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까지 태어난 이들을 지칭하는 X세대는 ‘절약’이 모토인 기존 세대와 달리 ‘소비’를 적극적으로 한 최초의 세대로 분석됩니다. 경제적 풍요 속에서 자라나면서 개성이 강한 이들은 ‘디지털 이주민’이라는 이름처럼 아날로그 시대에 성장해 디지털 시대에 적응한 세대이기도 하죠. 그만큼 수용할 수 있는 문화의 폭도 넓어 대중음악 시장의 다양성을 이끌었던 주역으로 꼽히는데, 이들이 향유했던 음악을 ‘가요톱10’의 90년대 자료를 바탕으로 Z세대에게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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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톱10’ 1996년 9월 3주 : 김민종 ‘귀천도애’
◆가수 김민종은,
정식 데뷔 전 광고 모델로 활동하다 1988년 영화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로 연기자 데뷔를 먼저 했다. 1992년 솔로 1집 타이틀곡 ‘또 다른 만남을 위해’를 크게 히트시키며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했다. 특유의 거칠고 허스키한 중저음과 비장미 넘치는 록 발라드 창법을 앞세워 1990년대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남성 솔로 보컬리스트로 자리매김했다.
1992년 말에는 배우이자 가수인 손지창과 함께 2인조 듀오 더 블루를 결성했다. 드라마 ‘느낌’ 등의 인기와 맞물려 ‘너만을 느끼며’ ‘그대와 함께’ 등 연이어 히트를 기록하며 90년대 청춘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군림했다. 듀오 활동의 대성공 이후에도 솔로 음반 활동을 병행하며 ‘하늘 아래서’ ‘귀천도애’ ‘착한 사랑’ ‘세상 끝에서의 시작’ ‘비원’ ‘순수’ ‘아름다운 아픔’ 등 발표하는 앨범마다 타이틀곡을 지상파 가요 순위 프로그램 정상 및 최상위권에 올려놓는 막강한 흥행 파워를 과시했다.
음악 방송 1위는 물론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 본상과 지상파 연말 가요 시상식 본상을 다수 수상하며 가요계 최정상급 인기를 구가했다. 특히 자신이 부른 수많은 대표곡의 작사를 직접 도맡기도 했다. 드라마 ‘느낌’ ‘미스터Q’ ‘수호천사’ ‘신사의 품격’ 등 주연을 맡은 드라마의 OST를 직접 불러 대히트시키는 등 연기와 노래 양면에서 파급력을 입증한 원조 멀티 엔터테이너의 대표 격으로 평가받는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정규 음반 발표가 뜸해졌으나, 2009년 더 블루 재결성 앨범 발매 및 2012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 OST ‘아름다운 아픔’ 리메이크 음원 발매, 2022년 데뷔 30주년 기념 싱글 ‘긴 밤’ 등을 발표하며 음악적 행보를 간헐적으로 이어왔다. SM엔터테인먼트의 이사직을 거쳐 현재까지도 방송 및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KBS '가요톱10'
◆‘귀천도애’는,
1996년 발매된 김민종의 정규 3집 앨범 ‘귀천도애’의 동명 타이틀곡이다. 김민종이 직접 노랫말을 쓰고 작곡가 서영진이 작곡을 맡았으며,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비장미 넘치는 록 사운드가 결합된 정통 록 발라드 곡이다. 제목인 ‘귀천도애’는 ‘하늘로 돌아가는 길의 슬픔’이라는 뜻으로,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지고지순한 사랑과 사별의 아픔을 김민종 특유의 거칠고 애절한 허스키 보이스로 절규하듯 표현했다.
곡은 발표 직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단숨에 가요계를 장악했다. 당시 SBS ‘TV 가요 20’에서 1위를 차지하고 KBS ‘가요톱10’에서도 1위 후보에 오르며 큰 인기를 끌었고, 앨범 판매량 역시 약 50만장 이상을 기록하며 김민종을 솔로 가수로서 최정상의 반열에 확고히 올려놓는 성과를 냈다.
다만, 이 곡을 둘러싼 표절 논란도 불거졌다. 곡이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중, 일본 록 밴드 튜브(TUBE)의 마에다 노부테루가 1990년에 발표한 솔로곡 ‘D·A·M·E’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결국 심의기구와 대중 앞에서 표절 사실이 인정됐다. 직접 작사만 맡았던 김민종은 작곡가의 표절 사실을 뒤늦게 알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즉시 모든 책임을 통감하고 가수 활동을 전면 중단하며 가요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나 자숙 끝에 1998년 직접 작사한 정규 4집 ‘착한 사랑’으로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하면서, ‘귀천도애’는 김민종 가수 인생에서 가장 큰 영광과 시련을 동시에 안겨준 비운의 명곡으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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