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마리 혈액이 한곳에…도축장서 촘촘해진 ASF 예찰망[현장]

김소희 기자 (hee@dailian.co.kr)

입력 2026.07.22 11:00  수정 2026.07.22 13:40

하루 2800마리 혈액 모아 출하농가 동시 점검

0.2ml 시료로 PCR 검사…양성 땐 농장 역추적

혈액 활용 전 안전성 확인…전 주기 방역망 강화

충남 논산계룡축협 도축장에서 관계자가 혈액탱크에 모인 돼지 혈액을 검사 용기에 채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김소희 기자

“감염된 돼지 한 마리의 피 소량만 탱크에 섞여도 PCR 검사로 ASF 바이러스를 검출할 수 있습니다.”


지난 15일 오전 충남 논산계룡축협 도축장. 도축시설 한쪽에는 이송관이 연결된 은색 원통형 혈액탱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탱크 하단에는 혈액 시료를 채취할 수 있는 밸브가 달려 있었다.


작업자가 탱크 하단 밸브에 튜브를 대고 밸브를 열자 검붉은 혈액이 흘러들었다. 채취를 마친 뒤에는 튜브 외부를 소독하고 뚜껑을 닫았다. 밀봉한 시료는 도축장과 날짜를 표시해 검사기관으로 보내기 전까지 냉장 보관한다.



혈액보관탱크. ⓒ데일리안 김소희 기자
도축장 혈액 한 번에 검사…농가 예찰·사료 안전관리


이곳에서 하루 도축되는 돼지는 약 2800마리다. 도축 과정에서 방혈된 혈액은 바닥 아래 배관으로 떨어진 뒤 펌프와 이송관을 거쳐 탱크에 모인다. 탱크 내부에서는 여러 농장에서 출하된 돼지의 혈액이 고르게 섞이도록 교반이 이뤄지고 냉장 상태도 유지된다.


작업자가 튜브에 담은 혈액은 소량이지만, 그날 도축된 돼지 수천마리의 혈액이 섞인 시료다. 농장마다 찾아가 일부 돼지를 채혈하는 대신 도축장에 모인 혈액을 활용해 여러 출하 농가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감염 가능성을 한꺼번에 살피는 방식이다.


혈액탱크 검사의 목적은 출하 농가의 감염 여부를 살피는 데만 있지 않다. 도축 과정에서 모인 돼지 혈액은 혈분 등으로 가공돼 사료 원료를 비롯한 여러 용도로 활용될 수 있다. 때문에 외부로 반출되거나 사용되기 전에 ASF 바이러스 오염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혈액 시료에 대한 사전검사는 도축 부산물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첫 관문이다. 바이러스가 검출되면 해당일 돼지를 출하한 농장을 추적하는 동시에 오염 가능성이 있는 혈액이 사료 제조 등 활용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차단한다. 도축장 혈액검사가 농장 예찰과 사료 안전관리를 함께 수행하는 셈이다.


ASF는 농장 안에서도 감염 개체가 많지 않을 수 있어 일부 돼지만 골라 검사하면 감염축을 찾아내기 어렵다.


허진회 충남동물위생시험소 부여지소장은 “ASF는 농장 안에서도 감염 개체가 많지 않아 일부 돼지만 채혈하면 감염축을 찾아내기 어렵다”며 “도축장 혈액검사는 그날 도축된 돼지를 한꺼번에 확인해 여러 출하 농가를 폭넓게 살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혈액에서 ASF 바이러스가 확인되면 도축 이력을 토대로 출하 농장을 추적한다. 도축 신청 과정에서 농장 주소와 출하 물량 등이 등록돼 있어 해당일 돼지를 보낸 농가를 확인할 수 있다. 이후 이들 농장을 대상으로 임상검사와 채혈검사를 진행해 감염 여부를 가린다.


충남 홍성군 충남동물위생시험소에서 연구원이 도축장에서 채취한 돼지 혈액 시료를 유전자 추출용 용기에 옮기고 있다. ⓒ데일리안 김소희 기자
혈액 0.2ml로 바이러스 추적…양성 땐 농장 역추적


같은 날 오후 충남 홍성군 충남동물위생시험소 검사실에는 도축장과 채취 날짜가 적힌 혈액 튜브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충남지역 돼지 도축장 8곳에서 모은 시료다. 이 가운데 6곳은 혈액탱크에서 시료를 채취하고, 탱크가 없는 2곳은 방혈 과정에서 거즈를 활용해 혈액을 모았다.


도축장들은 매일 혈액 시료를 채취해 냉장 보관한 뒤 시험소로 보낸다. 도축 물량이 많은 곳은 오전과 오후 시료를 나눠 채취한다. 시험소가 한 차례 검사하는 시료는 60건 안팎이다.


흰색 실험복과 장갑을 착용한 연구원이 혈액 튜브 하나를 꺼냈다. 피펫 끝을 혈액에 넣었다 빼자, 검사에 사용할 0.2ml가 추출 용기로 옮겨졌다. 도축장 탱크에 모였던 수천마리의 혈액 가운데 실제 검사에 쓰이는 양은 몇 방울 정도였다.


유상원 충남동물위생시험소 ASF 팀장은 “도축장에서 날짜별로 채취한 혈액 가운데 0.2ml를 사용해 유전자를 추출한다”며 “혈액 시료는 냉장 보관하면 바이러스 유전자가 바로 사라지지 않고, PCR로 수백만배 이상 증폭하기 때문에 소량만 들어 있어도 검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혈액을 담은 용기가 장비 안으로 들어가면 유전자 추출이 시작된다. 혈액 속 불순물을 제거하고 유전자를 분리하는 데 약 15분이 걸린다. 추출한 유전자를 ASF 진단 키트와 함께 PCR 장비에 넣으면 약 70분간 증폭 검사가 이어진다.


만약 바이러스 유전자가 검출되면 증폭 곡선이 기준선 위로 올라간다. 검출되지 않으면 증폭 곡선이 나타나지 않는다.


양성이 확인되면 시험소는 해당 도축장과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검사 결과를 알린다. 도축 이력을 통해 같은 날 돼지를 출하한 농장을 확인한 뒤 정밀검사와 방역 조치에 들어간다.


혈액검사는 감염 농장을 찾아내는 예찰 수단인 동시에 도축 이후 혈액의 이동 과정도 관리한다. 돼지 혈액은 혈분으로 가공돼 사료 원료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장·도축·활용 단계 연결…촘촘해진 방역망


이 같은 혈액 예찰은 정부가 지난 7월 내놓은 ASF 전 주기 방역관리 강화 대책의 도축장 단계다. 정부는 농장의 폐사체·축분 검사와 도축장 혈액 예찰, 사료 제조시설 안전관리를 연계해 방역 범위를 넓혔다.


도축장 혈액에서 바이러스가 확인되면 출하 농장을 추적하고, 혈액이 혈분으로 가공돼 사료 원료로 활용되는 과정까지 관리한다. 농장부터 도축장, 사료 제조까지 ASF 확산 위험을 단계별로 차단하는 구조다.


김지호 농식품부 구제역방역과 서기관은 “방역 인력과 검사 역량을 고려하면 모든 농장의 돼지를 일일이 검사하기는 효과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도축장 혈액검사는 그날 출하된 돼지를 한꺼번에 살펴 농장 단계에서 놓칠 수 있는 감염축을 찾아내고, 혈액이 다른 용도로 활용되기 전 안전성까지 확인할 수 있는 효과적인 예찰수단이다”고 말했다.


이어 “농장부터 도축장, 도축 이후 혈액의 활용 단계까지 이어지는 ASF 방역망을 보다 촘촘하게 만드는 조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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