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도 울고 갈 정선아와 리사…뮤지컬 ‘에비타’

이한철 기자 (qurk@dailian.co.kr)

입력 2012.01.03 20:27  수정

정선아·리사, 완벽한 ‘가창력·연기’ 폭풍 감동

에비타에 압도된 ‘체 게바라-후안 페론’ 아쉬움

이지나 연출이 “월드 베스트”라 극찬한 정선아는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에비타’의 복잡다단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에비타, 에비타….”

천정훈 음악감독이 처연한 트럼펫 연주로 공연의 시작을 알리자 무대는 곧 장례식장으로 변한다.

1952년 7월 어느 날, 아르헨티나는 국모로 칭송받던 한 여인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 관 위에 국화 한 송이를 얹어놓는 남편이자 대통령 후안 페론의 고독한 모습은 뜨겁게 달아오른 추모열기에 기름을 붓는다.

육영수 여사 운구차량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숙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과도 묘하게 겹쳐지는 이 장면은 에바 페론의 죽음을 더욱 애틋하게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분위기가 못마땅한 한 남자가 있다. 체 게바라는 에바 페론의 업적은 신기루에 불과하며, 오히려 나라를 빚더미로 내몬 장본인이라고 설파한다. 그의 조롱은 공연 내내 이어지면서 에바 페론과 팽팽하게 대립한다.

이 같은 설정은 에바 페론에 대한 연민과 감상에 빠지려는 관객들을 끊임없이 견제하며 깊은 혼동 속으로 내몬다. 에바 페론과 체 게바라의 갈등이 곧 관객과 체 게바라의 갈등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균형감각을 잃은 영웅주의로부터 건져내면서 작품에 생명력을 더한다. 뮤지컬 ‘에비타’가 에바 페론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에 그쳤다면 오히려 숱한 논란거리만 남긴 채 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에바 페론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노동자의 서민의 삶을 위한 정책으로 가난한 자들의 성녀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출세욕을 위해 사랑을 이용하고 오만한 포퓰리즘으로 나라를 망친 악녀라 비난받기도 한다. 그런 그를 그리는데 쿠바 혁명의 상징 체 게바라의 등장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선택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음악이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으로 유명한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음악은 가히 명불허전이다. 팝과 록, 클래식, 재즈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음악은 들을수록 마술 같은 힘을 발휘한다.

정치 소재의 무거움과 대체로 진중한 음악들이 자칫 지루함을 줄 수 있지만, 사전에 공연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고, OST나 영화를 미리 접한다면 비싼 돈을 지불하고 졸다 나오는 낭패는 피할 수 있다. 다만, 영화와 2006년 런던 리바이벌 공연에 포함됐던 ‘유 머스트 러브 미(You Must Love Me)’를 들을 수 없다는 점은 아쉽다.

무대는 미니멀한 회전 장치와 계단이 전부다. 여기에 무대 뒤쪽에 영상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그러나 조명과 회전장치, 영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무대는 결코 심심하지 않다. 무대는 웅장한 대통령궁이 되기도 하고, 젊음과 활기로 가득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변하기도 한다. 또 체 게바라와 에바 페론의 ‘죽음의 왈츠’ 신은 여백의 미를 십분 활용하며 두 사람의 드라마틱한 삶과 고뇌, 고독을 표현한다.

특히 에비타의 대통령궁 연설씬 ‘돈 크라이 포 미 아르헨티나(Don't Cry For Me Argentina)’는 압권이다. 무대가 회전할 땐 에바 페론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계단 가장 높은 곳에 발을 디딜 땐 형언할 수 없는 쾌감을 선사한다.

체 게바라와 죽음을 앞둔 에바 페론이 서로를 향해 독설을 던지는 추는 ‘죽음의 왈츠’는 뮤지컬 ‘에비타’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체 게바라 압도한 에비타

‘에바 페론’을 연기하는 정선아와 리사의 연기는 이지나 연출의 말대로 “월드 베스트급”이라는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한국 관객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마돈나 주연의 동명영화다. 이들의 존재감은 마돈나의 위엄을 뛰어넘고도 남았다.

이미 뮤지컬 여왕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정선아는 섹시하고 요염한 철부지 모습부터 우아하고 기품 있는 국모의 모습까지 완벽한 연기와 가창력으로 소화해낸다. 특히 체 게바라와 함께 자신의 관을 바라보며 터져 나오는 ‘에비타’ 정선아의 애처로운 눈물은 관객들의 가슴을 때린다.

‘광화문연가’를 통해 ‘미친 가창력’으로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오르내리기도 했던 리사의 안정적인 가창력도 발군이다. 발랄한 요부의 느낌을 표현하기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특유의 당당하고 단호한 연기로 극복한다.

그러나 너무나 완벽한 두 배우의 아우라 때문인지, 남자 배우들의 연기는 다소 빛을 잃었다. 당초 예상과 달리 다소 매끈하게 그려진 체 게바라 역의 이지훈과 임병근은 비교적 호연을 펼치지만, 에바 페론과 팽팽하게 대립하기엔 카리스마가 부족했다.

2006년 한국 초연에 비해 체 게바라의 비중을 더 강조된 공연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또 박상원 또한 관록의 연기로 극복하기엔 가창력의 한계가 두드러진다.

그럼에도 뮤지컬 ‘에비타’는 지루하다는 혹평이 많았던 초연에 비해 한층 완성도 높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놓치기엔 너무나 아까운 작품임에 틀림없다. 오는 29일까지 LG 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한편, 뮤지컬 ‘에비타’는 세계 공연의 메카 브로드웨이에서도 2012년 리바이벌 공연된다. 특히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가수이자 배우인 리키 마틴이 체 게바라 역으로 캐스팅돼 관심이 뜨겁다. 또 ‘지킬앤하이드’ ‘천국의 눈물’ ‘오페라의 유령’ 등으로 한국 팬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브래드 리틀이 후안 페론 역을 맡는다.[데일리안 문화 = 이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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