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만 장기말로 이용"…권련 교체에도 청년 삶 '제자리'
효능감 상실…주거·일자리 괴리에 무당층 전환하는 청년들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수도권 한 대학가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최 모(30) 씨는 최근 정치 뉴스를 볼 때마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는 한자성어부터 떠오른다고 말한다. 최 씨는 "여야를 막론하고 청년 세대가 바라는 본질적인 안건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선거철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장기말로만 우리를 이용하는 느낌이 강하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대한민국 정치권은 2030 세대로부터 뿌리 깊은 '비호감' 낙인이 찍히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수많은 청년 공약이 쏟아졌음에도 정작 청년들의 삶은 단 한 걸음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분노다.
데일리안이 2030세대 대학생 및 직장인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이들이 보인 태도는 단순한 '정치 무관심'이 아니었다.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과 실효성 없는 보여주기식 정책에 실망한 끝에 도달한 '정치적 효능감 상실'이자 뼈아픈 경고였다.
혐오와 밥그릇 싸움만 남은 정치…"정말 답이 없다"
청년들이 바라보는 오늘날의 정치권은 '그들이 사는 세상’(그사세)이다. 최근 정치권의 행보를 보며 느끼는 감정을 묻자 청년들은 "비속어와 욕만 떠오른다", "밥그릇 챙기기 바쁜 사람들", "답이 없다", "공허함과 불신" 등 극단적인 부정어들을 쏟아냈다.
미디어업계에 근무하는 직장인 최 모(31)씨는 "여야를 떠나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세대·젠더·계층 간의 '갈라치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을 분열시키는 모습을 보면 답답함을 넘어 공포감까지 느낀다"고 비판했다.
대학생 손유탁(25)씨 역시 "정치인들은 자신을 제외한 모든 집단을 악마화하고 분리하는 것을 가장 큰 무기로 삼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1번 찍어서 그렇다', '남자라서, 여자라서 그렇다'는 식의 이분법적 대상화는 기성 권력층이 지지세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이로 인해 2030 세대의 정신적 양극화와 혐오 정서가 심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생존 문제'서 드러난 무능…"정치권 시선, 국민과 따로 놀아"
행복주택은 대학생, 청년,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이 직장과 학교 근처에서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대중교통이 편리한 곳에 국가 재정을 투입해 짓는 대표적인 공공임대주택 정책이다. 정부는 올해 행복주택을 포함한 전체 공공주택 예산을 전년 대비 2조3000억원 늘린 14조6000억원 규모로 책정했다.
그러나 청년 일자리가 집중된 도심에 행복주택 부지 확보가 어려워지자, 교통이 닿지 않는 외곽 지역이나 일자리가 부족한 지방에 무리하게 단지를 지었고 결국 청년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당시 국회 국토교토위원회 소속 복기왕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복주택의 공실률(공가율)은 2022년 5.7%에서 지난해 7월 기준 10.1%로 2배 급등했다.
서울 소재의 한 대학가 게시판에 원룸 월세 안내문이 붙어 있다.(자료사진) ⓒ뉴시스
이처럼 청년들이 정치권을 '비호감'으로 규정하고 등을 돌리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주거와 일자리라는 생존에 필수적인 문제에서 정치권이 철저한 무능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이 두 가지가 분리될 수 없는 '한 세트'임에도 정부의 정책은 늘 겉돌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상반기 경기도 소재 기업에 취업한 김정민(23)씨는 입사 전 주거지를 구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벽을 만났다.
김 씨는 "지방 일자리가 부족해 어쩔 수 없이 수도권으로 올라왔는데 최근 동탄 등의 집값이 폭등해 좌절했다"며 "전세사기 여파로 대출 규제까지 강화되면서 입사 전이라 대출받지 못해 은행 창구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사회초년생들을 수없이 목격했다"고 털어놓았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김 모(31)씨는 주택 정책의 방향성 자체에 괴리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청년과 신혼부부가 원하는 것은 자산을 형성해 안정적인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게 돕는 대책인데, 정치권은 뜬금없이 장기 임대주택 공급만 늘리며 생색을 낸다"며 "국민의 시선과 정치권의 시선이 완전히 따로 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음악업계에서 일하는 30대 중반 남성 A씨는 인공지능(AI)의 발달과 경기 침체로 경력직만 살아남는 고용 시장의 변화를 언급했다. 그는 "새로운 기회가 차단된 청년들에게 단발성 현금 복지를 쥐여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지적헀다.
부산 지역 직장인 김 모(31)씨는 "생물은 안전하게 번식할 수 있는 환경에서만 번식한다"며 "상경한 청년들이 터무니없는 주거비 때문에 혼자 살기도 벅찬 상황인데 고작 몇십, 몇 백만원의 출산장려금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피상적인 대책은 수치 채우기용 실적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했다.
"문제 해결 능력도, 의지도 없다"… 거대 양당의 위기
인터뷰에 응한 청년 15명 중 향후 정치권이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표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여야가 공수교대를 하며 정권을 주고받았지만 청년들의 삶은 단 한 번도 우선순위에 놓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취업준비생 김민정(22)씨는 "내실 있는 기업에 들어가려는 청년들의 취업난은 바늘구멍보다 좁다"며 "청년들의 이런 현실적 고충과 '쉬었음 청년'이 늘어나는 통계적 맥락을 정치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해결하려는 진정성 어린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전문가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독선적·독단적인 행보를 보인다는 비판도 나왔다. "의지가 있어도 능력이 없고 능력이 없으면 전문가 의견이라도 수렴해야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홍명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과 다를 바 없다"는 A씨의 비유는 기성 정치권을 향한 청년 세대의 깊은 불신을 대변한다.
서울의 한 대학교 학생회관 앞 게시판. ⓒ데일리안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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