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스커버리 더해 고질적 위장관 부작용 해결
평택 등 국내 생산 공장으로 '공급 안정' 추진
올해부터 비만약이 항암제를 밀어내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약'의 자리를 차지했다. 높은 범용성과 안전성을 바탕으로 시장성이 입증되면서 전세계 제약 바이오 업계가 미래 먹거리로 비만약을 낙점하고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넓은 시장 만큼이나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비만약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한미약품의 국산 1호 비만약 '에페' 브랜드 로고 ⓒ한미약품
한미약품의 국산 1호 비만약 출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빠른 시장 선점을 위해 첫 비만 치료제는 위고비와 같은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로 출사표를 던졌다. 이후 삼중작용제 등 후속 비만약 파이프라인을 차례로 선보여 '1호'의 입지를 공고하게 지킨다는 계획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은 이르면 오는 10월 비만 치료제 '에페'를 국내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지난해 12월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 심사 중이다. 글로벌 혁신제품 신속심사(GIFT) 대상인 만큼 통상 심사보다 절차가 빠르게 끝날 것으로 기대된다.
에페는 힐라몬스터라는 도마뱀의 독액을 본따 만든 '에페글레나타이드' 성분으로 이뤄져 있다.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강점은 몸 안에 들어온 펩타이드(GLP-1)를 분해하는 효소인 'DPP-4'에 대한 저항성이 다른 비만약 성분들보다 강하다는 점이다.
애당초 쉽게 분해되지 않는 성분에 천천히 녹는 기술까지 더해 주 1회 투여가 가능하도록 설계했다. 자체 플랫폼 기술인 '랩스커버리'를 결합하면서다. 랩스커버리는 약물에 항체 조각을 붙여 체내에서 천천히 분해되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약물이 몸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급격히 방출되지 않는 만큼 오심(구역감) 등 기존 비만약의 위장관 부작용까지 해결했다.
실제로 한미약품이 한국인 4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 3상 결과에 따르면 에페 투여 40주차의 오심 발현율은 16.7%로 위고비 투여 44주차 데이터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았다. 앞서 글로벌 빅파마 사노피가 당뇨병 파이프라인으로 글로벌 임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심혈관 개선 효과도 입증된 바 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상당수의 비만 환자들이 당뇨병 등을 동반하고 있는 만큼, 비만약은 체중 감량만큼이나 심혈관 위험을 낮추는 것이 중요하다”이라며 “에페는 GLP-1 계열 가운데서도 심혈관 사건 감소 효과를 입증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 체중 감량제를 넘어 대사질환 전반을 관리하는 치료제로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생산 공장이 국내에 마련된 만큼 안정적인 물량 공급도 기대된다. 위고비, 마운자로 등 기존 비만약은 완제품 상태로 국내에 들어오는 탓에 지역별로 공급 부족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해 왔다. 한미약품은 에페의 생산 기지를 평택 바이오플랜트로 결정해 관련 문제를 해소했다. 평택 바이오플랜트는 매년 최대 2000만개의 사전 충전형 주사기(PFS) 생산이 가능하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이후가 기대되는 후속 파이프라인도 탄탄하다. 한미약품은 에페 외에도 다수의 비만 치료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 중이다. 우선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2상이 진행 중인 삼중작용제 HM15275는 식욕을 억제하는 GLP-1에 대사를 높여주는 포도당 의존성 인슐린분비 촉진 폴리펩티드(GIP)를 더했다. 일라이 릴리의 비만약 ‘마운자로’의 치료 기전에 에너지 소비를 늘리는 글루카곤까지 결합해 효과를 극대화 했다.
이미 글로벌 빅파마로부터 인정받은 파이프라인도 있다. HM17321은 지난 24일 미국 로슈그룹 자회사인 제넨텍에 3조원 규모로 기술수출(L/O)됐다. 유로코르틴-2(UCN2) 유사체 방식으로 작동해 지방량을 줄이면서도 근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인정 받은 결과다. 현재 HM17321은 미국에서 임상 1상이 진행되고 있다.
아직 전임상 단계인 HM500197도 근육 보존형 비만 치료 신약 후보물질이다. 근육 성장을 막는 마이오스타틴(MSTN)을 차단해 근육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근육 손실이 불가피한 GLP-1 비만약과 병용 투여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다.
이는 한미약품그룹 차원에서 비만 치료제 사업을 미래 핵심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다.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은 "한미약품은 향후 체중 감량 과정에서 수반될 수 있는 보완점과 개선 과제까지 동시에 연구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국민의 건강한 삶에 실질적인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런 만큼 업계는 한미약품의 비만 치료 파이프라인에 대해 자체 상업화와 일부 판권에 대한 기술수출 가능성 모두를 높게 점치고 있다. 앞선 HM17321 기술수출과 마찬가지로 해외 판권은 빅파마에 넘기고 내수 판권은 직접 보유하는 방식이다. 자금 조달을 통해 지속적으로 후속 파이프라인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김준영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로슈그룹이 HM17321을 사들인 이유로 기존 파이프라인을 보완하는 기전적 상호 보완성이 존재한다”며 “글로벌 빅파마의 비만 자산 확보 경쟁을 고려할 때 내년 임상 2상 결과에서 삼중작용제인 HM15275가 20%대 중후반 체중 감량과 양호한 위장관 부작용(GI 내약성)을 보여줄 경우 차기 기술수출 후보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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