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잡으면 끝' 옛말…550조 퇴직연금 판 흔들린다

김민환 기자 (kol1282@dailian.co.kr)

입력 2026.08.27 07:06  수정 2026.08.27 07:06

실물이전 15조9000억…상반기 이동액 두 배로

증권 4조 순유입·은행 4조 순유출 '희비'

DC→타사 IRP 확대 추진…기금형도 경쟁 변수

퇴직연금 실물이전 확대와 기금형 도입 추진으로 550조원 규모 시장을 둘러싼 금융사 간 경쟁 구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연합뉴스

550조원을 넘어선 퇴직연금 시장의 판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가입자의 금융사 이동이 활발해지는 데다 이전 범위 확대와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까지 추진되면서 업권 간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27일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사업자 43곳의 전체 적립금은 553조8779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권별로는 은행이 281조5105억원으로 전체의 50.8%를 차지했다. 증권사는 165조468억원으로 29.8%, 보험사는 107조3206억원으로 19.4%를 각각 기록했다.


전체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가운데 업권별 성장 속도는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46.4% 급증한 반면, 은행과 보험은 각각 19.1%, 10.1% 증가하는 데 그쳤다.


가입자가 기존 상품을 유지하면서 금융회사만 바꿀 수 있는 실물이전이 활성화된 것도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 구도를 바꾸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시행된 2024년 10월부터 올해 6월 말까지 금융사를 옮긴 적립금은 총 15조9000억원, 25만여건에 달했다.


특히 자금 이동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이전액은 6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조2000억원의 두 배를 넘어섰다.


자금 이동에서도 업권별 희비가 엇갈렸다.


지난 6월 말까지 증권사에는 4조1513억원이 순유입된 반면 은행에서는 3조9714억원이 순유출됐다.


은행에서 증권사로 이동한 금액만 5조2000억원으로 전체 이전액의 33%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은행 간 이동도 4조5000억원으로 28%에 달했다.


제도별로는 개인형퇴직연금(IRP)의 이전액이 6조80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확정기여(DC)형 4조8000억원, 확정급여(DB)형 4조3000억원 순이었다.


앞으로는 퇴직연금 자금이 금융사를 오갈 수 있는 범위도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금감원은 최근 예탁결제원과 금융협회, 한국증권금융, 주요 퇴직연금 사업자 등 17개 기관과 실물이전 개선 태스크포스(TF)를 출범했다.


핵심은 현재 동일한 제도 내에서 이뤄지는 실물이전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DC형 가입자가 다른 금융사의 IRP로 적립금을 옮길 수 있도록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환매가 중단된 펀드도 이전 가능 상품에 포함하고, 이전 의사를 확인할 때 필요한 녹취를 비대면 방식으로 대체하는 방안도 논의한다.


오는 9월까지 개선 방향을 확정한 뒤 10월부터 전산 개발에 착수해 2027년까지 관련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금융사 간 이동 장벽이 낮아질수록 퇴직연금 사업자의 경쟁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기업이나 가입자를 유치해 적립금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다른 금융사의 자금을 끌어오는 동시에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는 전략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가입자가 직접 운용하는 DC형과 IRP에서는 수익률과 수수료뿐 아니라 상장지수펀드(ETF)·펀드 등 상품 선택권, 모바일 거래 편의성, 포트폴리오 관리 등 자산관리 서비스가 사업자 선택에 미치는 영향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정부가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추진하는 점도 향후 시장 판도를 바꿀 변수로 꼽힌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개별 기업이 은행·증권·보험사 등과 각각 계약을 맺는 현행 계약형과 달리 여러 사업장의 적립금을 하나의 기금으로 모아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방식이다.


구체적인 제도 설계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기금형이 도입되면 계약형 중심의 퇴직연금 시장에 새로운 운용 방식이 추가돼 금융사 간 경쟁의 범위도 더욱 넓어질 수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물이전이 확대되면 가입자의 사업자 선택권이 넓어지는 만큼 금융회사도 신규 고객 유치뿐 아니라 기존 고객을 지키는 경쟁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수익률과 상품 경쟁력뿐 아니라 수수료와 거래 편의성, 자산관리 서비스 등 전반적인 경쟁력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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