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규제 피해 기업대출로 실적 방어
건설·부동산PF 등 주택경기 침체에 부실 우려
“주택시장 침체 시 가계보다 기업대출 더 위험”
“기계적 총량규제, 금융시스템 흔들 수 있어”
정부가 일률적인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시행하면서 주택시장 침체, 그로 인한 기업대출 부실까지 연쇄적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연합뉴스
정부와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급증을 막기 위해 시행 중인 고강도 대출 규제가 주택시장 침체에 이어 기업대출 부실까지 연쇄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그간 가계대출을 조이고 기업대출을 늘리며 리스크 관리에 나선 은행권 건전성을 외려 흔들 수 있단 지적이다.
6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가계대출 억제 기조로 시중은행들의 여신 포트폴리오가 기업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대기업대출 잔액은 190조3641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20조649억원 증가했다.
반기 만에 대기업대출이 20조원 이상 늘었다. 대기업대출이 6개월 새 20조원 이상 증가한 건 2년 만이다.
같은 기간 중소기업대출 잔액은 8조2941억원 확대된 682조7204억원 정도에 그쳤다.
중소기업대출 대비 대기업대출이 큰 폭으로 늘어난 데는 은행들이 선제적으로 건전성 관리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고금리 환경이 장기화하면서 기업 간 신용도 격차도 확대됐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부실 위험이 낮은 대기업 여신을 늘리고, 중소기업은 대출을 보수적으로 취급한 셈이다.
이처럼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겨냥한 대출 총량규제가 시행됨에 따라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규제가 덜한 기업금융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총량규제는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부작용을 낳았다. 주택시장 침체가 깊어졌단 점이다.
서울·수도권 위주의 주택 거래가 이어지고 있지만, 지방은 침체일로를 걷고 있다. 미분양 해소도 제자리걸음이다.
지난 4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6만5179가구 가운데 73%인 4만781가구가 지방에 집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은 2만5166가구로 전체의 85%를 차지한다.
기업대출은 건설·부동산업을 비롯한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연계 대출 등 주택경기 변동에 민감한 업종을 모두 포함한다.
지방을 중심으로 주택경기 침체가 계속되면 이들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기업들의 현금흐름이 악화해 대출 연체, PF 부도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결국 은행 건전성을 흔드는 부작용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국은행에서도 비슷한 진단을 내놨다. 주택시장 침체가 발생하면 가계대출보다 기업대출 연체율이 더 커질 수 있단 분석이다.
한은 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연체율은 0.38%, 기업대출 연체율은 0.59% 수준이었다.
여기에 전국 아파트값 상승률이 떨어지고 미분양이 늘어나는 상황을 가정하자 4분기 뒤 기업대출 연체율은 0.89%로 크게 뛰었다. 가계대출 연체율은 0.51%로 상승했다.
기업대출 연체율의 상승폭이 가계대출의 두 배 수준을 보일 것으로 한은은 추정했다.
부동산 경기 악화는 주담대를 받은 가계뿐만 아니라 부동산 관련 기업대출 부실로 번질 수 있단 의미다.
미분양으로 분양대금 회수가 늦어진 사업장은 현금흐름이 악화하게 된다. 은행에서 돈을 빌린 기업의 상환 능력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 사업장 부진이 시공사는 물론 시행사, 하도급 업체, 금융회사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단 뜻이다.
일률적인 가계대출 규제는 주택시장을 얼어붙게 만들고, 이러한 침체 분위기가 다시 은행이 벌려놓은 기업대출의 부실을 낳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반 개인 차주들은 소득을 통해 이자를 버텨내거나 담보를 처분하는 방식으로 리스크를 분산할 여지가 있지만, 기업대출은 시장 생태계가 무너지면 손쓸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총량규제로 가계대출 안정화라는 목표는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실물경제와 시장 상황을 간과한다면 금융시스템 전반을 흔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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