로 규정해 엄하게 처벌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6개 주(州)에선 사형을, 다른 주에선 종신형까지 선고한다. 영국과 스위스 역시 종신형을 선고하고, 중국 등에선 사형에 처한다.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해선 관용을 베풀지 않고, 사회와 영구 격리조치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한 방송사 사장은 아동포르노물을 소지한 혐의로 징역 1000년을 선고받았고, 미국 플로리다 주 법원에서는 지난 2011년 454건의 아동 음란물을 내려받은 초범 피고인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바 있다.

우리나라 역시 피해자가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고통을 감안해 양형기준 저울의 추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데 전문가 대부분이 공감을 나타냈다. “국민법감정과 괴리가 너무 크다”는 점과 함께 세계적인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의 평균 형량이 4년도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 또 다른 논란이 되고 있다.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3세 미만 아동 대상 성범죄자는 모두 448명으로 평균 형량은 3.84년이었다. 13세 이상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 2336명의 평균 형량도 3.36년에 불과했다.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잔혹한 성범죄 수법에 비해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여론이 대세다.

더욱이 13세 미만 아동 성폭력 범죄자 가운데 4명 중 1명은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법 제재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솜방망이도 휘두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13세 미만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 피고인 44명 중 22.7%인 10명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김 의원은 “‘영혼 살인’이라 불리는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원의 엄정한 대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편 국회에는 음주나 마약류에 의한 심신장애의 경우 형을 감경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형법 일부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미성년자 대상 강간죄의 최저 형량을 5년 이상에서 7년 이상으로 늘리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아동·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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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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