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도 구원도 정답은 아니었다…여성 서사의 다음 선택 [D:영화 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7.05 15:30  수정 2026.07.05 15:30

정서적 성장에 집중한 ‘하나 코리아’ 8일 개봉…피상적 화해나 자극적 장치 넘어서 관객과 동화될 수 있는 여성 중심 영화의 새로운 대안 고민할 때

여성 인물이 주인공인 영화는 오래전부터 범죄, 스릴러, 복수, 생존 같은 자극적인 장르와 결합해왔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위협과 폭력, 그리고 반격은 관객의 시선을 붙잡기 쉬운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런 소재들이 곧 여성 서사의 경쟁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 코리아’ 스틸컷 ⓒ시소픽쳐스

5일 시소픽쳐스에 따르면 오는 8일 개봉하는 ‘하나 코리아’는 탈북 여성 혜선(김민하 분)의 여정을 담은 실화 모티브의 영화다. 탈북이라는 소재는 자극적으로 다뤄진 경우가 많지만, 이 영화는 탈출의 긴박함이나 생존의 스펙터클을 다루기보다는 한국에 도착한 뒤의 삶, 낯선 사회에서의 고립과 적응, 남겨둔 가족에 대한 죄책감과 같은 정서적 여정에 집중한다.


이처럼 스펙터클을 덜어낸 정공법이 주목받는 이유는, 그동안 최근 개봉작들을 보면 강렬한 사건과 여성 서사의 결합은 반복돼왔기 때문이다. 한소희·전종서 주연의 ‘프로젝트 Y’는 범죄 누아르, 차주영·정지소 주연의 ‘시스터’는 납치 스릴러, 정려원·이정은 주연의 ‘하얀 차를 탄 여자’는 서스펜스를 내세웠다.


그러나 ‘프로젝트 Y’는 한소희·전종서 조합과 범죄 누아르라는 장르에도 극장 누적 관객 수 14만명대에 머물렀고, ‘시스터’ 역시 약 7만명 수준의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자극적인 소재와 스타 캐스팅은 관객의 첫 관심을 끄는 장치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흥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자극을 덜어내고 연대와 치유라는 순한 맛 서사는 어떨까. 안타깝게도 시장의 반응은 이 역시 냉혹했다. 지난 3월 개봉한 ‘열여덟 청춘’은 여교사와 여고생의 관계를 통해 여성 구원 서사를 시도했다. 남성 중심 사제 서사로 익숙했던 치유의 공식을 두 여성의 유대 관계로 옮겼지만 관객 수는 약 6000명 수준에 머물렀다. 의미 있는 시도와 극장 흥행은 별개의 문제였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극장 영화는 드라마나 OTT에 비해 훨씬 닫힌 시장이다. 멀티플렉스 중심의 배급 구조에서는 이미 흥행이 검증된 감독과 배우, 장르에 투자가 몰리기 쉽고, 그 과정에서 여성 중심 서사는 상대적으로 기회를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OTT와 드라마는 여성 시청자 수요가 크고 긴 호흡으로 캐릭터를 쌓을 수 있어 여성 서사가 더 자주 시도된다”며 “‘하얀 차를 탄 여자’처럼 해외 영화제를 통해 먼저 인정받은 뒤 국내에 소개되는 사례는 한국 영화 배급 구조가 여전히 보수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그렇다고 여성 서사가 극장가에서 늘 외면받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관객의 반응을 얻은 작품들을 보면 답은 강렬함이나 구원 서사 이분법적 태도에 기대지 않았다. 메시지의 당위성만 앞세워 인물의 관계를 평면적으로 그리기보다 관객이 인물의 발걸음에 동화될 수 있도록 서사적 밀도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은 한국 독립·예술 실사영화 중 이례적으로 20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는 사건 자체보다 피해자의 복원 과정에 집중한다.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주인공 이주인(서수빈 분)이 평범한 고등학생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일상의 순간마다 흔들리는 모습이나, 동생 해인(이재희 분)이 감옥에서 온 친족 가해자의 편지를 감추는 장면 등을 통해 피해자와 가족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깊은 공감대로 보여준다. 피해자들이 겪는 현실의 무게를 담담하면서도 정교하게 포착해내며 기존 구원 서사들과 확실한 차별점을 뒀다.



‘토이 스토리5’ 스틸컷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국내에서 누적 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한 ‘토이 스토리5’ 역시 여성 서사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그동안 시리즈가 우디와 버즈 등 남성 캐릭터 인형을 중심으로 전개됐다면 이번에는 카우걸 인형 제시와 인형의 주인인 여자아이 보니 등이 중요한 축을 이룬다. 제시는 보니가 자신들을 멀리하는 현실 앞에서 혼란을 겪지만 첫 주인 에밀리를 통해 아이들이 성장하며 장난감을 떠나도 그 시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여성 캐릭터가 단순히 누군가를 구하거나 보호하는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서사로 확장된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하나 코리아’는 여성 서사의 다음 선택을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영화는 혜선 뿐만 아니라 함께 나오는 여성 캐릭터 숙희(김주령 분)와 보미(안서현 분)의 관계를 통해 서로 다른 상처와 시간을 보낸 여성들이 어떻게 낯선 공간에 적응해나가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여성 중심 영화가 관객의 눈길을 끌기 위해 반드시 범죄와 폭력, 복수의 장치를 전면에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따뜻한 메시지만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다. 관객이 인물의 감정과 선택을 따라갈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삶의 감각이 필요하다. 이 선택이 관객에게 닿을 수 있다면, 여성 서사는 스릴러와 범죄의 익숙한 공식 바깥에서도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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