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자와 대화·협력하는 'PUBG 엘라이' 베타 서비스
가상 세계에서 쌓은 경험,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로봇 연구로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에 적용된 CPC 기술을 루도 로보틱스를 통해 현실 세계 로봇 AI에도 활용하고자 한다.ⓒ크래프톤
슈팅게임에서 함께 싸우는 팀원이 사람이 아니라 AI라면 어떨까. 필요한 아이템을 찾아 달라고 부탁하고, 적을 피해 어디로 이동할지 의논할 수 있다. 가끔 엉뚱한 행동을 해도 웃어 넘길지 모른다. 승리를 위한 도구로만 생각했던 AI가 어느새 말을 주고받는 동료가 되는 것이다.
크래프톤이 자사 대표작 '배틀그라운드'에 시험 적용한 CPC(Co-Playable Character) '엘라'가 대표적이다. 엘라는 음성 명령을 이해하고 매치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파악하며, 말과 행동으로 대응할 수 있다. 정해진 스크립트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읽고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다.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행동을 수행하는 NPC의 개념에서 벗어난 혁신으로 평가 받는 이유다.
이쯤 설명을 들었으면 해당 기술을 '게임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과 로봇공학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상상도 하게 된다. 스스로 사고하고 변수에 맞춰 행동하는 로봇들의 모습을 숱한 공상과학 콘텐츠에서 이미 봐왔으니 말이다.
실제로 크래프톤도 게임의 경험을 밑바탕 삼아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8일 크래프톤에 따르면 회사는 미국 팔로알토에 설립한 '루도 로보틱스'를 통해 피지컬 AI와 로보틱스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게임 속 캐릭터가 이용자의 의도를 이해하고 협력하도록 만든 경험을 사람과 함께 일하는 로봇의 지능을 개발하는 데 활용하려는 구상이다.
이강욱 크래프톤 최고AI책임자(CAIO)는 최근 미국 비즈니스 매체 패스트컴퍼니 기고에서 이런 연구 방향을 소개했다. 게임 캐릭터든 현실의 로봇이든 질문에 답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주변 상황을 이해하고 변화에 맞춰 직접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엘라의 베타 서비스에서도 이런 과제를 확인했다. 크래프톤은 지난 6월 17일부터 7월 1일까지 글로벌 이용자를 대상으로 배틀그라운드 아케이드 모드 'Ally Duo'를 운영했다. 이용자는 엘라와 2인 팀을 이뤄 사녹 맵에서 플레이하며 한국어·중국어·영어로 대화를 나눴다.
'Ally Duo' 모드.ⓒ크래프톤
이 CAIO에 따르면 이용자들은 엘라를 단순한 기능보다 실제 팀원처럼 대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말을 걸거나 농담을 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 장난을 걸기도 했다. 엉뚱한 행동이나 실수도 때로는 또 다른 재미가 됐다.
회사 측이 주목한 것은 정확도 외의 요소였다. 이용자들은 엘라가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는지, 말에 담긴 의도를 이해하는지, 자신이 생각을 바꾸면 행동도 조정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명령에 정확히 답해도 반응이 늦거나 달라진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면 함께 플레이하기 어렵다.
루도 로보틱스는 이런 상호작용의 문제를 실제 로봇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 CAIO는 루도 로보틱스의 첫 시스템 '루디 0.1'을 소개하며 "사람이 원하는 작업을 파악하고 작업 도중 상황이 달라지면 행동을 바꾸도록 개발했다"고 밝혔다.
크래프톤이 내세우는 게임사의 강점은 가상 세계 운영 경험과 대규모 상호작용 데이터다. 현실에서는 반복하기 어려운 상황을 가상 환경에서 검증할 수 있고, 이용자와 AI가 함께 움직이는 과정에서 다양한 반응을 살펴볼 수 있다. 피지컬 AI 시대가 대두되며 AI가 가상 환경에서 물리적 세계로 확장되는 추세인 만큼, 회사가 쌓은 노하우가 충분한 강점이 될 수 있으리란 시선이다.
이 CAIO는 지난해 2월 루도 로보틱스 설립을 앞두고 "게임이라는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AI 기술과 데이터 기반의 장기적인 확장 가능성도 함께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강욱 크래프톤 CAIO가 CES 2025에서 자사 CPC 기술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크래프톤
이밖에도 크래프톤은 AI 기반 기술의 개발 범위를 넓혀왔다. SK텔레콤과는 컨소시엄을 맺고 정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 참여해 추론 모델과 멀티모달 기술 개발을 맡았다. 컨소시엄은 지난 8월 2차 평가를 통과했다.
대표적인 공동 개발 성과는 음성 언어모델 'A.X K2 Raon-Speech'다. SKT의 언어모델에 크래프톤이 자체 학습한 음성 인코더와 코덱을 적용했다.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자연스러운 음성으로 응답하는 과정에서 감정과 억양 등의 정보를 살리는 것이 목표다.
크래프톤은 자체 AI 모델 브랜드 'Raon'을 통해서도 음성·실시간 대화·비전 모델을 개발해왔다. 독파모 공동 개발 과정에서 쌓은 역량은 향후 CPC 고도화에도 활용할 계획이다. 게임에서 시작한 AI 연구가 기반 모델 개발로 넓어지고, 여기서 확보한 기술을 다시 게임에 적용하는 흐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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