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함으로 기사와 무관함. ⓒ 게티이미지뱅크
지난주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 지인들과의 라운드가 예정돼 있었다. 출발을 앞두고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이 더위에 정말 괜찮을까.' 주변에서도 "가만히 서 있기조차 힘든 날씨에 무슨 골프냐"는 만류가 이어졌다.
한낮의 땡볕 아래 몇 시간을 걸어 다닌다는 것은 무모한 도전처럼 들렸다. 하지만 18홀을 마치고 클럽하우스로 돌아오는 길,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의외였다.
'생각보다 덥지 않았다.'
물론 땀은 비 오듯 흘렸다. 햇볕도 따가웠다. 그렇다고 폭염이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도심에서 느끼는 답답하고 숨 막히는 열기와는 분명 달랐다. 같은 기온인데도 몸이 받아들이는 더위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그 이유는 기온이 아니라 환경에 있다. 우리는 흔히 기온만으로 더위를 판단한다. 그러나 사람이 실제로 느끼는 것은 체감온도다.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는 한낮의 태양열을 머금었다가 다시 내뿜으며 도시 전체를 거대한 열 저장고로 만든다. 이른바 열섬현상이다. 폭염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어쩌면 도시가 만들어내는 열기인지도 모른다.
반면 우리나라 골프장의 대부분은 산림을 따라 조성된 산악형 코스다. 숲이 만들어내는 바람길이 살아 있고, 넓게 펼쳐진 잔디는 자연의 냉각장치 역할을 한다. 잔디는 증산작용을 통해 주변의 열을 흡수하고 수분을 증발시키면서 지면의 온도를 낮춘다. 같은 35도라도 콘크리트 위와 잔디 위에서 느끼는 더위가 다른 이유다.
실제로 라운드를 하는 동안 그 차이는 곳곳에서 느껴졌다. 티잉 구역에서는 숲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고, 페어웨이를 걸을 때는 발밑의 잔디가 도심의 뜨겁게 달궈진 지면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전해줬다. 카트가 숲 그늘을 지날 때마다 체감온도는 한결 낮아졌다. 숫자로 표현되는 기온은 같았지만, 몸이 느끼는 여름은 분명 달랐다.
물론 폭염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로 우리 여름은 갈수록 길어지고 뜨거워지고 있다. 충분한 수분 섭취와 휴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위 사진은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함으로 기사와 무관함. ⓒ 게티이미지뱅크
다행히 골프장들도 폭염에 맞춰 빠르게 변하고 있다. 냉방 카트의 보급이 늘고 있고, 코스 중간의 그늘집은 냉방시설과 음용수를 갖춘 휴식 공간으로 운영된다. 얼음물과 아이스크림을 무료 제공하는 곳도 적지 않다. 폭염특보가 발효되면 운영 방식을 탄력적으로 조정하거나 이용객의 휴식을 적극 권하는 골프장도 늘고 있다. 여름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여름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환경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여름은 골퍼들이 기피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계절이기도 하다. 이른 새벽과 해 질 무렵 등 다양한 티타임을 선택할 수 있고, 시즌 특성에 맞춘 그린피 혜택도 적지 않다.
많은 골퍼들은 "더워서 필드는 못 간다"며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스크린골프장을 찾기도 한다. 물론 그것도 골프를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몇 차례의 스크린 라운드 비용이면 여름 시즌 할인 그린피로 실제 필드를 걸을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에어컨 바람 아래 화면 속 페어웨이를 걷는 대신, 산바람이 스치는 실제 페어웨이를 걸을 수 있는 계절이 바로 여름이다.
지난주 라운드를 마친 뒤 내 생각도 달라졌다. 폭염은 숫자였고, 더위는 환경이었다. 도심의 35도와 산속 골프장의 35도는 같지 않았다.
여름 골프를 마치고 돌아온 날, 내가 이긴 것은 폭염이 아니라 폭염에 대한 선입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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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희종 한국골프장경영협회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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