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송유관 피격에 브렌트유 107달러까지 치솟아
대한항공 등 "고유가·수요 위축에 좌석 의무 완화" 요청
공정위 심사관 "뚜렷한 수요 위축 없다" 기각 의견
통합 앞두고 연료비 뛰는데 공급 조절도 어려워
ⓒ대한항공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아시아나항공과 기업결합을 목전에 둔 대한항공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고유가로 연료비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기업결합 조건으로 떠안은 공급 의무가 수익성 방어를 위한 운항 조정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어서다.
공급 의무를 완화해달라는 요청에 공정거래위원회가 불수용 의견을 낸 가운데 중동발 유가 급등이라는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좌석 90% 유지' 조건이 통합 대한항공의 수익성을 옥죄는 족쇄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중동 지역의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다시 커지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있다. 브렌트유는 이날 배럴당 107달러를 넘어섰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103달러 수준까지 뛰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핵심 원유 수송시설인 동서 송유관 가동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공급 불안이 커진 영향이다. 이 송유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고 홍해로 원유를 수송할 수 있는 핵심 우회로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전 세계 원유 공급량의 최대 4%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유가 급등은 국내 항공사들의 수익성을 위협하는 직접적인 악재다. 항공유 가격이 치솟으면 운항할수록 비용 부담이 커지는 데다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유류할증료만으로 늘어난 비용을 상쇄하는 데도 한계가 있어서다. 항공사들은 통상 수요와 수익성을 따져 운항 횟수를 줄이거나 투입 기재를 조정해 충격을 흡수한다.
문제는 아시아나항공과의 기업결합을 앞둔 대한항공의 경우 수익성 방어를 위해 운항 횟수를 유연하게 줄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업결합 조건에 따라 경쟁 제한 우려가 있는 일부 노선에서 좌석 공급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가가 치솟을수록 비용 부담은 불어나는데 이를 방어하기 위한 운항 조정에는 제약이 걸려 있는 셈이다.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승인하면서 경쟁 제한 우려가 있는 국내·국제선 40개 노선의 연간 공급좌석을 2019년의 90% 미만으로 줄이지 못하도록 했다. 두 대형 항공사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경쟁이 줄어 항공편과 좌석 공급이 감소하거나 운임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해당 조건은 대한항공뿐 아니라 아시아나항공과 진에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5개 항공사에 적용된다. 운임 역시 2019년 대비 물가상승분을 넘어 올리지 못하도록 했고 기내식과 수하물, 라운지 등 주요 서비스도 소비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수 없도록 했다.
이에 대한항공 등 5개 항공사가 고유가와 고환율 등 달라진 영업환경을 이유로 공급 의무를 완화해달라고 공정위에 요청했으나, 공정위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면서 제동이 걸렸다. 항공사들은 청주~제주 노선의 공급좌석 유지 기준을 기존 90%에서 70%로 낮추고 올해 전체 시정명령 대상 노선에 대해서도 공급 의무를 면제하거나 완화해달라고 요구했다.
공정위 심사관은 기업결합 시정명령이 확정된 이후 기존 의무를 이행하기 어려울 정도의 새로운 사정변경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향후 항공사 측의 의견 제출 등을 거쳐 공정위 전원회의가 공급 의무 완화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이런 가운데 항공사들이 공급 의무 완화를 요구할 당시보다 대외 여건이 더 악화하면서, 중동발 원유 공급 불안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향후 공정위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쏠린다.
관건은 이번 유가 급등이 일시적인 변동에 그칠지, 중동발 공급 차질과 맞물려 장기화할지다. 단기간에 유가가 안정될 경우 기존 시정조치를 변경할 근거로 작용하기 어렵지만 고유가가 장기화하면 항공사들이 공급 의무 완화를 요구했던 당시와 비교해 영업환경이 실질적으로 달라졌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공정위 입장에서도 공급 의무를 쉽게 풀어주기는 어렵다. '좌석 90% 유지' 조건 자체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결합으로 경쟁이 약화한 뒤 공급 축소와 운임 상승으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됐기 때문이다. 비용 상승을 이유로 공급 기준을 낮출 경우 기업결합 당시 마련한 소비자 보호 장치가 약화할 수 있다는 문제가 생긴다.
업계에서는 최근 유가 급등이 기존 시정조치를 손볼 만큼 중대한 '사정변경'으로 법적으로 인정될 수 있느냐가 이번 사안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통합을 목전에 둔 대한항공으로서는 수익성 방어와 기업결합 시정조치 이행을 동시에 풀어야 하는 가운데 중동 정세와 국제유가라는 또 하나의 변수를 떠안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결합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공급 유지 조건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최근처럼 유가와 환율 등 항공사의 비용 구조를 좌우하는 변수가 급격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는 현실적인 운항 여건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공급을 유지할수록 항공사의 수익성 부담이 커질 수 있어 향후 공정위 판단에서도 시장 상황의 변화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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