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멸구 극복부터 K-장립종 수출까지…농진청·IRRI가 여는 K-농업의 미래 [K-육종의 힘②]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6.07.29 09:38  수정 2026.07.29 09:38

‘방어형 농업’ 벗어나 기능성·수출형 품종으로 승부

IRRI와 4만9200점 유전자원 이식…고온·신종 병해충 선제 차단

저혈당 ‘슬로미’로 건강 시장 잡고

‘K-장립종’으로 글로벌 가공 밥 시장 도전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는 다양한 열대기후성 작물을 연구하고 있다. 농촌진흥청도 이곳에서 기후 적응 품종 개발을 위해 다양한 육종 실험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지난 2024년 우리나라 벼멸구 발생면적은 3만4140ha까지 번졌다. 9월까지 이어진 고온이 증식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정부는 벼멸구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했다. 같은 시기 국내 쌀 산업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2025년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53.9kg으로 전년보다 3.4% 줄며 역대 최저치를 다시 썼다.


기후변화로 생산 위험은 커지는 데 밥쌀 소비는 줄어드는 이중 압박이 벼 육종의 목표를 바꾸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RRI)에서 들여온 벼 유전자원은 약 4만9200점에 이른다.


1980년대 이전에는 다수확, 1990년대에는 병해충 저항성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고온과 수발아, 신종 병해충에 견디는 품종과 저혈당·장립종 등 새로운 수요를 만드는 소재로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연구실의 유전자를 농가의 품종과 소비자의 제품으로 연결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저항성 계통은 국내 환경에서 반복 검정을 거쳐야 하고, 저혈당 쌀은 기능성 검증과 원료곡 생산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장립종도 세계 시장의 바스마티·자스민 라이스와 겨룰 품질과 향, 국내 재배 안정성을 함께 확보해야 한다. 4만9200점 유전자원보다 어떤 유전자를 골라 얼마나 빠르게 현장에 옮기느냐가 공동연구의 핵심이다.


3.4만ha 태운 벼멸구 재앙…야생벼 유전자 'Bph18'이 남부 농가 살렸다


벼멸구는 중국 등지에서 기류를 타고 국내로 유입되는 대표적인 비래 해충이다. 볏대 아랫부분에서 즙을 빨아 먹기 때문에 벼가 무성해진 뒤에는 약제가 닿기 어렵다. 방제 시기를 놓치면 여러 세대가 겹치면서 밀도가 급격히 높아진다.


농진청 농사포털 농사로에서는 상습 발생지역의 경우 저항성 품종을 재배하면 피해와 방제비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지난 2024년은 저항성 육종의 필요성을 수치로 확인한 해였다. 농진청이 9월 말 기준으로 집계한 벼멸구 발생면적은 3만4140ha였다. 전남 1만9603ha, 전북 7187ha, 경남 4190ha 등 남부지역에 발생이 집중됐다. 이상고온이 수확기까지 이어지면서 벼멸구의 증식 속도가 빨라졌다. 약제 방제만으로 피해를 막기 어려운 농가가 속출했다.


농진청과 IRRI의 대응은 2010년 이전부터 유전자 수준에서 시작됐다. IRRI 인디카 도입계통 IR65482-7-216-1-2에는 야생벼 오리자 오스트랄리엔시스에서 유래한 벼멸구 저항성 유전자 ‘Bph18’이 들어 있었다.


연구진은 분자표지를 활용한 여교배로 이 유전자를 밥맛이 좋은 자포니카 품종 ‘주남’에 옮겼다. 이 과정에서 벼멸구 저항성을 지니면서 국내 자포니카의 농업형질과 품질을 회복한 계통이 선발됐고, ‘안미’ 육성으로 이어졌다.


2016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실린 공동연구는 Bph18의 위치와 기능을 규명했다. Bph18은 벼멸구가 흡즙하는 잎집의 관다발 조직에서 강하게 발현됐다. 주남과 도입계통을 교배한 집단을 이용해 12번 염색체의 저항성 유전자 구간을 좁혔다.


농진청은 안미를 다시 교배친으로 활용해 해충 저항성과 수발아 저항성을 함께 높인 ‘해강’을 2023년 육성했다. 보급은 벼멸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남서부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한 번의 유전자 도입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해충 계통과 기후조건에서도 저항성이 유지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장기 육종이다.



진민아 농촌진흥청 IRRI 국외상주연구원은 필리핀에서 열대성 기후에 적응하는 품종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미래의 한국 농업에 기여하기 위한 연구에도 매진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이상기후 선제 타격…글로벌 연구소와 손잡고 찾아낸 '열대 적응 계통'


필리핀의 재배환경은 국내보다 덥고 습하다. 농진청 자료에 따르면 여름철 평균기온은 한국보다 약 4℃ 높고 강수량은 20~30% 많다. 현재 한국에서 일상화하는 고온 등숙과 수확기 강우 조건을 앞당겨 시험할 수 있는 환경이다.


농진청과 IRRI는 열대 적응 자포니카 사업에서 고온에도 쌀알이 충실하게 여무는 200여 계통을 선발했다. 기준 품종인 자포니카7의 완전미율이 14.7%였던 시험에서 일부 계통은 최대 47.8%를 기록했다.


필리핀 시험에서 가능성을 보인 계통은 국내로 들여와 조기·보통기 재배 조건에서 쌀 품질과 생육 특성을 반복 검증하고 있다. 재배환경에 따라 성적이 달라질 수 있어 고온 적응성을 좌우하는 유전자 탐색도 병행한다.


수발아도 기후변화가 키운 품질 위험이다. 수확 전 고온다습한 날씨와 가을 장마가 겹치면 논에 서 있는 벼의 이삭에서 싹이 터 상품성과 종자 품질이 떨어진다.


농진청은 IRRI와 협력해 강한 휴면성을 지닌 유전자원 ‘카살라스’의 sdr4 유전자를 국내 고품질 품종에 도입했다. 국내에서 찾은 gf14h와 qLTG3-1 등 관련 유전자까지 한 품종에 집적해 수발아 저항성을 높이는 연구를 추진 중이다.


기존 국내 품종에 저항성이 부족한 병도 공동연구 대상이다. 농진청은 최근 5년간 국내 벼 관찰포 690곳에서 세균벼알마름병이 잎집무늬마름병과 도열병, 깨씨무늬병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2025년 IRRI와 열대 적응 자포니카 50계통을 검정한 결과 평균 발병도는 6.6이었다. 발병도 3을 기록한 두 계통이 저항성 후보로 선발됐다. 농진청은 올해 이 자원을 국내로 들여와 추가 검정할 계획이다.


남방검은줄오갈병은 병이 국내에 자리 잡기 전에 저항성 소재를 확보하려는 사례다. 흰등멸구가 옮기는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벼의 키가 정상의 4분의 1 수준으로 줄고 이삭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2010년 중국과 베트남의 발생면적은 160만ha에 달했다. 한국과 일본에서도 발병 사례가 보고됐으나 국내 재배품종에는 활용할 저항성 자원이 부족하다.


진민아 농촌진흥청 IRRI 국외상주연구원은 “국내에 아직 널리 정착하지 않은 바이러스는 실물 병원체를 이용한 대규모 검정에 제약이 따른다”며 “농진청은 남방검은줄오갈병 검정체계와 저항성 유전자원을 보유한 IRRI에서 한국 품종의 저항성 육종소재를 만든 뒤 국내에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해가 확산된 뒤 품종 개발을 시작하면 수년이 걸리는 육종 기간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국제미작연구소 한켠에는 열대 기후 적응을 위한 농촌진흥청의 벼 육종연구가 한창이다. 농진청 소속 현지 연구원들이 실험포장에서 육종 작업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배군득 기자
2029년까지 K-장립종 품종 완성…남는 쌀 체질 개선해 수출 활로 뚫는다


벼 육종의 목표는 재해를 버티는 데서 새로운 소비를 만드는 단계로 넓어졌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5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3.9kg으로 전년보다 1.9kg, 3.4% 줄었다. 같은 해 식료품 제조업체 등 사업체의 쌀 소비량은 106만5324t으로 22.0% 증가했다.


가정의 밥쌀 소비가 줄어도 떡류를 비롯한 가공 수요는 커진 셈이다. 건강 기능성과 가공·수출용 품종이 쌀 수급의 새로운 출구로 떠오른 배경이다.


농진청과 IRRI가 공동 개발한 ‘슬로미’ 계통은 천천히 소화되는 전분 특성을 살리면서 밥맛을 보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기존 저혈당 쌀 ‘도담쌀’은 쌀가루와 가공용에 강점이 있으나 일반 밥용으로는 식감의 한계가 있었다. 슬로미1은 비교품종보다 소화율이 약 8% 낮았고, 슬로미2는 슬로미1보다 찰기가 높게 나타났다.


저혈당 쌀의 산업화에는 품종 특성과 건강 기능성을 구분하는 검증이 필요하다. 시험관 소화율은 후보 계통을 가려내는 지표이고, 실제 혈당지수는 표준화된 인체 적용시험으로 확인해야 한다.


진 연구원은 “품종등록과 원료곡 생산, 일반 쌀과의 분리 유통, 기업 기술이전까지 이어져야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이 된다”며 “국내 기업들이 슬로미를 활용한 제품 개발과 상용화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립종은 내수 과잉을 수출시장으로 돌리려는 축이다. 농진청은 2025년 ‘장립종 벼 기반 쌀 산업 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오는 2029년까지 국내 기후에 맞는 인디카형 장립종 품종과 재배기술을 개발하고, 품질관리와 가공밥 수출 기반까지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IRRI는 바스마티와 자스민 라이스에 대응할 향미 유전자원, 고온과 병해충에 견디는 인디카 육종계통을 공급하고 있다. 국내에 도입된 계통과 자원은 2024년 502점, 2025년 391점, 2026년 444점 등 3년간 1337점이다. IRRI가 보유한 장립종 자원 3847점 가운데 국내 재배와 품질 목표에 맞는 소재를 추려 한국형 장립종에 넣는 작업이다.


프로젝트는 올해 2년 차에 들어섰다. 세계 시장의 장립종을 국내에서 재배하려면 향과 식감뿐 아니라 국내의 짧은 재배기간, 태풍과 가을 저온, 도복과 병해충을 견뎌야 한다. 수출용 가공밥의 원료 규격과 생산단가를 맞추는 산업계 검증도 남아 있다.


한편 농진청은 지난 7월 3일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장립종 프로젝트 공동연수를 열었다.


오기원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경지이용작물과장은 “우리 쌀 가공품은 이미 세계 무대에서 뛰어난 품질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어 세계인이 즐겨 찾는 ‘장립종’ 품종 개발과 안정적인 재배 환경만 갖춰진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이번 사업이 우리 쌀 산업의 든든한 발판이자 도약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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